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KBS '개그콘서트' 최고의 유행어는 역시 "이~뻐"일 것이다. 정범균 최효종 조지훈 등이 나오는 '사마귀 유치원' 코너에서 '쌍칼' 조지훈이 말끝마다 내뱉는 이 말 "이~뻐." 신데렐라 계모가 왔는데, 이~뻐. '애정남' 최효종의 지적이 옳았다. 남자는 영원한 '검은 동물'인 게다.
지난 1999년 시작한 '개그콘서트'가 올해에도 이름을 기억할 만한 개그 스타와 인상 깊은 코너들을 배출하고 있다. 때로는 밀착형 생활유머로, 때로는 고전적 슬랩스틱이나 콩트, 코믹송으로 공개 코미디의 달인임을 재입증한 '개콘'. 요즘 '개콘'의 스타 7인과 이들이 펼치는 유머 코드 7가지를 짚어봤다.
"아, 맞다 맞아" 공감 120% 개그의 달인 최효종
'행복전도사' 약발이 떨어질 무렵, 다들 최효종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왜들 그래요? 마치 집에 슈퍼카 2대 정도 없는 사람들처럼?"이라는 '행복전도사'의 허세유머는 "명절 용돈, 고시생에게는 주는 겁니다. 한방이 있으니까요"라는 '애정남'의 A형 유머로 진화했다. "교사가 집 사는 거요, 어렵지 않아요. 숨만 쉬고 217년만 버티면 돼요"라는 '사마귀 유치원'의 '일수꾼' 인생관도 대박이다.
최효종의 유머는 이처럼 비루한 일상을 비집고 들어가 "설마 이런 것까지 짚겠어?" 하는 소재를 진짜로 짚어내는데 있다. '애정남'은 직장상사한테 문자 이모티콘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친한 동생과 애인의 차이는 뭔지 등 궁금은 했지만 그냥 넘어갔던 수많은 A형 인간들의 속마음을 어루만져주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무릎팍도사'를 찾은 이 땅의 수많은 '소심 A형'에 대한 '대범 O형'식 처방법이랄까.
여기에 소위 일수가방을 들고 어기적대며 등장한 최효종의 또다른 캐릭터 '일수꾼'은 국회의원 되는 법, 경찰 되는 법 등 이 땅에서 살다보면 누구나 짜증 수백번씩은 냈을 법한 이 사회 폐부를 공감 120% 개그로 승화시키는 '사회 풍자'의 재주까지 선보였다. 물론, 관객을 코너 끝날 때까지 노려보는 그만의 시선처리법도 그의 '달변'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다.
"안돼~~" 김원효, 빠른 눌변이 주는 낯선 쾌감
'비상대책위원회' 코너에서 온갖 핑계를 대는 경찰서장으로 나오는 김원효는 사실 최효종이나 예전 '연변총각' 강성범급 '달변'은 절대 아니다. 그가 쏟아내는 수많은 속사포 말들은 그의 '언변' 용량을 조금은 넘어 보인다. 이 코너에서 김원효가 멘트에 과부하 걸린 초년병 개그맨으로 비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래서 그가 매번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모습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하지만 오히려 눌변에 가까운 이런 김원효가 "아, 안돼~"로 시작해 "내가 10억을 현금지급기에 가면 그냥 현금이 나와? 100만원씩 1000번을 뽑아야 해. 뒤에 분위기가 이상해 뒤 돌아보면 아줌마가 서 있는 거야. 무슨 수로 해?" 등 빠른 멘트에 도전하는 모양새야말로, 그가 다름 아닌 경찰서장 캐릭터라는 점에서 이 코너 최대 볼거리다.
명랑소년이 내뱉는 "이~뻐"의 느끼함, '쌍칼' 조지훈+선한 웃음, 대박 예감 '유재석 데자뷔' 정범균
'사마귀 유치원'은 유치원으로 간 진학상담 선생님 일수꾼(최효종), 동화구연 선생님 쌍칼(조지훈), 그리고 유치원교사(정범균) 3명의 이야기다.
'쌍칼' 조지훈은 동화 같은 분위기로 멘트를 풀어가다가 (징글맞은 표정과 함께) 슬쩍 찔러대는 느끼한 '19금' 표현이 압권이다.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보다 갑자기 19금 '한밤의 인어공주'가 된 느낌? 물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따끔한 야유다. 이런 식이다. "아주 옛날 백설공주가 살았는데..이~뻐." "신데렐라가 있었는데..아킬레스건이 이~뻐."
