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스포츠 외교의 상징과도 같았던 장웅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별세 소식을 접하며, 오랜 시간 가슴 한편에 남아 있던 기억들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30년 넘게 스포츠 기자로 살아오며 수많은 인물을 만났지만, 그처럼 강렬한 인상과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지닌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치·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북한을 대표하는 스포츠 외교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인간적인 온기를 잃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2002년 여름, 몬테카를로였다.
당시 부산 아시안게임을 한 달 앞두고 남북 체육 교류를 위한 중요한 회의가 열렸고, 나는 한국 방송사 기자로 그 현장을 취재할 기회를 얻었다. 김운용 IOC 위원과 함께 자리한 그는 이미 국제무대에서 큰 존재감을 가진 북한 스포츠 외교의 핵심 인물이었다.
첫 인터뷰는 다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지만, 다음 날 뜻밖의 장면이 이어졌다. 짧은 휴식을 위해 찾은 거리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마주친 것이다. 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편안한 차림의 그는 마치 동네 이웃처럼 소탈한 모습이었다.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는 정치나 이념이 아닌 인간적인 이야기와 유쾌한 농담으로 웃음을 건넸다. 그 순간 나는 '북한의 IOC 위원'이 아닌, 한 명의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그 인연은 뜻밖의 기회로 이어졌다.
2003년, 국기원 시범단의 평양 공연을 계기로 나는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 그 배경에는 그의 배려가 있었다. 그는 몬테카를로 회의를 취재했던 한국 기자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우리 측에 전달했고, 그 덕분에 나는 평양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북한 스포츠 현장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은 기자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 깊은 기억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는 공식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보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한국 측과의 소통을 이어갔다.
밴쿠버의 한 한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된장찌개를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이건 정말 맛있다"며 두 그릇을 비워냈다. 국제 스포츠 외교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장웅이라는 사람의 본질이었다.
190cm의 큰 키에 농구 국가 대표 선수 출신인 그는 지난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후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이끌며 정치적 제약 속에서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고, 북한의 목소리를 국제 스포츠계에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남북 스포츠 교류의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부산 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 응원단 파견, 시드니와 아테네, 평창 등 수 차례 올림픽에서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 하는 역사적인 장면 뒤에는 그의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는 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었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북한 내부의 스포츠 환경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북한에도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스포츠를 기록하고 전달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스포츠가 이념을 넘어 인간을 연결하는 공통의 언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후 다시 평양을 찾았을 때 그의 소식을 물었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2018년 IOC 위원직에서도 물러나며, 한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정치와 이념의 경계 위에서 스포츠라는 언어로 소통을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남북 스포츠 교류의 여러 장면들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놓은 다리 위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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