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 선생님, 벌써 10년..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발행:
김관명 기자
[김관명의 스타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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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선생님,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2002년 8월27일, 황망한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 부랴부랴 일산 국립암센터 빈소를 향해 달려간 지가 벌써 10년이 흘렀다는 얘깁니다. 무더운 여름 밤, 병실에 홀로 계신 사모님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고 만 이 기자도 꼭 10년만큼 나이 먹었다는 얘기이기도 하겠죠.


제가 좋아하는 김종삼 시인의 '묵화'의 시심(詩心)이 새삼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묵화' 전문)


그 10년 동안, 홀로 가신 선생님 뒤로 남겨진 그 모-오-든 사람들이 서로 적막하고 피곤했기 때문일까요. 선생님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수십 번도 더 말씀하신 앙드레 김도, "노풍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대통령 당선을 예측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부은 발잔등이나마 어루만질 수 있는 지금이 오히려 고마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생생합니다. 암센터와 당시 분당 자택을 일주일에 2,3차례씩 6개월이나 오가며 선생님을 만나 뵙던 일, 60년대 말부터 험난하게 시작된 선생님의 연예생활 일대기를 한 문장 한 문장 구술 받으며 선생님의 고단함과 환희와 회환에 제 가슴 저리던 일, 당시 막 태어난 제 딸아이 이름까지도 지어주시려던 그 자상함까지 모두가요.


또한 아직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한일월드컵, 그 중에서도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 경기가 펼쳐졌던 대전구장의 탄식과 함성 말입니다. 안정환의 실축, 설기현의 동점골, 안정환의 골든골. 선생님은 폐암말기 아픈 몸도 잊으시고 맘껏 웃으셨고, 붉은 악마들은 휠체어에 앉은 선생님을 향해 큰 함성으로 외쳤습니다.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이주일!"


2012년, 상황이 묘하게 2002년과 겹칩니다. 얼마 전 올림픽 출전사상 처음으로 한국 대표팀이 최강 영국팀을 꺾고 4강에 오른 것이나, 전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할 18대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것 모두가요. 이럴 때 선생님이 살아계셨으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생전에 선생님은 저한테 자주 말하셨죠. "김 기자, 태극전사들이 져도 박수쳐줄 수 있어? 선수들이 져도 응원해야 진정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거야."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일종의 '바람'이야. 정치에서는 이 바람을 절대 무시 못해."


아니, 축구도 말고 정치도 말고 2012년 대한민국의 일상에 대해 들려주실 선생님의 다정하면서도 따끔한 말투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요즘 코미디 풍조라든가, 독도 관련한 일본인들의 행태라든가, 어린 가수들의 이상한 왕따설이라든가, 함부로 길거리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가 된 흉악범죄에 대한 장탄식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목선 타고 월남한 사연' '이리역 폭발사고 때 하춘화 구한 무용담' '극장식 술집CF로 탄생한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나 유행어도 괜찮습니다. 선생님 같은 믿고 기댈 만한 진정한 큰 어른, 피곤한 소 목덜미 어루만져줄 그런 할머니 같은 어른이 몹시 그립다는 이 40대 중반 기자의 애 같은 투정이겠죠.


선생님, 폐암 다 이겨내고 지금 살아계셨으면 이 혼돈스러운 대한민국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까요. 그래서 지금 선생님의 빈자리가 너무 커 보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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