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처럼 중견연기자의 이름과 무게감이 빛난 해도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젊은 스크린 스타들이 TV드라마로 의기양양하게 컴백해도 백약이 무효였던 반면, 중견연기자들은 그들의 존재감만으로도 출연 드라마를 시청자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나이든 시청자는 물론 어린 시청자들도 완숙한 이들 중견연기자의 연기에 환호하고 또 환호했다.
중견 연기자들의 앙상블이 가장 빛났던 드라마는 역시 KBS 주말 '엄마가 뿔났다'. 뿔나고 집나간 '엄마' 김혜자와 역시 뿔난 상태에서 집나갔던 다른 집 '아빠' 김용건을 비롯, 뿔난 속 혼자 풀어야 했던 백일섭, 남들 뿔나게 하는 데는 큰 재주 있었던 장미희 등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중견 연기자들의 황홀한 메인 상차림이었다. 곁방살이하는 '쌍둥이 고모' 백일섭, 드라마 막판 황혼 로맨스를 선보인 이순재도 큰 버팀목. 이 드라마 최고시청률은 42.&%, 마지막회 시청률은 40.6%였다. 시청률로도 올해 최고 드라마였던 셈이다.
주말 비슷한 시간대 방송됐던 SBS '행복합니다'도 중견의 힘이 컸다. '엄뿔'의 장미희와는 다른 아우라를 뿜어낸 '사모님' 이휘향과 차분하고 속내 깊은 아버지 역의 길용우, 여기에 권기선과 중년 로맨스를 선보인 '울컥 아버지' 이계인의 합작에 이 드라마는 30.3%라는 만만치 않는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이종원 최지나 채영인의 피말리는 '젊은 중년'의 삼각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김효진 이훈 커플의 아슬아슬한 연기력을 커버해준 것도 바로 이들 중견연기자들이었다.
SBS 주말드라마 '조강지처클럽'도 중견연기자들의, 중견연기자들에 의한, 중견연기자들을 위한 작품. '안양순' 김해숙-'한심한' 한진희, '길억' 손현주-'한복수' 김혜선-'이기적' 오대규를 비롯해 '돌아온 언니' 오현경(나화신)과 '대한민국 대표 찌질남'에 등극한 '한원수' 안내상의 티격태격 연기 앙상블은 주말 밤 시청자들을 안방으로 몰고 온 일등공신이었다. 올 1월 17.1%로 시작했던 이 드라마는 4월6일 처음으로 30%를 돌파하더니 10월5일 41.3%로 막을 내릴 때까지 30%대 시청률을 거의 놓친 적이 없는 흔치 않는 드라마였다.
올 상반기 월화드라마를 평정했던 MBC '이산'은 또 어떤가. 지엄과 자애를 동시에 보여준 영조 역의 이순재 포스는 이 드라마 방송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다. 여기에 시청자 미움을 한 몸에 받아야 했던 정순왕후 역의 김여진, 특별 출연 형식의 잠깐 출연만으로도 인상을 남긴 '사도세자' 이창훈, 깐깐한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 '장태우 대감' 이재용까지 '이병훈 사극'답게 검증받은 중견연기자들의 연기 내공은 이서진 한지민 등 젊은 연기자의 부족한 점을 채워준 은인들이었다.
방송중인 MBC 월화 '에덴의 동쪽' 역시 중견연기자들의 힘으로 드라마를 힘들게 이끌고 가는 상황이다. 신들린 듯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카지노 대부' 유동근을 비롯해 악의 화신이라 할 '신태환' 조민기, '버럭'과 '속정'을 동시에 갖춘 어머니 이미숙, 출연분량이 아쉬운 '전직 간호사-현직 로비스트' 미애 역의 신은정 등등. 이들이야말로 송승헌 이연희 등 젊은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이밖에 의학드라마 흥행 불패의 신화를 다시 쓴 '뉴하트'의 조재현을 필두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고 최진실과 손현주, '식객'의 최불암, '온에어'의 이범수, '일지매'의 이문식까지 올해 히트 드라마는 중견연기자들을 위한 가슴 벅찬 행진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역시 꿩 잡는 게 매,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이라고, 중견 연기자는 괜히 '중견'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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