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자원들은 넘쳐나는데, 쓸 수 있는 자리는 오히려 더 줄었다. 행복한 고민일 수 있으나 좋은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일 수도 있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꺼내든 전술 변화와 맞물려 공격진 구성에 찾아온 딜레마다.
29일 발표된 10월 브라질·파라과이전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만 봐도 대표팀 공격진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캡틴' 손흥민(로스앤젤레스FC)을 필두로 오현규(KRC헹크) 황희찬(울버햄프턴)이 공격수로 분류됐다.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이재성(마인츠05) 이동경(김천 상무) 엄지성(스완지 시티)은 2선 공격 자원이다. 여기에 10월 명단에선 제외된 배준호(스토크 시티)나 대표팀 복귀 초읽기에 들어간 조규성(미트윌란) 등 그야말로 대표팀 공격 자원은 넘쳐난다. 소속팀 활약을 바탕으로 향후 대표팀 명단 한 자리를 꿰찰 후보군도 적지 않다.
저마다 소속팀 활약도 눈부시고, 대표팀 비중도 크다. 손흥민은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 로스앤젤레스(LA)FC 이적 후 연일 골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 4경기 연속골에 MLS 8경기 8골·2도움이라는 경이로운 스탯을 쌓고 있다. 오현규는 최근 2경기 연속 결승골을 터뜨리며 가파른 상승세를 타는 중이다. 이동경은 K리그1 공격 포인트만 20개(11골·9도움)를 채우며 K리그 최우수선수(MVP) 후보로도 거론된다. 이강인·황희찬은 소속팀에서 주춤하고 있으나 대표팀에서는 핵심 역할을 맡는 선수들이다. 이재성도 공격 포인트를 떠나 대표팀 내 역할이 워낙 크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선수는 단 3명뿐이다. 최근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본선에 대비해 수비수 숫자를 더 늘린 3-4-2-1(3-4-3) 전형으로 바꾸면서 공격수 숫자가 줄어든 탓이다. 지난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당시 활용했던 4-2-3-1 전형에서도 쟁쟁한 공격 자원들 중 4명만 선발로 나설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더 줄어든 셈이다. 저마다 소속팀 상승세가 가파르거나 대표팀 내 비중이 큰 선수들이다 보니 홍명보 감독의 고민 역시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9월 미국·멕시코와의 원정 평가전 2연전도 마찬가지였다. 홍명보 감독은 미국전 선발 공격진을 이재성과 손흥민, 이동경으로 꾸렸다. 멕시코전은 배준호와 오현규, 이강인이 선발로 출격했다. 멕시코전 선발에서 빠진 손흥민의 경우 부상 여파나 대표팀 소집 일정 등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 오롯이 감독 판단으로 벤치에서 출발한 게 무려 4년 3개월 만이었다. 홍 감독은 일찌감치 "손흥민이 얼마나 오래 뛰느냐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해졌다"며 손흥민의 '조커 기용' 가능성을 암시한 바 있다. 줄어든 공격진 수를 감안하면 앞으로 손흥민뿐만이 아니라 이강인, 이재성 등 다른 핵심 자원들도 얼마든지 선발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홍 감독이 전술의 무게중심을 수비에 두는 건 결국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강한 상대들에 대비하겠다는 의도다. 실제 손흥민이 교체로 투입되자마자 경기 흐름을 확 바꾼 멕시코전처럼, 핵심 자원들의 교체 활용은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수비에 무게를 두고도 자칫 경기 초반부터 흐름이 꼬여버리고, 이후 상대가 두텁게 수비진용을 구축한 이후라면 교체 카드를 통한 흐름 변화는 쉽지 않게 된다. 평가전이 아닌 월드컵 본선 무대라면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홍명보호 수비진은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만 확고한 주전일 뿐 여전히 다른 2명의 파트너는 계속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수비 조합은 아직 후보군조차 불투명한 가운데 전술 변화부터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정작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공격진의 수는 이전보다 오히려 더 제한된 셈이다. 전술 변화 탓에 좋은 공격 자원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건 대표팀 입장에서도 크나큰 손실이다. 결국 수비적인 전술 변화에 필연적인 공격진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홍명보 감독에겐 또 다른 과제로 남게 됐다.
한편 홍명보호는 내달 6일 국내에서 소집된 뒤 10일 브라질, 14일 파라과이와 차례로 격돌한다. 두 경기 모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오후 8시 킥오프한다. FIFA 랭킹은 브라질은 6위, 파라과이는 37위(한국 23위)다. 역대전적은 브라질전 1승 7패, 파라과이전은 2승 4무 1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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