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름은 미스 김 입니다만?"
큰 눈망울, 단정하게 묶은 머리, 블랙 슈트를 입은 여인이 우렁차게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그의 이름은 미스 김. 자격증만 120개 넘는 전설의 슈퍼 갑 계약직이다. 그가 활약 할수록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그 겨울, 바람이 불었다면 올해 봄, 시청자 사이에서는 '미스김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방송계에서 전무후무한 미스 김 캐릭터는 바로 지난 21일 종영한 KBS 2TV '직장의 신'(극본 윤난중 연출 전창근 노상훈)의 여 주인공이었다. 3개월 간 미스김으로 살아온 배우 김혜수(42)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모처에서 직접 만났다. 그런데 미스 김과 또 다른 '미스 김'이 여기 있었다.

◆ 챕터1. '연기의 신'과 '직장의 신'의 조우
'직장의 신'은 지난 2007년 일본 NTV에서 인기리에 방영 됐던 '만능사원 오오마에'가 원작이다. 큰 틀은 원작과 같았지만, 세부적인 설정은 한국 직장인들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냈다. 충무로의 섹시카리스마 김혜수가 '직장의 신'을 선택한 건 오로지 감이었다. 과거 그가 다양한 도만이 풍성해진다는 걸로 알았다면 이제는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 것이다. 시놉시스를 받고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물론 위험할 수도 있었겠지만 대본에서 지문, 캐릭터 묘사가 뚜렷했어요. 제가 윤난중 작가님의 코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기에 무조건 나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과가 반대였어도 똑같다고 자신해요. 영화 '도둑들'도 천만관객을 동원했지만 더 애착을 느낀 건 아니거든요. 결과가 좋은 건 노력의 보너스라고 생각해요."
김혜수는 방송이 진행된 16회 동안 '미스김=김혜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두 인물을 본다면 맡은 일을 끝까지 살려낸다는 점, 2030 여성들이 닮고 싶은 당찬 모습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김혜수는 미스김과 실제로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많을지 궁금했다.
"미스김은 목표한대로 자신을 단련시키는 인물이에요. 저는 미스김만큼 능력자도 아니고 감정을 대쪽같이 쪼개어서 살진 못해요. 물론 한 때는 공과 사를 분리해서 산적도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훈련도 했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인생은 다 함께 같이 가는 건데 분리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뀌었어요."
미스김은 능력자에 가까운 계약직이었다. 이를 연기하는 김혜수 역시 3개월 동안 촬영장을 출퇴근하며 작품에 매진했다. 미스김을 통해 그는 배우 역시 계약직과 같음을 몸소 체득했다. 배우도 계약이 성사되어야만 작품에 출연할 수 있다는 것. 직장인들의 애환을 누구보다 더 공감하면서 직장의 신이 되어 갔다. 이어 배우와 계약직은 공통분모가 있음을 느꼈다. 여기에 비정규직 노동법을 비롯한 사회전반적인 이슈에 대해 공부도 했다.
"저는 축복받은 계약직임을 느껴요. 작품하면서 직장인들을 더욱 잘 알게 됐어요. 본인이 한 업무량에 비해 항상 만족이 아닌 약자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배웠어요. 물론 드라마에서는 상징적이었지만 사회적인 이슈, 생존을 다룰 수 있어서 좋았어요. 대부분은 약자고 생존에 자유로운 사람이 없으니까요."

