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리그(MLB)의 '안타기계' 스즈키 이치로(52)가 동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수많은 우려를 뚫고 미국을 정복한 그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28일(한국시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이 위치한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는 2025년 명예의 전당 헌액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지난 1월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회원이 참가하는 투표에서 기준치(득표율 75% 이상)에 도달한 이치로와 CC 사바시아(45), 빌리 와그너(54)가 참석했다. 또한 '시대 위원회(Era Committee)'를 통해 입성한 딕 앨런(2020년 사망)과 데이브 파커(2025년 사망)의 유족도 자리했다.
이들 중 가장 주목받은 선수는 이치로였다. 그는 2019년 은퇴 후 첫 투표에서 총 394명의 투표인단 중 393명의 선택을 받아 무려 99.7%의 득표율을 기록, 넉넉하게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과거 팀 동료였던 마리아노 리베라(100%)와 데릭 지터(99.7%)에 이어 역대 3번째로 높은 득표율을 거뒀다.
비록 만장일치에는 실패했지만, 이치로는 또다른 최초의 기록을 달성했다. 바로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었다. 지난 1964년 무라카미 마사노리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한 후 수많은 일본인 선수가 미국에 진출했지만, 명예의 전당에 오른 건 이치로가 최초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에 따르면 이치로는 이날 연설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했다. 투표 결과 공개 직후 자신을 뽑지 않은 유일한 기자를 향해 "그분을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다. 함께 술을 마시면서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 이치로는 이날 "그 제안은 이제 만료됐다"며 유쾌한 농담으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치로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일본프로야구(NPB)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그는 9시즌 통산 타율 0.353, 1278안타를 기록했고, 무려 7년 연속 타격왕(1994~2000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최고의 타자로 활약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1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이치로는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일본인 야수가 되고자 했을 때 많은 의구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의 반응이 있었다. 온갖 비난과 부정적 평가가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나라를 부끄럽게 하지 마라'라는 말까지 했다"며 당시의 반응을 전했다.
그런 이치로를 지켜준 건 아내 후쿠시마 유미코였다. 그는 "아내가 나를 가장 많이 지지해줬다. 본인도 성공을 의심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며 "메이저리그 19시즌 동안 우리 가정이 항상 행복하도록 해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아내의 격려 속에 빅리그 무대에 도전한 이치로는 그야말로 역사를 썼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의 첫 시즌인 2001년 그는 타율(0.350)과 안타(242개), 도루(56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그 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손에 쥐었다. 이후 2004년에는 262안타로 1920년 조지 시슬러가 세웠던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257안타)을 경신했다. 이후 뉴욕 양키스와 마이애미 말린스를 거친 뒤 시애틀로 돌아와 2019년 3월 은퇴할 때까지 19시즌을 뛰었다.
이치로는 통산 메이저리그에서 2653경기에 출장해 3089개의 안타를 때려냈으며, 타율 0.311, 117홈런, 780타점, 1420득점, 509도루를 기록했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연속 200안타와 골드글러브 수상 등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자신의 성공을 언급한 이치로는 "작은 것부터 꾸준히 실천한다면 한계는 없다. 나를 보라"라며 희망을 전했다. 그는 "키 175cm, 몸무게 81kg인 내가 미국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너무 말라서 메이저리거들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며 "그래도 노력을 이어간다면 심지어 나 자신의 의심도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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