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해를 품은 달'(극본 진수완·연출 김도훈 이성준)이 화제 속에 마무리됐다. 현학적이고도 탄탄했던 원작을 20부작 드라마로 옮긴 이가 바로 진수완(42) 작가다.
드라마는 20부였지만 진수완 작가가 준비한 것은 2010년부터 근 2년. '해를 품은 달'은 긴 시간을 고민했고, 높은 인기 덕에 욕도 많이 먹어야 했던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떠나보내며 휴식을 준비하는 진수완 작가를 16일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마지막 방송은 잘 보셨나.
▶(결방 전 탈고했기 때문에) 먼저 끝나고 보조 작가들과 쫑파티를 하면서 봤다. 오래 전 대본이 나왔는데 방송이 뒤에 나와 긴장감이 좀 풀린 상태에서 봤다. 시청자들도 그렇지 않을까. 몰아쳐서 갔으면 좋았을 수 있겠다.
-의도한 대로 표현됐나? 아쉬운 신은 없었나.
▶아쉽게 잘린 부분이 있다. 앞뒤 광고가 붙으면서 시간이 부족해 눈물을 머금고 뺄 수밖에 없었던 신, 아꼈던 신 몇몇은 아쉽다. 마지막 신도 몇 신이 편집이 됐더라. 작가니까 그런 장면이 아쉬웠다. 사실 감독님과 많이 맞춘 게 아니어서 잘 몰랐다. 디테일 하게 찍는 경향이 있어 적게 드렸어야 하는데 조절이 약간... 어제는 운과 원자가 걸어가는 장면, 설 죽었을 때 녹영의 내레이션이 빠졌더라. 힘들게 썼는데 잘리면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대본집을 낼 생각은 없다.
-어떻게 '해를 품은 달' 각색에 참여했나.
▶2008년 팬엔터테인먼트 소속 친한 작가님이 먼저 의뢰를 받았는데, '액받이 무녀'라는 설정이 흥미로워 절판 된 책을 구해 읽었다. 순수 독자로서 '되게 재밌다' 고 생각했다. 2010년에 정식 각색 의뢰를 받고 읽는데 느낌이 다르더라. '되게 어렵겠다'. 원작이 갖고 있는 향기나 고집이 굉장히 세다. 어떻게 각색해도 욕 먹겠구나 각오를 했다.
모든 대본 작업이 어렵긴 하지만 각색 작업에는 원작과의 비교, 캐스팅 논란 두 개의 아픔이 늘 따라붙는다. 강도는 원작의 인기에 비례한다. 아무래도 기대치가 있고, 독자들이 흐름이나 배우에 대한 이미지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통과의례라 하고 각오하지만 가끔은 사람이라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봐줬으면.
-각색에서 어디에 특히 주안점을 뒀나.
▶개연성, 캐릭터, 대중성, 그리고 이야기의 힘이었다. 원작은 소설 문법에 충실하고 관념적, 사색적인 부분이 있다. 소설로는 좋지만 드라마로는 자칫 지루할 수 있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코드를 고민했다. 또 가상의 왕이고 판타지를 깔고 가지만 그럴듯해 보이지 않으면 시청자가 마음을 닫지 않기 때문에 사건과 캐릭터에 개연성을 주려고 했다.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웃음)
캐릭터는 워낙 좋기는 했는데 소설과 영상 문법이 달라 그대로 못 옮기는 부분이 있다. 캐릭터가 다 완성형이다. 예쁘고 똑똑하고 그래서 숨통이 트이는 인물을 만들자 했다. 형선이라든지 호판 윤수찬, 홍규태 등등이었다. 사건 몰아칠 때 쉬어갈 수 있는, 이를테면 코믹 인물들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힘 경우는, 당시 '공주의 남자'도 하고 '뿌리깊은 나무'도 했었다. 한쪽에서는 한글창제를 놓고 피바람 불고 촌철살인이 오가고, 이쪽은 권력을 위해 조카 목줄을 쥐는데 우리는 왕의 로맨스만 해도 되나 싶었다. 두 작품 모두 이야기가 세고 잘 쓰셨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대신 이야기의 힘으로 가자 했다. 원작 더하기 이야기의 힘. 텍스트를 놓고 작업을 해서 마치 정은궐 작가와 작업을 한 느낌이다.

-정은궐 작가와의 교감은 있었나.