'쌍칼'이 이름에서 풍기는 태생적 느끼함 혹은 천박함을 풍긴다면, '사마귀 유치원'의 유치원교사 정범균은 말투부터 '뽀뽀뽀' 뽀미 언니 스타일이어서 반전의 매력이 더욱 세다. 더욱이 '메뚜기' 유재석을 닮은 선한 외모까지. "여러분 오늘은 영어 'TWO'를 배워볼까요?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영희니?..(전화를 끊자 유치원생들이 '선생님 여자친구는 영자 아니었어요?') 투(Two)~"
'쌍칼'과 유치원 교사 캐릭터의 공통점은 익숙한 동화 이야기나 유아프로그램 포맷에서 출발, 역시 익숙한 '19금' 코드로 마무리 짓는다는 점. '좀비' 선생님 박성호가 '19금'에서 '폭력'을 전담한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선하고 아이 같은 외모를 십분 활용해 '19금'에서 '성'(性)을 파고든다.
일상의 간극을 비집고 들어가는 신사형 개그, 황현희
"조사하면 다 나와"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같은 한 시절을 풍미한 유행어를 만들어낸 황현희. 잠시 주춤하더니 극중극 스타일의 '불편한 진실' 코너로 예전 감각을 되찾고 있다. 남녀 사이나 남남사이, 모녀사이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제시해놓고, 이들 이면에 숨어있는 유머 코드를 찾아내는 실력은 발군이다. 역시 그의 장기인 '전지적 작가 시점'이 빛난다.
이런 식이다. 남자 "뭐 먹을래?" 여자 "아무거나" 남자 "탕수육?" 여자 "배불러" 남자 "짜장면?" 여자 "느끼해..여기 짬뽕이요" 이 상황도 웃기지만 이 정지화면에서 끼어드는 황현희의 멘트가 화룡점정이다. "'아무거나'라고 얘기해놓고 '아무거나' 시키면 화를 내는 이 불편한 진실. 여자에게 '아무거나'란 '내가 뭐 먹고 싶은지 맞혀봐'가 아닐까요."
류정남&노우진..'개콘'의 올라이즈밴드
요즘은 조금 인기가 식은 듯하지만 '서울 메이트'와 '달인'은 역시 2011년 '개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기코너다. 그리고 이들 코너의 주인공은 자타공인 양상국 허경환과 김병만이다. 하지만 '무릎팍도사'에 강호동만 있었으면 '무릎팍도사'였을까. 유세윤과 올라이즈밴드 우승민이 있었기에 강호동이 마음 놓고 게스트와 활개를 칠 수 있었고, 게스트도 약간은 허술한 듯한 이들 덕에 긴장도 풀 수 있었던 게다.
'서울 메이트'에서 류정남은 언제나 양상국으로부터 "정남아, 정남아. 내가 몬산다. 궁디이 확 쌔리뿔까"라며 구박맞는 갓 상경한 시골 청년 캐릭터. 유행어도 없고 임팩트도 약하지만, 류정남이라는 약간 모자란 캐릭터가 있기에 '약삭빠른' 허경환과 류정남 캐릭터가 산다. 류정남은 앞으로 콩트 형식 코미디에서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개그맨이다.
'달인'에서 류담이 김병만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재주를 이끌어내는 사회자 같은 존재라면, 노우진은 달인과 '달인' 코너에 인간적 여백을 채워주는 감초 역할이다. 대사도 거의 없고 복장도 늘 파란 '추리닝'이며, 약간 덜 떨어진 바보 캐릭터이지만 그의 존재감은 가히 절대적이다. 달인이 이런 스태프와 함께 다닌다는 것 자체가 '먹고 들어간다'.
그러면 이들 웃음전도사 7인을 중심으로 '개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요즘 유머코드는 무엇일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유머는 당신 가까운 일상에 숨어있다는 것. 이는 '애정남' '사마귀 유치원' '불편한 진실' '감사합니다'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역시 코미디는 흔하디흔한 일상의 소재를 꼼꼼히 관찰하는 데서부터 출발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콘'의 유머는 실제 생활에서 언제든 써먹을(?) 수 있다.
