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투호의 지난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은 비단 한국축구만의 경사는 아니었다. 4년 넘게 대표팀을 이끌며 월드컵 역사에 족적을 남긴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 커리어에도 분명한 '반등'의 발판이 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스포르팅 CP(포르투갈), 포르투갈 대표팀을 거친 뒤 '감독' 벤투의 커리어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크루제이루(브라질)와 올림피아코스(그리스), 충칭 리판(중국)을 거치면서 짧게는 2개월, 길어도 8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을 정도였다. 대표팀 감독 선임 당시 여론이 좋지 않았던 이유 역시 최근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벤투 감독은 4년 넘게 한국 대표팀을 이끌면서 12년 만의 16강 진출을 이끌어냈다. 세계적인 수준의 강팀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을 정도로 한국축구를 발전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대한축구협회와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면서 한국 대표팀과 동행은 막을 내렸다. 고국으로 돌아간 벤투 감독은 잠시 휴식을 취하다 다시 현장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차기 행선지는 대표팀보다는 클럽팀이 유력해 보인다. 특히 벤투 감독은 영국 스카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훈련하는 걸 싫어하는 감독이 누가 있겠느냐"며 간접적으로 EPL 무대 도전 의지도 밝힌 상황. 벤투 감독의 EPL 입성 의지는 포르투갈 언론들을 통해서도 많이 전해진 상태다.
벤투 감독의 향후 행보에는 한국축구 입장에서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4년 넘게 한국 대표팀을 이끈 만큼 그 누구보다 한국 선수들을 잘 아는 사령탑이 유럽 클럽팀의 지휘봉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속팀의 전력 보강이 필요할 때 대표팀에서 동행했던 제자들을 향해 '러브콜'을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대표팀에서 맺은 사제의 연이 유럽 클럽팀으로 이어졌던 전례들도 이른바 '벤투 효과'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는 요소다. 2002년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대회를 마친 뒤 PSV 아인트호벤 지휘봉을 잡았고, 이 과정에서 박지성과 이영표를 영입했다. 2006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 역시도 러시아 제니트 감독 부임 후 이호와 김동진을 품었다. 대표팀 사령탑을 따라 유럽 무대에 입성한 선수들은 자연스레 한국축구의 중요한 자산이 됐다.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대표팀을 지휘봉을 잡은 만큼 벤투 감독이 한국 선수들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다는 점은 앞선 전례들과 맞물려 또 다른 유럽파 탄생을 기대해볼 만한 대목이다. 직접 재능을 확인한 젊은 K리거나 유럽 변방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더 큰 무대로 불러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국을 떠나면서 선수들의 프로의식이나 태도에 대해 극찬한 것도 반가운 대목이다.
벤투 감독이 직접 영입하지 않더라도, 한국 선수에 대한 관심이 있는 포르투갈 등 다른 구단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선수 영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벤투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팀을 떠났지만, 제자들과는 쉽게 끊어질 인연이 아니다. 이른바 벤투 효과가 유럽파 배출로 이어진다면, 벤투 감독이 한국축구에 선사하는 또 다른 선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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