챕터2. 미스김이 갖고 있는 판타지
극중 미스김은 현실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했다. 상사 눈치에 엄청난 업무량에 지친 직장인들은 자신을 대신해 회사에서 큰소리치는 미스김을 보며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미스김 캐릭터는 사회적인 약자의 판타지보다 마음속에 품었던 꿈, 마음에 그려놓은 꿈을 실현시킨 인물이에요. 그러니 사람들도 감정을 이입했겠죠. 저희 역시도 촬영하면서 체력전을 몸소 경험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편하게 사는구나 싶어 미안함을 느꼈어요. 엄살 부리지 말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직장인 못지않은 발열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스김의 유행어도 탄생했다. 바로 "~다만"으로 영혼 없이 말해야 하는 것이 포인트다. 이는 첫 대본에서부터 나와 있던 부분으로 미스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다만체는 원래 대본에 나와 있었고 미리 제가 설정한 부분은 아니에요. 실제로도 지인들과 연락하면서 종종 '~다만'을 쓰고 있어요. (웃음) 보통 저는 작품 시작하면 캐릭터에의 모든 것에 집중하지만 끝나면 바로 떠나보내는 스타일이에요."
극중에는 미스김은 늘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미스김이 본명 김점순이었을 때는 늘 실수투성이 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미니미에 가까운 계약직 정주리(정유미 분)에게 연민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그가 후배에게 아낌없는 충고를 할 때는 가슴 찡한 울림이 느껴졌다. 실제로도 정주리 역을 연기한 정유미를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유미라는 친구는 청량하고 신선함이 있어요. 담백한 진정성도 있죠. 그건 그가 실제로 그렇기 때문인 점이 커요. 저는 그런 배우가 좋아요. 드라마에서 정주리는 제한적이었지만 정유미라는 배우는 달랐어요. 같이 분장실을 쓰면서 간식도 나눠먹고 핫팩도 공유함으로서 많이 가까워졌어요. 덕분에 추웠던 촬영장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키워드3. 러브라인과 능력치는 어디로 갔을까?
작품의 또 다른 인기요소는 바로 러브라인이었다. 미스김을 둘러싸고 장규직(오지호 분), 무정한(이희준 분)의 소소한 대립은 극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시청자들은 미스김과 원수지간은 장규직보다 오히려 순정남 무정한을 적극 지지했다. 그렇지만 러브라인은 어디까지나 '직장의 신'의 조미료 역할이었다. 김혜수가 역시 러브라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짝사랑이기도 하지만 동경인 것 같아요. 그의 성향과 반대인 사람을 향한 동경, 본인만 알고 있는 비밀이 있으니까요. 장규직은 다른 형태로 부딪히는 캐릭터. 한 쪽은 소통을 거부하고, 한 쪽은 성숙하지 못했어요. 결국엔 비슷한 상처라는 동질감 있으니까. 전혀 형태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결국은 거울을 보는 느낌. 그런 식으로 해석했다. 드러나진 않지만 직관적으로 상호간에 느낄 수 있다고 분석했어요."
'직장의 신'이 초반에 화제를 모은 부분은 바로 내복쇼. 미스김은 정주리(정유미 분)로 인해 손실을 끼친 홈쇼핑 업체에 만회하기 위해 몸소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며 능력을 발휘했다. 여기에는 짱짱한 고무를 자랑하는 빨간 내복쇼가 펼쳐졌다. 김연아의 '죽음의 무도'를 능가하는 댄스와 비주얼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방송 후 포털 사이트 검색어를 장악했다.
"내복을 입을 줄 전혀 몰랐어요. 실은 내복 입기 전에 작가선생님이 매니저한테 이런 장면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셨대요. 저는 작가님의 대본을 5회까지 못 봤었기에 원맨쇼로 부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미스김이 표현해야할 캐릭터의 연장선상이니까 걱정도 없었어요. 화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 못했고 탬버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 쉽지 않았어요."
김혜수는 마지막으로 '미스 김'을 아껴준 시청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도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동안 연기를 위해 달인들에게 직접 사사받으면서 열정을 불태웠다. 몸살을 앓기도 했고, 어깨가 탈골될 뻔 했던 일들이 스쳐갔기 때문.
"개인적으로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를 만나고 배우로서 미스김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서 큰 행운이었어요. 이런 독특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혜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시청자분들이 공감을 하고 위안을 얻으셨다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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