이미 인구에 회자된 '애정남'이나 '불편한 진실'은 물론, 코믹송과 함께 하는 '감사합니다'도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디지털 카메라 같은 꼼꼼한 기록정신(?)이 돋보인다. '"야동 보는데, 어머니가 들어왔는데, 갑자기 화면보호기.." "PC방 갔다가 늦게 들어왔는데, 어머니가 화를 내려 하시는데, 조금 뒤에 들어오신 술 취한 우리 아버지.."('감사합니다')
'개콘' 청중들이 가장 큰 박수를 치며 가장 센 환호를 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사마귀 유치원' 일수꾼의 속시원한 풍자 개그가 '빵~' 터질 때. 교사 되는 법도 풍자의 도가 셌지만, 국회의원 되는 법도 신설된 지 한 달도 안된 이 코너에 대박예감을 갖게 한다. "국회의원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대학 안나오고 사법패스 하면 돼요. 시장에서 국밥 한그릇 비우면 돼요." 그렇다. 통큰 유머의 기본은 역시사회폐부를 건드려라, 큰 박수가 있을지니이다.
예전 '왕비호' 윤형빈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겨털'을 강조한 것이 야한 개그의 몸 버전이었다면(예전 '놀러와'의 김원희도 이 비슷한 컨셉트로 사람들을 웃긴 적이 있다) '쌍칼'의 유머는 '말 버전'이다. 그것도무방비상태에서 터진 야한 개그. 만인의 공분을 샀던 신데렐라 계모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몸매가 섹시해'라는 느끼 멘트를 날릴 수 있었을까. '쌍칼'의 공이 크다.
지금까지가 어찌 보면 큰 범주에서 말장난이었다면 '감수성'은 콩트 코미디의 향수와 파워를 제대로 느끼게 하는 코너. 내시를 겨냥해 "세상은 '있는자 없는자 그리 한때 있었던 자'로 나뉜다"라고 한다던지, 선조 중에서 망나니가 있었다는 비아냥에 "망나니도 공무원이었단 말이에요"라고 되받아친다던지 '감수성'의 유머는 출연진의 잘 짜인 연기 합에서 비롯된다. 스탠딩 개그나 입담 개그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 역시태곳적 진실, 짜고치는 고스톱은 역시 세다에 한 표!
개그와 노래가 만난 지는 꽤나 오래됐다. '슈퍼스타KBS'가 개그맨들의 출중한 노래실력을 바탕으로 코믹이나 성대모사를 섞었다면, 송병철 정태호 이상훈의 '감사합니다'는 노래가사의 하이라이트(흔히 말하는 '사비')처럼 단순한 가사 '감사합니다'만으로도 사람들을 중독시킨다. '극과 극'도 마찬가지.
'사비'를 일종의 패턴으로 보면,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김원효가 "아, 안돼"라고 말하며 치고 들어오는 것이나 '서울 메이트'에서 양상국이 "정남아 정남아"라고 말하는 부분 역시 개그로 들어온 '사비'로 볼 수 있다. 패턴화한 사비의 가장 큰 덕목은 유머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금세 식상해질 수 있다는 게 양날의 검이다. 어쨌든 힙합듀오 리쌍의 표현을 빌리자면,'사비'와 '패턴'이란 놈은 답은 중독성이다
'생활의 발견'이 재미있는 것은 카페, 해변가, 조개구이집 같은 익숙한 일상에서 '이별 통보'라는 극한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재연한다는 것. 이미 신보라가 정확히 지적한 것이지만, "어떻게 조개구이집에서 헤어지자고 말하니?"가 보통 사람들의 익숙한 사고방식이니까.
'비상대책위원회'의 경찰서장과 육군 소장 캐릭터도 마찬가지. 전광석화 같고 한 점의 실수도 용납 안할 것 같은 이들이 온갖 핑계를 대고 어설픈 명령을 내리다 금방 꼬리를 내리는 장면은 우리 일상에서도 곧바로 유머 코드가 된다. 감수성 많은 장군들을 모아놓은 '감수성' 코너도 착점은 비슷하다. 그래서 내리는 결론은익숙해질 때쯤, 캐릭터와 상황을 반전시켜라
마지막으로말로 안되면 몸으로 승부하라여성 출연자의 경우 자칫 '여성비하'로 비화할 수 있는 것이지만, 몸이나 특정 부위를 소재로 한 개그는 연륜이 꽤 된다. 종영한 '발레리노'에 이어 요즘 '개콘'에서는 '최종병기 그녀'의 액션녀 김혜선이 바로 이 담당. '달인' 역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갈갈이형제의 "무를 주세요"에 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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