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이호섭이 특유의 긍정적인 화법으로 아침을 밝혔다.
24일 오전 방송된 KBS 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은 코너 '화요초대석-살자하면 살맛나는 게 인생입니다'로 꾸며져 작곡가 이호섭이 출연했다.
이날 이호섭은 "큰어머니께서 세 살이 된 저를 거둬서 친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해서 키워주셨다"고 운을 뗐다.
이호섭은 자신의 입양을 큰어머니의 이른 사별 때문이라고 밝히며 "큰어머니가 시집온 지 2년 반 만에 사별했다. 집안 어르신들이 너무 젊어서 혼자 살기 어려우니 좋은 인연을 만나 재가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큰어머니는 울며 '제가 박복해서 남편도 잃어버린 마당에 다른 데 간들 무슨 복이 있겠냐"며 "도련님이 장가가실 때가 됐으니 아이 하나만 보내주시면 의지하면서 살겠다'고 하셨다"고 이야기했다.
또 친어머니가 자신을 세 살까지 키우다 큰어머니에게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아기다. 젖 떼기까지 얼마나 예뻤겠냐"며 "글로 다 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한 뒤 "큰어머니는 올해 초 세상을 떠나셨고, 친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셔 병원에 입원 중이시다"라고 전해 안타까움을 유발했다.
자신을 키워준 큰어머니의 꿈은 이호섭이 판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이호섭은 고시 공부를 하던 중, 집안 어르신이 불러다가 '너는 연좌제가 걸리니까 고시 공부 하지 말라'라고 말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호섭은 "아버지가 옛날에 글을 좀 배우신 분이다. 일찍 학문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좌익 활동을 하셨다. 해방을 맞이하고 나서 정부에서 남쪽에서 좌익을 하시는 분들에게 자수하라고 했고, 아버지께서는 결혼도 했으니 살림을 꾸려야겠다고 생각해 자수했다"고 전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후 6.25 전쟁이 발발하고 군사적 정보를 그 쪽에다가 흘린 분들이 일부 계셨던가 보다. 이런 사이에 저희 아버지가 어느 날 아침에 끌려나가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총살을 당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알고 보니 나는 태어날 때부터 법정 무능력자였다.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를 빚쟁이로부터 보호도 못 하고 공무원 시험도 못 본다. 노동이나 장사 같은 개인적인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약한 마음에 낙동강에 몸을 던졌다. 몸을 던진 후에야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다시 태어난 그는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상경했다. 처음에는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했으나, '연예부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고개를 숙이는 성격이 되지 못해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전했다.
그는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 주현미 '잠깐만', 이자연 '찰랑찰랑', 현철 '싫다 싫어', 김연자 '10분 내로'까지 히트곡을 다수 발표했다. 또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현재 '가요창작론'이라는 교과서를 편집 중에 있다고. 이호섭은 "'가요창작론'이라는 작사론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나오는 거다. 태권도가 우리나라 종주국이듯이, 작사론도 종주국이 되어 후배들에게 먹고살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끝으로 "올해 나이가 환갑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예행연습이고, 올해부터 1살이라 생각한다. 꿈이 살아있는 순간까지는 날개를 접지 않을 생각이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어려운 순간만 지나면 '웰컴 이호섭'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을 거다. 한 고비만 지나가시라"라고 특유의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시청자들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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