
7일 첫방송된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사진)는 여러모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의 급박했던 순간을 북한군 입장에서 조명한 것도 그렇고, 전쟁 총격신 등에서는 TV드라마로는 보기 드물게 탱크와 M1 소총, 기관총 등을 동원한 스펙터클한 전율까지 선사했다.
여기에 류수영 한은정 김호진 소유진 등 젊은 연기자 4인방의 신선한 매력까지 가세, 첫날 전국시청률은 TNS미디어코리아 집계 11.5%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인공 4명의 삶과 애증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는 등 '1회'로서의 임무도 다했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이날 10여차례 등장한 북한 인공기. 한국전쟁 발발 며칠 전 "모스크바로 떠나겠다"는 김일성 당시 북한 군사위원회 위원장이자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사실상 '전쟁개시' 선언 뒷화면에는 인공기가 선연히 걸려 있었다. 이밖에 이른 새벽, 남쪽으로 진군하는 북한 탱크에도 인공기가 나부꼈다.
인공기가 KBS 드라마에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도 눈길을 끌지만, 지금도 국가보안법상 '북한에 대한 찬양이나 동조 등의 목적이 명확할 경우' 논란이 될 수 있는 인공기가 이제는 드라마의 일개 평범한 소품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특히나 한국전쟁을 겪은 윗세대들에게는 거의 '충격'에 가까울 정도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반공교육의 세례를 철저히 받고 자란 지금의 30~40대들로서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의 '새로운' 북한에 대한 시선과 남북문제에 대한 시각은 이미 영화쪽에서는 차고도 넘치고 있다. '웰컴투 동막골'에서는 남북한 군인들이 이상향 동막골에서 천진난만하게 멧돼지 사냥에 나섰고,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큰형 같은 푸근한 이미지의 북한병사 송강호를 볼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전쟁의 소용돌이 와중에서 본의 아니게 북한군이 돼 버린 진태(장동건)의 처절한 운명이, '천군'에서는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서도 세류에 흔들리지 않은 젊은 북한장교(김승우)의 꼿꼿함이 부각됐다. '태풍'에서 관객이 첫 눈물을 떨구는 시점은 북한의 친남매(이미연 장동건)가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로 몇십년만에 재회하는 장면이다.
언급한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남북문제나 북한병사를 신선한 시각에서 완성도 높게 접근한 경우 어김없이 대박을 떠뜨렸다. 그만큼 남북문제는 언제든 중년 관객층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영원한 소재인 동시에, 북한과 남북분단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은 언제든 젊은 관객에도 어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 1945'는 이러한 '남북문제'라는 화두를 이제는 TV드라마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보여진다. 남북정상이 뜨거운 포옹을 한 역사적 사건이 이미 5년 전 일로 지나간 마당에, 드라마 방송주체가 공영방송일지라도 이러한 '대세'를 놓치지 않겠다는 새로운 의지로 읽혀진다.
물론 '서울 1945'에서도 관습의 캐릭터는 여전히 등장한다. '빨갱이'에 앨러지 반응을 보이는 방첩대 중령 박창주(박상면)가 대표적.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함흥 최고의 수재로 이름을 날리다 훗날 남로당 중앙위원 자리에 오르는 최운혁(류수영), 이런 최운혁을 약혼자(김호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월북시킨 여주인공 김해경(한은정)의 '인간적 고뇌'는 '서울 1945'가 시도하려는 새로운 용기와 덕목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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