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미드'가 대세다. 공중파에까지 진출한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 파워를 앞세워 각종 미국산 드라마들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미드족'을 자처하는 이들도 곳곳에서 목소리를 낸다. 김윤진이 출연해 화제가 된 '로스트'를 비롯해 '24', '그레이 아나토미', '히어로', '위기의 주부들', '하우스' 등 화제의 미국 드라마들은 케이블과 공중파를 공략하며 득세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미드'는 2006년과 2007년을 아우르는 새로운 경향인가라는 질문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수십년 전부터 많은 미국산 드라마들이 인기를 모아왔고 그 주인공들은 웬만한 한국 배우 못지 않은 뜨거운 인기를 누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드' 열풍을 과연 요새 이야기라고만 할 수 있을까? 돌이켜 보면 1980∼90년대 미국 드라마의 인기가 21세기에도 새롭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앞서 화제를 뿌렸던 이들 미국산 드라마들을 당시엔 그저 '외화시리즈'라 불렸다. 그때는 이들을 '미드'라 부를 인터넷 문화와 자신을 '미드족'이라 지칭할 네티즌의 센스가 없었을 뿐이다.
피부를 한 겹 벗기면 축축한 파충류 피부가 나온다는 미녀 외계인만으로 전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던 'V'는 1980년대를 풍미한 이른바 국민드라마였다. "할아버지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지"라며 조그마한 칼 한 자루로 모든 걸 해결했던 만능재주꾼 '맥가이버', 토요일 학교를 다녀온 학생들을 늠름한 모습으로 기다리던 '레니게이드'는 당시 19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1970년대 대표작은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라는 영웅담. 뒤를 이어 1980∼90년대에는 '맥가이버'와 '레니게이드'를 비롯해 '에어울프', '머나먼 정글' 등의 전투물이나 '미녀와 야수' 같은 로맨스물, '레밍턴 스틸', '제시카의 추리극장' 같은 탐정물이 큰 인기를 모았다. '케빈은 열두살', '슈퍼소년 앤드류', '천재소년 두기'로 이어지는 청소년물 역시 시리즈가 바뀔 때마다 화제를 모았다.
1990년대 후반 '미드'의 힘은 다소 줄어든 듯 했다. 주말과 늦은 밤에 집중 편성됐던 미드의 열기가 시들해지고 평일 밤, 혹은 주말 밤 편성된 미니시리즈를 앞세운 한국 드라마들이 화제를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국산 트렌디 드라마, 시트콤이 안방극장을 점령하며 '외화시리즈'는 서서히 비인기 장르로 전락한다.
그러나 '미드'는 조용히 부활을 준비했다. 할리우드란 거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미국식 드라마 제작 환경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탄탄한 제작 시스템과 아낌없는 물량 투입, 다양한 소재 개발 등은 곧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제리 브룩하이머, 브라이언 싱어 등 할리우드에서 두각을 나타낸 영화감독, 제작자들마저 활동 영역을 넓혀 '미드'의 귀환에 결정적 힘을 보탰다.
미드의 귀환을 먼저 예고한 것은 쏟아져 나온 전문직 드라마들이었다.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 'E.R' 등을 필두로 '그레이 아나토미', '하우스' 등 히트작이 쏟아져 나왔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로마' 등 영화보다 더 영화처럼 대규모 물량을 쏟아부은 대작들도 각광받았다. 백악관과 FBI를 정면으로 건드린 '웨스트 윙'와 '24', 미스터리 극의 새 지평을 연 '로스트', 미국 중산층의 허실을 파헤친 '위기의 주부들' 등이 연이어 대박을 쳤다.
업그레이드된 '미드'는 재빠르게 한국에 상륙한다. 트렌디 드라마의 사랑 타령, 불륜과 출생의 비밀에 식상해 하던 국내 시청자들은 '미드'의 빠른 호흡과 탄탄한 전개에 눈길을 뺏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잡한 두뇌 퍼즐로 가득한 '프리즌 브레이크'와 매력남 '석호필'이 대박을 쳤다. 그에 열광한 이들은 '섹스 앤 더 시티'에 따라 생활방식까지 바꿔가며 한 발 앞서 '미드'를 즐겼던 20대와 30대 여성들이다.
1990년대의 '미드'와 지금의 '미드'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분명한 차별을 보인다. 이를 받아들이는 한국의 상황도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당시의 미국 드라마가 주말 공중파 외화 시리즈를 중심으로 학생 등 젊은 시청자들을 공략했다면 현재의 '미드'는 다채널 시대의 덕을 톡톡히 본다. DVD나 케이블, 인터넷 다운로드 등이 미드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석호필'에 열광한 20∼30대 여성 등 보다 새롭고 세련되며 수준높은 콘텐츠를 원하는 성인 시청자들이 불륜 드라마와 가족 드라마에 반응하는 중년들과 분명한 차별을 이루며 '미드' 열풍의 중심에 섰다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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