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삼 시인의 시 중에 '묵화'(墨畵)라는 게 있다. 고적하고 쓸쓸하고 무상해서, 아픈 시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그 소만이 아니다. 어감은 다소 이상하지만 올해 기축년은 유난히 개와 소가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워낙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짐승들이라 그럴까. 과연, 2008년이 광우병 파동이라는 상처를 안겼다면, 2009년 올해는 보통의 못된 인간은 결코 안길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과 감동을 이들 소와 개는 아낌없이 줬다.
우선 지금도 많은 관객들, 특히나 40대 이상 중년 관객은 '워낭소리'(감독 이충렬)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나이 든 소, 삶의 무게로 무릎이 팅팅 붓고 엉덩이에는 덕지덕지 오물이 붙은 그 못난 소. 그럼에도 묵묵히 40년 평생 오갔던 길을 또다시 걷는 이 소의 피곤한 모습에, 이 소를 둘러싼 팔순 노부부의 한가득 설움 섞인 애정에 웬만한 선량한 관객은 펑펑 울었더랬다.
이렇게 해서 눈물 흘린 관객, 지난 1월 개봉한 이들의 78분짜리 마지막 동행을 지켜본 관객이 무려 전국 300만명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이자, 한국 독립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이었다. 영화 카피 그대로,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결국, 김종삼 시인이 옳았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관객, 그리고 소 모두 '서로 적막'했던 거다.
TV에선 반려견 버전의 '워낭소리'가 시청자 마음을 훔쳤다. 지난 7월3일 방송된 MBC 스페셜 '노견만세'(老犬萬歲)는 죽음을 앞둔 노견과 주인의 따뜻한 일상, 가족과도 같은 반려견의 마지막 작별을 그렸다. 주인공은 17살짜리 대부, 16살 막내 찡이와 비비. 대부는 '엄마' 김인순씨가 아들의 수술 때문에 잠시 미국에 간 사이 최후를 맞고,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에도 상태가 악화한 비비에게 가족은 수의까지 준비했다.
몇몇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 통곡했다. 어차피 죽음이란 건 개들도 피할 순 없는 거니까,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그 '두려운' 인연이 무서워 개들을 키우지 않으니까. 이들은 게시판을 통해 "슬프지만 따뜻한 프로그램에 감사드린다", "개 키우는 것 자체가 죄인인 냥 바라보는 사람들의 그 편협하고 잔인한 시선에 찔려 너덜해진 마음이 많이 위로가 되었다", "TV를 보며 내내 울었다"는 글을 남기며 개들과 그 가족들이 준 감동의 자락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앞서 올 2월엔 SBS 'TV동물농장'을 통해 방송된 유기견 '꽃님이'가 우리의 속마음을 꾸짖었다. 아무 말도 못하는 짐승이라고, 아무 생각까지 없진 않다고. 그리고 '순전히 당신들, 인간의 마음만으로 우리들을 대하지 말라'고. 미국에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동물 교감자)로 활동하고 있는 하이디씨가 꽃님이의 속마음을 진단해 화제를 모은 사연이다.
그 사연이란 이랬다. 지난 2007년 6월 뱃속에서 축구공만한 종양이 발견된 15살(추정)의 시츄 암종 꽃님이. 한국동물복지협회 동물자유연대가 발견했을 당시 꽃님이는 종양 뿐만 아니라 신장 이상에 한쪽 각막까지 터진 상태였다. 그래서 동물자유연대는 한 달 여가 지난 후 꽃님이를 안락사시키기로 하고 병원에 데려갔다. 그러나 병원은 안락사를 반대, 극적인 수술을 시도했고 꽃님이는 기적적으로 기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꽃님이는 이후에도 병원 구석에서 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음을 닫은 것. 하이디는 꽃님이와 '대화'를 이렇게 전했다. "꽃님이가 자기는 학대 받지 않았다며 공원에 간 얘기며 주인집 아들 등에 대해 얘기했다.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해 원망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워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꽃님이는 앞으로 (물리적 치료가 아닌) 감정적으로 치료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꽃님이를 대할 때 기분이 좋았을 때, 에너지가 충만했을 때를 떠올리면 그 에너지가 꽃남이에게 전해질 것이다."
시청자가 이 순간 느꼈던 감동과 눈물은 당당 김민정 PD가 잘 요약했다. 어떻게 보면 이미 김종삼 시인이 간파했던 내용이다. "아픈 동물이 낫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통해 동물을 다루는 마음이 변했다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장도 공감했다. "꽃님이를 겪으며 우리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꽃님이도 우리를 인정해줬으리라 생각한다."
그래 맞다. '워낭소리'의 늙은 소, '노견만세'의 대부·찡이·비비, 그리고 '꽃님이', 그들도 우리처럼 아팠고 외로웠고 적막했던 거다. 그러면서 우리의 표정을 읽어내려 애쓰며 때론 서러워하고 때론 기뻐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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