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힘없는, 안일한 공 하나 때문에..."
데뷔 시즌부터 기회를 잡았으나 이후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부족한 점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를 갈았지만 친정팀에 내준 홈런 하나가 너무도 뼈아팠다.
배동현(28·키움 히어로즈)은 이를 갈았고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 무려 1639일 만의 기다림 끝에 프로 통산 2번째 승리를 수확했다.
배동현은 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2026 신한 SOL KBO리그 방문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85구를 던져 5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팀이 11-2 대승을 거뒀고 배동현은 2021년 10월 5일 한화 이글스에서 따낸 승리 이후 무려 4년 5개월여, 정확히는 1639일 만에 프로 두 번째 승리를 거머쥐었다. 2021년 데뷔 이후 선발승은 처음이다.
경기고와 한일장신대를 거친 배동현은 2021년 2차 5라운드 42순위로 한화에 지명돼 20경기 38이닝 동안 불펜 투수로 활약하며 기대를 모았다. 데뷔 첫 승리도 따내며 꽃길만 걸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곧바로 국군체육부대(상무)로 향했다. 상무에서도 필승조로 활약하며 성장세를 보였는데, 전역 후 잔부상도 겹치며 1군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24년 퓨처스리그에선 29경기 5승 7홀드 평균자책점(ERA) 0.30이라는 괴물 같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37경기 41⅔이닝을 뛰며 3승 4패 1세이브 4홀드를 기록했는데 1군 콜업은 없었다.
시즌을 마치고 2차 드래프트에서 새로운 기회가 왔다. 키움이 3라운드에서 배동현을 지명했고 선발 경쟁에 돌입했다. 시범경기에서 불펜으로는 2⅔이닝에서 5실점했지만 선발 등판한 지난달 22일 SSG전에선 4이닝 7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4선발로 예정된 김윤하가 부상을 입었고 선발로 시즌을 준비한 배동현에게 기회가 왔다. 개막전 불펜 피칭을 겸해 나선 등판에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심우준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고 고개를 떨궜다. 팀은 연장으로 향했고 결국 뼈아픈 끝내기 패배를 안았다.
이날은 달랐다. 3연패에 빠져있는 팀을 구해야 했다. 최고 시속 148㎞의 직구는 낮게 제구가 잘 됐고 더불어 커브와 슬라이더, 체인지업에 SSG 타자들의 방망이가 쉽게 끌려나왔다.
1회부터 3점의 득점 지원을 안고 등판한 배동현은 최정에게 안타, 김재환에게 볼넷을 내줬으나 고명준을 유격수 땅볼로 돌려세워 기분 좋게 시작했다.
2회에도 주자를 내보냈지만 삼진 2개를 잡아내며 위기를 지웠고 3,4회에도 선두 타자를 출루시켰지만 위기 없이 막아냈다.
5회 타선이 2점을 더 뽑아냈고 KBO 통산 홈런 1위 최정까지 달아나는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을 잡고 승리 요건을 챙겼다.
타선은 더 힘을 냈고 불펜 투수들도 안정적 투구로 팀 승리를 지켜냈다. 그토록 기다리던 승리라는 열매가 배동현에게 돌아갔다.
경기 후 설종진 감독은 "선발 배동현이 만점 활약을 펼쳤다. 5이닝 무실점 호투로 맡은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며 "지난 첫 등판(28일 한화전)에서 결과가 좋지 않아 부담이 있었을 텐데, 오늘 경기에서 스스로 부담감을 잘 이겨내며 멋진 피칭을 보여줬다.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경기 후 만난 배동현은 "2021년도 이후 5년 만에 1군에서 제대로 야구를 하고 있는데 비록 한 경기지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긴 나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뀔 수 있는 경기였다. 나름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며 "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화에서 코치님들, 트레이너분들이 케어를 많이 해줬다. 잔부상도 있었다. 1군에 올라가기 위해 5년 동안 준비한 것 같다. 제 성장을 위해서 계속 달려왔다"고 지난 날을 돌아봤다.
2차 드래프트는 기회가 됐다. 배동현은 "기회가 오겠지만 많이는 안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저를 뽑아주셨는데 불신이 아닌 확신으로 바뀔 수 있게끔 잘 던지고 싶다"고 되뇌었다.
그렇기에 첫 경기의 부진이 뼈아팠다. 배동현은 "속상하기보다는 화가 엄청 많이 났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다렸는데 그 힘없는, 안일한 공 하나 때문에 팀 승리가 날아갔기 때문에 저에 대한 짜증과 화가 많이 났다"며 "그걸 다른 팀을 상대로 분풀이를 하려고 외적으로 티를 내진 않고 내적으로 많이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를 갈았던 배동현은 완전히 다른 투구를 보여줬다.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플랜들이 잘됐다. 전력 분석 코치님들이랑 많이 얘기를 했지만 (박)진영이 형, (안)우진이, (오)석주, (김)성진이 형에게도 야구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제가 그들보다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조금이라도 1군 경험이 있는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뭐 하나라도 얻으려고 했고 저번 시범경기부터 조금씩 써먹을 수 있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감사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부모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 될 것 같다"던 배동현은 이내 "그 다음에 한화에 있었던 이태양 선수, (엄)상백이 형, (김)범수 형, (김)민우 형, 이민우 형 등에게 좋은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대전에서도 상백이 형이랑 같이 얘기를 많이 했는데 형들의 가르침이 저를 만들어줬던 것 같다. 제가 성장하는데 제일 컸던 형들이랑 가장 오래 붙어 있었다. 단톡방이 있어서 또 시끄러울 텐데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한다"고 웃었다.
배동현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1군 풀타임이지만 보직은 어디에 가든 상관이 없다. 제가 맡은 역할에서 제대로 하려고 한다"며 "선발 투수지만 첫 경기다 보니 이닝을 많이 못 가져왔는데 최대한 이닝도 가져가면서 적은 점수 차로 불펜들을 더 힘도 아끼게 하고 더 크게 생각을 해야 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야구 팬들에게도 아직은 낯선 이름이다. 배동현은 "저는 공격적인 투수다. 스트라이크 존을 많이 공략하는 투수로 남고 싶고 도망가는 것보다는 맞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하겠다"고 어필했다.
전 소속팀 선배인 류현진과 선발 맞대결을 꿈꾼다. 배동현은 "칼을 갈고 있다. (류)현진 선배님이 잘 챙겨주셨는데 '선발로 한 번 만나보자'고 하셨다.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일단 대답은 영광이라고 했다. 아직은 꿈만 같지만 제가 잘 던진다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를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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