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애틀 매리너스가 14일(이하 한국시간) 백업 1루수 후보 중 한 명이었던 개비 산체스를 방출시켰다. 당초 60명으로 캠프를 출발했던 시애틀은 이날 산체스외에도 쿠바 망명선수인 외야수 기예르모 헤레디아를 더블A로 내려 보내고 로스터 외 초청선수 7명을 마이너리그 스프링캠프로 재배치하는 등 스프링 트레이닝캠프 로스터 감축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이와 함께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진입을 향한 이대호의 도전은 마지막 스퍼트에 돌입하게 됐다.
지난해 일본프로야구팀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뛴 산체스(32)는 올해 시애틀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로스터 외 초청선수로 시애틀의 백업 1루수 경쟁에 나섰으나 결국은 가장 먼저 탈락하는 고배를 마셨다. 지난 2008년 당시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빅리그로 데뷔한 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뛰는 등 메이저리그에서 7년간 타율 0.254, 61홈런, 266타점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고 지난 2011년엔 올스타로도 뽑힌 바 있는 베테랑이지만 이번 스프링 캠프에선 9게임에서 타율 0.250(16타수 4안타)에 그쳤고 장타도 없었다.
그가 방출되면서 백업 1루수 경쟁은 전 유망주 헤수스 몬테로와 이대호의 경쟁으로 압축됐다. 또 다른 후보로 스테펜 로메로가 있지만 그는 원래 포지션이 외야수로 백업 외야수 경쟁에도 포함돼 있어 일단 이대호에게 직접적인 경쟁상대는 아니다. 로메로는 이번 시범경기에서 타율 0.450(20타수 9안타), 1홈런, 7타점, 4득점의 맹활약을 펼치고 있어 잠재적인 위협으로 떠오를 여지는 남아있다. 하지만 원래 외야수로 1루 수비는 아직 미지수이며 아직 마이너행 옵션도 남아있어 현 시점에서 이대호에게 보다 직접적인 위협은 몬테로라고 봐야 한다. 몬테로와의 경쟁은 단순히 필드에서 거둔 성적만이 아닌 추가 요소가 함께 고려돼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최고 유망주 중 하나였던 몬테로는 마이너리그 옵션이 다 소진된 선수이기에 만약 이번에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다면 시애틀은 그를 다른 팀에 뺏길 위험에 처하게 된다. 즉 그를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려면 일단 그를 방출자 명단에 올린 뒤 다른 팀이 클레임을 걸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말 몬테로를 얻기 위해 시애틀이 최고 유망주 투수였던 마이클 피네다를 뉴욕 양키스에 내준 사실을 감안할 때 그런 비싼 대가를 치른 선수를 잃을 수도 있는 결정이 쉬울 리가 없다. 더구나 몬테로는 아직 만 26세에 불과한 반면 이대호는 이미 만 33세이고 1년 계약을 한 선수다. 몬테로가 아직까지는 과거 최고 유망주라는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젊다. 이대호로선 몬테로의 현재뿐만이 아니라 몬테로의 미래와도 상대하며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경쟁이 무조건 이대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은 아니다. 시애틀이 올 시즌을 포기하고 미래를 향한 재건과정이 있는 팀이 아닌 이상 구단 입장에선 무엇보다도 올 시즌에 팀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선수를 찾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시범경기를 마친 뒤 그 선수가 이대호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이대호를 남기고 몬테로를 트레이드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다. 단지 두 선수가 비슷한 수준이라면 시애틀 입장에선 장기적인 관점과 투자회수 차원에서라도 이대호보다는 몬테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대호 입장에서도 사용할 카드는 있다. 그는 시애틀과 1년 계약시 스프링 캠프 종료시점에서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다면 계약을 종료시키고 프리에이전트(FA)로 나설 수 있는 옵트아웃 권리를 갖고 있다. 만약 개막 엔트리 진입이 불발되면 시애틀을 떠나 다른 팀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권리는 이대호 입장에서 섣불리 사용하기 힘든 ‘양날의 검’이다. 잘못 휘두르다간 자신이 다칠 수도 있다. 개막 엔트리 진입이 불발된 후 바로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해 FA로 나선다면 무엇보다도 그 시점에서 그를 원하는 다른 빅리그 팀이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3월말이라면 모든 구단들이 스프링캠프를 마무리하며 개막엔트리를 거의 확정지은 상태이기에 갑자기 부상으로 인한 이탈자가 나오지 않는 한 메이저리그 엔트리를 보장하는 계약을 찾기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대호로서 현재 최상의 시나리오는 몬테로와의 경쟁에서 가능한 격차를 벌려놓는 것뿐이다. 현재까지 성적에선 이대호가 앞서가고 있다. 이대호는 14일 경기까지 8경기에 나서 타율 0.267(15타수 4안타) 1홈런 3타점 4득점 2볼넷 2삼진과 출루율 0.353, 장타율 0.467을 기록중이다. 몬테로는 11경기에서 타율 0.227(22타수 5안타), 0홈런, 2타점, 1득점, 0볼넷, 6삼진과 출루율 0.227, 장타율 0.273으로 이대호에 비해 기회는 더 얻고 있지만 성적은 신통치 못하다. 이대호로선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레이스에서 몬테로를 상대로 확실한 비교우위를 입증하고 몬테로가 계속해서 부진을 보인다면 시애틀은 몬테로의 트레이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번 백업 1루수 경쟁은 타격성적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올해 처음으로 시애틀의 지휘봉을 잡은 스콧 서비스 감독은 그동안 백업 1루수 경쟁이 단순히 타격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임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이 1루수로서의 수비능력이었다. 타자로서 보다 수비수로 팀에 매일 매일 공헌을 할 능력이 있는 가를 보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대호는 타자로서 능력에 비해 수비수로선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런 서비스 감독의 수비 능력 발언은 어쩌면 이대호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대호는 이번 시범경기 시즌동안 마치 루키처럼 최선과 전력을 다하는 자세로 이런 선입견을 바꾸고 있고 불리했던 조건을 오히려 유리한 쪽으로 반전시켜가고 있다.
이대호의 수비력은 지난 9일 벌어졌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시범경기에서 가장 빛을 발했다. 당시 이대호는 1회말 선두타자 호세 라미레스가 우중간 펜스를 직접 때리는 2루타를 치고 나간 뒤 송구가 옆으로 빠지는 틈에 3루쪽으로 뛰려다 귀루하던 상황에서 2루까지 그를 따라가 베이스를 커버하고 송구를 받아 그를 태그해 잡아내는 재치있는 플레이를 선보여 뛰어난 야구 IQ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그 외에도 이 경기에서 정확한 홈송구와 다이빙 캐치 등 다른 호수비들까지 선보이며 메이저리그 1루수로 충분한 수비력을 입증했다.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플레이들이어서 어쩌면 이 경기가 이대호에게 빅리그행 티켓을 안겨줬을 가능성도 있다다.
문제는 아무리 수비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시애틀이 백업 1루수를 찾는 이유는 타격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전 1루수 애덤 린드가 워낙 왼손투수를 못 치기에 1루수 플래툰 요원이 필요한 만큼 이대호로선 꾸준하게 타격으로 무력시위를 이어가야 한다. 몬테로의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꺾으려면 잠시라도 주춤할 여유가 없다. 60명으로 시작된 시애틀의 스프링 메이저리그 캠프는 14일 1차 컷오프를 거치면서 이제 로스터외 초청선수 9명을 포함, 48명으로 줄어들었다. 4월5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개막전에 나설 엔트리는 25명. 본격적인 생존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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