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에서 500만2,015달러를 베팅해 강정호와의 독점 협상권을 따낸 것은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포스팅 전에 강정호의 행선지에 대한 추측이 만발 했을 때 뉴욕 메츠를 비롯해 수많은 팀들의 이름이 거론됐으나 그중에 피츠버그의 이름이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메츠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 등이 차례로 강정호 영입전에서 발을 빼면서 후보군에 새로운 팀들이 거론되기 시작했을 때도 아무도 피츠버그는 꼽지 않았다. 전형적인 스몰마켓 팀인 피츠버그는 이처럼 굵직한 선수 영입전에 뛰어든 경우가 거의 없는데다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2~3년차의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탄탄한 내야진을 보유하고 있어 강정호가 뛸만한 포지션에 공석이 없는 팀이다. 외부에서 보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강정호를 데려와야 할 이유가 가장 없는 팀 중 하나가 피츠버그였다.
그렇기에 포스팅에서 500만달러가 넘는 액수를 써낸 팀이 피츠버그라는 사실이 공개되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는 ML 구단들의 강정호에 대한 관심 정도를 가장 잘 파악했을 강정호의 에이전트 앨런 네로마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피츠버그 현지 언론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의 기사가 등장했고 국내에선 ‘위장입찰’ 의혹마저 나왔다. 위장입찰이란 전혀 강정호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경쟁팀이 그를 데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입찰에 나섰다는 것인데 피츠버그가 강정호의 입단을 경계할 경쟁팀 자체가 없으니 사실 말도 되지 않는 억측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말까지 등장한 것은 그만큼 다른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피츠버그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놓고 설왕설래하면서도 그 누구도 딱 부러지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은 강정호의 계약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점쳤다. 하지만 이마저도 빗나갔다. 지난 주 피츠버그와 강정호는 협상 데드라인을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 무난히 ‘4년+1년 구단옵션’ 계약에 합의했고 지난 17일(한국시간) 이를 공식 발표했다. 2년전 류현진이 포스팅을 통해 다저스와 계약할 때 데드라인 마지막 30초전에 극적인 합의에 도달한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협상이었다.
강정호의 정확한 계약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첫 4년간 바이아웃 액수 100만달러를 포함, 개런티 1,100만달러와 5년차 구단옵션 550만달러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당초 에이전트 네로가 메이저리그 팀들에 전달했던 강정호의 희망 계약규모(4년 이상 평균연봉 500만달러)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지만 현실적으로 강정호 입장에서도 크게 불만일 수 없는 액수다. 더구나 상대가 고액 계약을 잘 주지 않는 피츠버그이고 협상의 칼자루 역시 팀이 쥐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개런티 1,000만달러가 넘는 계약을 얻은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이 협상과정을 통해 느껴진 것은 피츠버그가 단순히 강정호와 계약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성의를 다했다는 사실이다. 포스팅 액수에서 500만달러라는 결코 적지 않은 액수를 베팅한 것부터 시작, 빠른 계약합의 과정에서도 상당히 합리적으로 임한 느낌이 전해진다.
강정호와의 계약을 공식 발표한 뒤 닐 헌팅턴 피츠버그 단장의 인터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강정호 영입에 나선 피츠버그의 의중이 조금씩 파악되고 있다. 헌팅턴 단장은 “때론 계산된 위험을 감수해야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경우가 바로 그런 케이스”라고 규정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가 한 명도 없던 상태에서 강정호는 과연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전혀 확신할 수 없지만 구단 차원에서 한 번 도박을 걸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선수라는 말이다.
헌팅턴 단장은 이 인터뷰에서 “강정호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어 모든 면을 두루 갖춘 레귤러 메이저리거가 될 것”이라면서도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고 덧붙여 강정호를 당장 주전감으론 보고 있지 않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또 강정호를 마이너리그로 보낼 생각도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려면 메이저리그에서 뛰어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우리가 할 일은 그에게 충분한 출전시간을 제공해 그가 예리한 경기감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를 마이너로 보낼 생각은 전혀 없다”고 되풀이해가며 강조했다.
