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풋볼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을 관통한 홍명보호 키워드는 단연 '스리백(백3)'이다. 센터백을 2명 배치하던 기존 전술과 달리 3명을 두는 새로운 전술이 대회 기간 내내 시험대에 올랐다.
실제 홍명보 감독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내내 포백(백4) 전술을 유지했다. 4-4-2나 4-3-3 등 전술 폭이 다양하던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전 감독과 달리 3차 예선 내내 4-2-3-1 전형을 기본 틀로 유지했다. 홍명보 감독이 "우리는 확실한 플랜 A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대신 이번 동아시안컵에서는 3경기 모두 3-4-3을 바탕으로 한 스리백 전형을 실험했다. 월드컵 예선 내내 활용하지 않았던 전술을 실험한 것이다. 홍명보호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축구 자체에 생소한 전술이기도 하다. 클린스만 전 감독 시절에도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단 한 경기 가동된 바 있다.
홍명보 감독은 "세계 무대에 맞선 플랜 B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한 수 아래의 팀들을 상대했던 기존 전술과 달리, 월드컵 본선에 대비해 수비에 무게 중심을 두는 전술도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실제 스리백 전술을 활용할 때 주도권을 내주면, 윙백과 윙포워드가 모두 내려서서 5-4-1 형태로 두텁게 수비진을 구축했다.
우승이 걸린 마지막 한일전조차 그는 기존 전술 대신 스리백 실험 기조를 유지했다. 그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스리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본에 0-1로 져 우승에 실패했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홍 감독은 "선수들은 준비한 대로 충분히 잘했다. 일본보다 우리 선수들이 더 잘했다"는 자찬까지 더했다.
문제는 이번 동아시안컵 명단 자체가 이른바 '2군'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베스트 전력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A매치 기간이 아니라 유럽이나 중동 등에서 뛰는 선수들의 소집 자체가 불가능해 K리거 23명, J리거 3명으로 대표팀이 꾸려졌기 때문이다. 일부 꾸준하게 대표팀에 승선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동아시안컵 멤버 중 대부분은 오는 9월에 있을 북중미 원정 평가전(미국·멕시코) 재소집부터 불투명하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선수들을 소집해 새로운 전술을 실험한 셈이다.
바꿔 말하면 대표팀 주축을 이루고 있던 해외파가 대거 돌아오면, 앞선 동아시안컵 스리백 실험 역시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 대표팀 주축을 이루는 선수들은 월드컵 예선 등을 거치면서 플랜 A에 익숙한 선수들이다. 홍명보호뿐만 아니라 전임 감독들 체제까지 그 연장선에 있다. 소속팀이 스리백을 쓰는 선수들조차 많지가 않다. 결국엔 다시 스리백을 실험해야 하고, 또 적응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장 스리백 구성부터 동아시안컵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수비 핵심인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를 비롯해 권경원(수원FC), 조유민(샤르자) 등 최근 대표팀 수비진을 꾸렸던 주축 선수들은 스리백 전술 자체가 생소하다. 중원이나 공격진도 다 마찬가지다. 결국 해외파 중심의 주축 전력이 소집되면, 앞서 동아시안컵에서 활용됐던 전술 실험은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난 동아시안컵 실험 자체가 무의미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동아시안컵에서도 플랜 A를 유지했던 일본의 선택과도 극명한 차이가 있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새 전술을 실험하는 게 아니라, 지난해부터 활용했던 기존 전술을 이번 동아시안컵에서도 유지했다. 3-4-3 전형의 틀은 유지하되 대표팀 구성만 전원 J리거로 바뀌었다. 자연스레 대회 기간 내내 플랜 A에 맞는 선수들을 찾는 데만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여기에 세밀한 전술 실험 정도를 일부 더하는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이른바 옥석 가리기도, 또 우승이라는 결과까지 모두 잡았다.
반면 홍명보호는 동아시안컵을 통해 얻은 소득 자체가 애매해졌다. 해외파가 돌아오면 실험이 다시 시작돼야 하는데, 이제는 A매치 소집 기간 자체가 짧다 보니 얼마나 빨리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스리백 전환에 실패해 플랜 A로 돌아가게 되면, 동아시안컵 기간 내내 스리백 전술 틀 안에서 시험대에 올랐던 선수들의 상황이 꼬인다. 월드컵이 불과 1년 앞으로 다가온 중요한 시점, 홍명보 감독의 동아시안컵 스리백 실험이 결과적으로 이도저도 아닌 선택으로 남을 수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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