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현대가 창단 후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정작 구단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스카우터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모양새다. K리그 클래식을 대표하고 선도해왔던 전북 현대라 그 충격이 더욱 크다.
23일 부산지검 외사부(부장검사 김도형)는 리그 경기에서 유리한 판정을 해달라며 전북 현대 관계자가 건넨 수 백만원을 수수한 K리그 전직 심판 유모씨(41)와 이모씨(36)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K리그 심판을 맡았던 유씨와 이씨는 지난 2013년 2~3차례에 걸쳐 한 경기당 100만원씩 건네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둘은 지난해 경남FC 경기 때 유리한 판정을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뒷돈을 받아 징역 1년과 징역 6개월 등 모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이 경남 FC뿐만 아니라 타 구단으로부터 돈을 건네받은 단서가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전북 현대의 심판 매수 혐의가 밝혀졌다. 이 전북 현대 관계자 역시 이들 심판에게 수백만원의 뒷돈을 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관계자는 전북 현대 소속의 스카우터 차모씨(48)로 밝혀졌다.
전북 구단은 23일 오후 해명과 함께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 해명이 축구 팬들로부터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전북은 "자체 조사 결과, 언급된 ‘프로축구 J구단 스카우터 C씨’가 구단 스카우터라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해당 스카우터는 구단에 보고 없이 개인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북 구단은 스카우터 '개인적'으로 진행한 일이라며 한 발 뺐다.
이어 "스카우터의 스포츠 정신에 벗어난, 적절치 못한 행위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심려를 끼쳐드려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여기서도 전북 구단은 스카우터 '개인'을 앞세웠을 뿐, 구단이 어떤 책임을 지겠다는 언급은 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전북은 "저희 전북 현대도 뜻밖의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진실규명을 위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 질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또 해당 스카우터는 금일부로 직무가 정지됐으며, 추후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면서 "개인의 행동에서 비롯된 사건이지만 전북 현대의 이미지 실추로 팬들께 상처를 드리게 돼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위에서 언급한 '저희' 전북 현대, '개인의 행동'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구절에서는 오히려 전북 구단이 피해자라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스카우터가 보고 없이 멋대로 행동했다', '개인의 행동이다'라고 언급했는데, 그렇다면 그 스카우터는 전북 현대 소속으로, 전북 현대의 녹을 먹은 직원이 아니었나. 그는 전북 현대의 명함을 들고 다니며, 발품을 팔고, 전북을 위해 땀흘린 스태프가 아니란 말인가.
그 스카우터는 전북이라는 팀을 대표해 선수들과 접촉도 하며 영입 작업을 할 터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스카우터를 관리하고 교육시키는 것도 전북 현대 구단의 몫이자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스카우터의 개인적 행동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모든 팀 스카우터들이 심판진과 접촉해 금품을 제공하고 혼자 책임지고, 구단들은 다 빠져 나간다면?
이는 참으로 대한민국에서 낯설지 않은 레퍼토리, '꼬리 자르기'이자 '선 긋기'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행태를 그나마 정정당당한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스포츠에서 마주하는 것 같아 참으로 불쾌하고 안타깝다.
전북은 지난 2014년과 2015년 K리그 클래식에서 2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총 4차례 정규리그 우승.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일컫는 '전주성'은 이제 K리그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가 됐다. 지난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중장기 프로젝트들. 세계적 수준의 클럽하우스와 유소년 시스템은 많은 구단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100년 가는 구단을 만들겠다며 '비전! 2020'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했다. '전라북도 축구 성지 만들기'. 전북 현대의 의지였다.
그런 전북 현대였기에 이번 '심판 매수 의혹' 사태가 더욱 충격적이고 안타깝다. 벌써부터 지난해 전북의 성적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K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비겁한 변명으로 들린다'는 말이 나돈다. '시즌권 반납 운동'까지 일 조짐이다. 심지어 24일 전주성에서 열리는 멜버른과의 ACL 16강 2차전 보이콧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 정작 애꿎은 최강희 감독과 선수들만 전폭적인 응원도 받지 못한 채 경기에 나서야 할 처지다.
위기다. 전북 현대는 물론, K리그 전체의 위기다. 지금이라도 책임있는 사람이 나서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팬들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책임 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심판 매수 등 불공정 심판 유도행위 및 향응 제공'이 확인될 경우, 상벌위를 거친 뒤 제명부터 하위리그 강등, 1년 이내의 자격정지, 10점 이상 승점 감점, 1억 원 이상 제재금 부과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연맹은 지난해 12월 클린축구위원회를 신설하며 비위 척결에 힘썼지만, 이번 사태로 K리그의 신뢰만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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