당장 주전은 아니고 마이너로 보낼 생각도 전혀 없다면 남은 것은 벤치플레이어 뿐이다. 일단 내, 외야를 통틀어 뚜렷한 약점이 없는 피츠버그에서 뛰려면 사실 그것 외엔 방법이 없다. 헌팅턴 단장의 이날 인터뷰 발언에서도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난다. 그는 이날 강정호의 파워 포텐셜과 다양한 투구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과 함께 수비에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에 스파크플러그를 제공할 수 있는 타격 파워를 갖춘 전천후 ‘유틸리티맨’. 그것이 피츠버그가 내다보는 강정호의 첫해 모습이었다.
물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무리 뛰어난 ‘유틸리티맨’이라 해도 피츠버그가 벤치 플레이어에 개런티로만 1,600만달러(포스팅 금액 포함)를 투자할 리가 없다. 강정호가 당장은 벤치에서 출발하더라도 1~2년 내에 주전급으로 발돋움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무대에서 타율 .356과 출루율 .459, 40홈런을 기록한 강정호가 빅리그 무대에서 그 파워의 60~70% 정도만 보여줘도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다는 계산이다. 헌팅턴 단장은 “장기적으로 우린 그를 벤치 플레이어로 보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여기서 피츠버그의 현 내야 사정을 살펴보자. 팀의 간판스타 중 한명인 2루수 닐 워커는 지난해 연봉으로 575만달러를 받았고 타율 .271에 23홈런과 76타점을 기록했다. 올해는 연봉조정을 거치면 800만~900만달러의 연봉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
지난해 3루에서 1루로 자리를 옮긴 페드로 알바레스는 지난 2013년 36홈런과 100타점에서 지난해는 18홈런 56타점으로 성적이 곤두박질했으나 그럼에도 불구, 지난해 연봉 425만달러에서 올해는 500만~600만달러 선으로 연봉이 올라갈 것이 확실하다.
워커와 알바레스는 2016년 시즌이 끝나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다. 이들을 붙잡으려면 올해 안에 장기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너무 거물이 됐다. 연봉이 900만달러와 600만달러까지 올라간 이들을 장기계약으로 붙잡으려면 평균연봉 1,000만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규모의 다년 계약이 필요한데 두 명을 그렇게 붙잡을 능력이 피츠버그엔 없다. 설사 그런 계약을 줄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긴 어렵다. 피츠버그의 기둥이자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 중 하나인 앤드루 맥커천(27)을 능가하는 계약을 주긴 어렵기 때문이다. 6년간 5,150만달러 계약이 2017년에 끝나는 맥커천은 2018년도 구단옵션으로 1,475만달러 계약이 남아있어 사실 다음 4년간 계약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결국 워커와 알바레스는 올해 시즌이 끝나면 트레이드 시장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계속 붙잡고 있기에 구단의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최소한 한 명, 현실적으론 두 명 모두를 내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피츠버그는 이들을 대체할 선수가 필요하게 된다. 그렇기에 엄청난 파워 포텐셜을 지녔고 이들의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강정호가 이번 오프시즌에 포스팅을 통해 나온 것은, 피츠버그에게 어쩌면 상당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기적으로도 완벽했다. 강정호가 일단 올해는 벤치멤버로 뛰며 메이저리그 적응기를 거친 뒤 내년부터 워커 또는 알바레스의 공백을 자연스럽게 메울 수 있다면 피츠버그로선 더할 나위없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특히 3루수 자시 해리슨이 거의 모든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전천후 선수이기에 그가 2루 또는 1루를 맡고 강정호가 3루로 갈 수도 있어 수비포지션 문제는 그리 문제될 게 없다.
강정호에게 4년간 1,100만달러라는 만만치 않은 액수를 개런티하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 액수는 내년에도 워커를 붙잡을 경우 그의 1년 연봉에 불과하다. 만약 강정호가 피츠버그에서 한국에서 보여준 파워의 절반 정도만 보여줄 수 있어도 그런 선수를 구단 옵션까지 합쳐 5년간 평균연봉 250만~300만달러 정도에 붙잡은 피츠버그의 선택은 탁월한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피츠버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강정호 영입에 뛰어든 것인지 퍼즐이 풀리기 시작했다.
결국 결론은 당초 바깥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피츠버그는 진심으로 강정호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보험용이나, 모험용, 또는 한국시장 공략용이 아니라, 현재를 위해서, 또한 팀의 전략적 미래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제 문제는 과연 강정호가 이런 피츠버그의 기대에 걸 맞는 활약을 필드에서 보여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피츠버그의 이번 강정호 영입은 미래를 정확히 내다본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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