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만 해도 한용덕(55)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을 둘러싼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2018시즌 한화는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하며 11년 만에 가을 야구를 품었다. 부임 첫 해, 또 외부 프리에이전트(FA) 영입 없이 이뤄낸 성과였다. 한화는 그 해 정규시즌 77승 중 44차례나 역전승을 거뒀다. 팬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짜릿한 재미를 선사한 것이다.
그러나 그 해뿐이었다. 2019년 9위로 추락한 데 이어 올해는 최하위로 떨어졌다. NC 다이노스에 2-8로 져 팀 역대 최다 타이인 14연패를 기록한 7일 경기 후, 결국 한용덕 감독은 구단에 자진 사퇴 의사를 전하고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상 기류가 감지된 것은 하루 전인 6일 대전 NC전이었다. 경기에 앞서 한화는 장종훈(52) 수석코치, 김성래(59) 타격코치, 정현석(36) 타격보조코치, 정민태(50) 투수코치를 1군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새롭게 등록된 코치가 없었다. 팀 연패 중 분위기 쇄신 차원의 조치라고 하지만, 대신할 코치를 부르지 않고 경기를 치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화는 이날 한용덕 감독을 비롯해 차일목(39) 배터리코치, 전형도(49), 고동진(40) 주루코치, 채종국(45) 수비코치만 남아 경기를 진행했다. 한용덕 감독이 직접 투수 교체에 나서기도 했다. 구단은 경기를 마치고서야 퓨처스리그에 있던 코치들을 1군에 등록해 빈 자리를 채웠다.
한화 구단 관계자는 이날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코치진 보직 변경과 관련해 "오늘(6일) 오전 결정된 부분이며 한용덕 감독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한용덕 감독의 결정이냐, 구단의 압박이냐를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갔다.
한용덕 감독이 물러난 근본적인 이유는 물론 부진한 팀 성적이다. 감독으로서 당연히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사령탑 한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올해 여러 가지 악재가 한화를 괴롭히고 있다.
우선 선수들의 부상이다. 팀 내야수 하주석(26)과 오선진(31)이 지난 달 17일 동반 부상을 당했다. 같은 날, 그것도 같은 부위인 오른쪽 허벅지를 다쳤다. 비슷한 포지션의 두 선수가 다치면서 전술 운영의 폭도 줄어들었다. 주전 유격수 하주석의 자리에는 경험이 필요한 노시환(20)이 들어갔고, 멀티자원 오선진의 부재로 인해 남아 있는 선수들의 체력 부담도 가중됐다. 한용덕 감독도 "올해 부상이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팀을 이끌어야 할 베테랑들의 성적도 좋지 않다. 팀 핵심 김태균(38)은 올 시즌 16경기에서 타율 0.156, 주전 3루수 송광민(37)은 2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17에 그치고 있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한화와 1년 FA 계약을 맺은 김태균은 명예회복을 다짐했지만, 방망이 부진으로 2군을 다녀오기도 했다. 송광민은 시즌 초반 매서운 타격을 선보이다가 위력이 점점 줄어들었다.
여기에 외국인선수들도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해 두 자리 승수를 쌓았던 워윅 서폴드(30), 채드벨(31) 모두 힘이 빠진 모습이다. 6경기에서 2승3패, 평균자책점 3.07을 올린 서폴드는 지난 달 28일 대전 LG 트윈스전에서 6이닝 3실점한 뒤 패전 위기를 떠안은 채 마운드를 내려오자 더그아웃에서 글러브를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팔꿈치 부상으로 출발이 늦었던 채드벨은 올 시즌 3경기에 등판해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 중이다. 6일 NC전에서도 4이닝 7실점(7자책)으로 고개를 숙였다. 홈런을 3개나 내줬다. 3시즌째 한화 유니폼을 입고 있는 외국인타자 제라드 호잉(31)의 성적은 타율 0.209, 3홈런 12타점에 불과하다.
그동안 한용덕 감독은 팀 연패 탈출을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해왔다. 분위기를 바꾸고자 다양한 전술을 시도하면서도 선수들에게는 끝까지 믿음을 주려고 했다. 경기 외적으로는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커피를 돌리는가 하면 지난 5일 NC전을 앞두고는 직접 배팅볼을 던졌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팀 승리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북일고를 졸업한 한용덕 감독은 프랜차이즈 레전드 중 한 명이다. 1988년 빙그레(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뒤 통산 482경기에서 120승 118패 24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3.54를 기록했다. 총 1344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1999년 이글스의 첫 우승도 함께 맛봤다. 2년 전에는 감독으로서 한화의 가을 야구를 이끌었다. 두산 베어스(2015~2017년) 코치 시절을 제외하면 근 30년간 이글스맨으로 활약해왔다.
이러한 발자국들을 뒤로 한 채 한용덕 감독은 계약 마지막 시즌 도중에 혼자 다 짊어지고 떠났다. 감독 통산 성적은 318경기에서 142승 176패, 승률 0.44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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