▶아니요, 전혀. 2010년 팬에 계셨던 프로듀서 분이 뵈었다고 들었다. 원작은 원작이고 드라마는 드라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더라. 굉장히 쿨하신 것 같다.
-여진구와 김도훈 감독은 가장 좋은 장면으로 '잊으라 하였느냐, 잊어달라 하였느냐. 미안하다. 잊으려 하였으나 잊지 못하였다' 이 장면을 꼽더라. 작가는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나.
▶그 장면은 엔딩에 배치했고 사랑의 최고치였으니까. 힘줘서 찍었고 배우도 잘 해서 명장면이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안 챙겨주는 신이 명장면이다. 8부인가 훤이 푸쉬업을 하면서 형선이한테 '돌아서 있으라'라고 하면 형선이가 지금처럼만 강령하라고 운다. 그 장면을 좋아한다. 어린시절과 성인이 1막과 2막처럼 나뉘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겹쳐졌다고 할까. 또 두 분이 연기를 너무 잘해주셨다. 다른 분들은 김수현씨 오열 장면 등 강한 신을 명장면으로 쳐주시는데 저는 이 신에 애정이 간다.
-역사 속 인물을 대입해서 쓰지는 않았나.
▶원작을 보면 대충 인조나 명종 때 정도, 문정왕후 힘이 세고 윤원형 일파가 득세하던 시기 같다. 하지만 그 시기는 '여인천하'가 길게 묘사해서 갖다 쓸 게 없었다. 훤의 경우 가상의 왕인데 실록에서 참고하면 보는 분이 기가 막히게 안다. '저거 성종 때 일화다' 하는 식이다. 훤에서 역사적 인물의 잔영이 보이면 우리 드라마는 판타지가 깨진다. '저거 정조 치적인데 카피했구나' 하는 식. 그럼 어떤 왕의 모조품이라는 생각을 할 거고 그러면 판타지가 깨질 것이라 생각했다. 일부러 외면했다. 양명군 또한 마찬가지다.
-가장 쓰기 힘든 회가 있었다면?
▶매회 어려웠는데 그중에서도 6부, 7부였다. 어린시절에서 성인으로 가는 6부는 대본을 4∼5번 썼다. 7부는 본격적인 성인판이었는데, 원작이 워낙 치밀하고 촘촘해 뭐 하나를 건드리면 뒤가 다 무너진다.
왜 기억상실증 설정을 했냐고 난리였는데, 기본적으로 두 친구가 책과 달리 어린 시절 만났으니까. 책이면 모를까 연우가 드라마 3개월 내내 모든 걸 알고 어두운 분위기로 가게 할 수는 없었다. 그 필요충분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쓰긴 했는데 감정선이 어렵더라.

-마침 한가인이 연기력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풀하우스' 때 송혜교씨도 캐스팅 논란에 시달렸다. 처음엔 무조건 욕을 먹을 것이라 생각했다. 원작의 연우가 굉장히 매력있는데,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연우가 아닐 수 있고, 또 나이차도 있고. 작가도 배우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흔들리지 말자고 했다. 그 당시엔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 같다. 뭐만 하면 '국어책 읽네' 하는 게 나왔으니까. 인터넷을 아예 외면했다. 작품하며 이렇게 인터넷 안 한 적이 없다. 뚜껑도 열기 전에 캐스팅 논란이며 원작과의 비교가 나왔으니까. 흔들릴 수 있어서 안 봤다.
-연우에 한가인을 캐스팅하면서 무엇을 봤나.
▶연우라는 인물에 있어 두 가지가 필수조건인데 총명함과 아름다움이다. 너무 많은 남자들이 반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내면적으로는 총명함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예쁘지만 똘똘하다는 느낌이 드는 여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가인씨 경우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배우였다. 실제 캐스팅 작업에서 한 번, 대본 연습에서 한 번, 2번을 봤는데 저는 아름다움보다 총명함이 마음에 들었다. 만나보고 좀 더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었고, 굉장히 총명하고 영리한 배우라 생각했다. 그 전에는 20대와 30대 초반까지 모두를 열어놨다. 모든 여배우를 다 고려했다고 보면 된다.
-그럼 훤 김수현은?
▶일종의 종합선물세트였다. 양면이 있는 인물이다. 남자와 소년, 고고함과 유치함이 공존해야 하고, 서늘함과 따뜻함, 순수함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양면성이 필요했다. 심지어 세자 때부터도!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진구 훤, 수현 훤이 너무 잘 해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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