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모두 정상의 위치에 오른 뒤 만 33세의 나이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하고 빅리그 도전에 나선 ‘대한민국 4번 타자’ 이대호. 일본프로야구 챔피언이자 친정팀인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끈질긴 구애를 뿌리치고 웬만한 선수라면 감히 시도하지 못할 모험을 단행한 이대호는 지금 애리조나 피오리아에 위치한 시애틀 매리너스 스프링 캠프에서 마이너리거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이대호는 소프트뱅크의 1년 5억엔(425만달러) 또는 3년 18억엔(1,500만달러) 오퍼를 사양하고 시애틀과 1년 400만달러의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400만달러라고 하지만 이것은 메이저리그에 올랐을 때 이야기이고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하면 마이너리그 연봉을 받는다고 하니 사실상 계급장과 보호막을 다 포기하고 나서는 ‘백의종군’이다.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3년간 1,500만달러 개런티 계약을 포기하고 아무런 보장도 없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선택한 그의 배짱과 결단이 놀랍고 존경스럽다. 그의 목표가 돈이 아니란 사실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애틀과의 계약에서 이대호가 얻어낸 유일한 안전장치는 스프링 캠프 끝날 때와 시즌 중반에 행사할 수 있는 옵트아웃(Opt-out) 권리다. 일단 3월말 발표되는 시즌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할 경우 옵트아웃을 하고 프리에이전트(FA)로 나설 수 있다. 또한 만약 그 시점에서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구단의 마이너행을 받아들일 경우도 생각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엔 시즌 중반에 다시 한 번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호의 목표는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캠프 기간동안 실력으로 메이저행 티켓을 따내는 것이다. 스프링 시범경기에서 기대한 것만큼 자신의 기량을 펼쳐 보인다면 충분히 개막 엔트리에 들 수 있고, 또 시애틀이 아니더라도 옵트아웃 후 다른 ML팀에서 계약을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만에 하나 스프링 캠프에서 적응이 늦어져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FA로 나서도 다른 팀과의 계약이 쉽지 않다고 생각할 경우 구단의 마이너행을 조건부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구단에 1~2개월의 기간을 제시하고 이 기간 내에 빅리그 콜업이 없을 경우 자동으로 FA로 풀리는 방식이다. 일각에선 아대호가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할 경우 옵트아웃하고 FA로 나서 한국이나 일본무대로 유턴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으나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빅리그 도전에 나선 이대호가 그처럼 쉽게 꿈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마이너에서라도 자신을 입증할 기회를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나리오를 보면 역시 빅리그 도전에 나서는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나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의 차이가 실감난다. 메이저리그 계약을 한 이들은 스프링 캠프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여유가 있다. 지난해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초반의 부진을 극복하고 눈부신 활약을 펼친 것을 지켜본 메이저리그 팀들은 시범경기나 시즌 초반에 다소 부진하더라도 적응기임을 감안, 이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줄 것이다. 하지만 마이너리거 신분인 이대호는 그 정도까지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 모든 것이 낮선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대호는 상대적으로 실패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이대호의 도전은 성공할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판타자의 자존심을 포기하고 신인의 자세로 도전하는 이대호의 비장한 각오를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는 기대감이 크다. 물론 쉬운 도전이 아니다. 그와 동갑내기 고향 절친인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가 조언했듯 대부분 빅리그 팀들은 스프링 캠프에 들어가는 시점에 25명 개막 엔트리의 윤곽이 상당히 잡힌 상태다. 실질적으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빈자리는 1~2장 밖에 없다는 추신수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스프링 캠프 초청을 받아 나서는 선수들은 바늘구멍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힘든 경쟁을 뚫어내야 한다. 짧은 스프링 캠프 기간동안 경쟁자들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도 이대호는 일반적인 마이너리그 초청선수가 아니다. 한국 최고스타이자 일본시리즈 MVP까지 오른 선수를 붙잡았을 때는 다른 마이너리그 선수처럼 대우할 리가 만무하다. 다른 메이저리거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게 상당한 기회를 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스프링캠프 마지막 순간까지 귀중한 한 장의 엔트리 자리를 이대호에게 쓸 것인지를 고려할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지금 이대호가 보여주고 있는 비장한 자세를 감안하면 충분히 그가 경쟁을 뚫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이대호는 스프링 캠프에서 백업 1루수이자 주전 1루수 애덤 린드의 플래툰 파트너 자리를 놓고 헤수스 몬테로, 스테펜 로메로, 가비 산체스, 스티브 클레벤저 등과 경쟁을 하게 된다. 시애틀 홈페이지는 1루수 순위에서 이대호를 린드와 몬테로, 클리벤저에 이어 4번째로 올려놨다. 하지만 클리벤저는 주 포지션이 백업 캐처로 직접 경쟁상대는 아니며 이대호는 몬테로, 로메로, 산체스 등과 경쟁할 전망인데 모두 크게 부담스러운 상대들은 아니다. 이대호가 자신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선수들이다.
모든 것은 시범경기에서 이대호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지만 어쩌면 1루수 주전경쟁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마이너리그 유망주 3명을 내주고 밀워키 브루어스로부터 영입한 주전 1루수 린드는 빅리그 10년 커리어 동안 166홈런과 606타점을 올렸고 커리어 평균 타격라인 0.274/0.332/0.466을 기록한 중견 베테랑이지만 뚜렷한 약점이 있는 선수다. 왼손타자인 그는 왼손투수에 극도로 취약하다. 지난해 기록한 20홈런이 모두 오른손투수에게 뽑아낸 것으로 왼손투수를 상대로 친 홈런은 단 하나도 없고 타율도 0.291(오른손투수)와 0.221(왼손투수)의 격차가 크다. 커리어 통산으로 살펴봐도 166홈런 중 87%인 145개를 오른손투수에게 뽑았고 왼손투수에게 친 홈런은 21개뿐이다. 통산타율도 0.293(오른손투수)과 0.213(왼손투수)로 격차가 엄청나다. 왜 시애틀이 왼손투수를 상대로 나설 플래툰 파트너를 찾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대호로선 일단 왼손투수를 상대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만 있다면 그의 플래툰 파트너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대호가 일단 빅리그에 진입해 안정을 찾는다면 최종적으론 린드와의 주전경쟁이 이뤄질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제리 디포토 시애틀 단장은 “중요한 것은 이대호가 여기에 오고 싶어했다는 사실”이라면서 “그는 한국과 일본 팀들로부터 상당히 큰 액수의 오퍼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여기 오고 싶어했고 빅리그 자격이 있음을 입증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직접 트레이너를 고용해 거의 50파운드(23kg) 가까이 체중을 감량했다. 그 결과가 매일 어떻게 나타날지 지켜봐야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 번도 그의 경기를 직접 본적은 없지만 그는 이번 오프시즌 가장 눈여겨 본 선수였다”면서 “그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흥분되는 캠프가 될 것”이라고 이대호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디포토 단장 뿐 아니라 모든 한국팬들이 응원하며 지켜볼 스프링캠프가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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