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2TV 주말극 '왕가네 식구들'에서 유독 시청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은 여자가 있다. 바로 배우 오현경(43)이다.
오현경은 '왕가네 식구들'에서 허영심 많은 아내이자,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엄마 왕수박 역을 맡았다. 오현경이 이 왕수박을 어찌나 잘 소화했는가 하면 '왕수박=오현경=밉상'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였다.
24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오현경을 만났다. 쌀쌀맞고 도도한 느낌의 왕수박, 아니 오현경은 옆집 누나 같은 친근한 분위기였다.
◆"왕수박, 사실 저도 욕했어요!
'왕가네 식구들'에서 왕수박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허영심 많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한 술 더 떠 사업 실패 후 재기를 노리는 남편 고민중(조성하 분) 몰래 외도까지 하고 당당하게 이혼까지 요구했다. 이 여자가 누구냐면 바로 왕수박이다.
오현경은 지난 6개월 간 왕수박 역을 맡은 소감에 대해 "욕 많이 들었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촬영 때문에 바깥에서는 왕수박에 대한 시청자 반응을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기사를 보면서 왕수박이 욕을 많이 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하하하"
왕수박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진짜 밉다'였다. 오현경 역시 "사실 저도 왕수박보고 욕했어요!"라고 말했다. 본인이 봐도 밉단다.
"욕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왕수박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대본 속 왕수박은 밉죠. 그런데 실제로 왕수박 같은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는 아닌 것 같아요."
◆"실제 성격은 왕수박과 정반대!"
오현경은 '왕가네 식구들' 방송 초반 왕수박 역을 맡아 적잖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왕수박이 실제 자신의 성격과 정반대라고.
"수박이는 진짜 저랑 달라요. 저는 천상 여자거든요. 수박이는 그렇지 않아요. 조성하 선배님도 저한테 천상 여자라고 했어요. 진짜 제 모습은 오순정(김희정 분)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실제로도 왕수박처럼 행동했어요. 그랬더니 오현경이랑 왕수박이 연결이 되더라고요."
왕수박은 방송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철이 들었다. 갑자기 남편 고민중의 소중함을 깨닫고, 두 아이에 대한 관심도 달라졌다. 오현경은 이런 왕수박의 모습을 이해할까.
"엄마 이앙금(김해숙 분)이 수박이를 어떻게 키웠나 생각해 보세요. 부모에게 첫 자식, 첫 정이 무섭다고 해요. 수박이가 첫째 딸이고, 자아도 강하다보니까 남을 배려하는 감정을 못 배운 거죠."
오현경은 일각에서 '왕수박이 이야기가 끝나니까 갑자기 착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 "연장을 하지 못해 그랬던 건 아닐까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진짜 연장을 할 줄 알았어요. '왕가네 식구들'이 50회로 끝내기로 하면서 극 전개의 마무리가 빨리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50회에서 가장 현명하게 결말을 낸 것이라고 봐요. 아이를 챙기는 것부터 수박이에게는 변화가 생겼던 거죠."

◆"왕수박의 진짜 문제는 고민중과 재결합이 아니다"
'왕가네 식구들'은 마지막 회를 앞두고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고민중이 이혼한 전처 왕수박과 첫사랑 오순정 중 누구를 선택할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현경은 왕수박에게 고민중과의 재결합은 문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왕수박이 제대로 성장,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민중과 재결합한다고 올바르게 갔을까요. 수박이의 마지막 문제는 전 남편과 재결합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성장했느냐가 문제였죠. 인간적으로, 진정한 사랑과 배려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재결합했다고 해도 이전과 똑같았을 거예요. "
오현경은 고민중과의 재결합 불발에 대해 아쉬운 마음은 없다고 밝혔다. "재결합 했다면 극적인 효과는 없었을 테고, 어설픈 캐릭터가 나왔겠죠. 아쉽지 않아요."
오현경은 싱글맘으로 혼자 딸을 키우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엄마 오현경은 어떨까.
"저요? 나름 열혈 엄마에요. 저희 동네에서는 제가 유명하죠. 하하하. 딸 학교에서 운동회나 현장학습 등이 있으면 다 참여해요. 딸 아이 기죽이지 않도록 말이죠. 얘가 아직 공부에는 뜻이 없는데, 강요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아이랑 행복하게 얘기하는 엄마가 지금은 더 좋아요."
◆"유행어 '미스코리아 나온 여자야', 쑥스러워요"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다양한 캐릭터가 나왔던 만큼 유행어도 많았다. 오현경의 유행어는 바로 '나, 미스코리아 나온 여자야!'다. 실제 오현경은 지난 1989년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진으로 선발된 경력이 있다.
"이 대사 할 때는 쑥스러워요. (방송) 프로그램만 나오면 이 대사를 꼭 해달라고 해요. 하하하. 사실 제가 과거에 미스코리아에 나가서 진에 뽑혔잖아요. 그래서 연습할 때는 '미스코리아 나간 여자야' 뒤에 '난 진인데'라고 작게 얘기하기도 했어요. 문영남 작가님이 제가 미스코리아 진 출신인 거 아시고 그런 대사를 넣어주신 것 같아요."
오현경은 왕수박이 유독 미스코리아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미스코리아 하면 여성의 아름다움을 대변해 주는 고정관념이잖아요. 무엇하나 내세울 게 없는 수박이에게는 이 미스코리아는 자부심 같은 거예요. 자기를 보여줄 만한 존재인 거죠."
오현경은 '왕가네 식구들'의 결말 30년 후에 대해서는 재미있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30년 후에도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는 희망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오현경은 '왕가네 식구들'이 시청률 40%가 넘는 흥행도 이미 예상했다고 밝혔다.
"문영남 작가님이 항상 40%를 넘는 분이었어요. 잘 될 거라고 생각했었죠. 마지막에 시청률 50%를 돌파하지 못해 아쉬워요. 연장을 했다면 아마 50%는 넘었겠죠."

◆"문영남 작가님, 알고 보면 여린 사람"
'왕가네 식구들'을 집필한 문영남 작가에 대해 오현경은 "알고 보면 여린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문 작가님은 (대본) 연습할 때는 무섭기도 해요. 하지만 알고 보면 진짜 마음이 여리신 분이죠. 자신이 캐스팅한 배우는 절대 버리지 않아요. 극중 캐릭터가 잘 살아나 시청자들에게 각인될 수 있게 만들어 주시죠."
오현경은 문영남와는 SBS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당시 '조강지처 클럽'에서 문영남 작가 외에 또 다른 인연을 만났는데 바로 김희정이다. 두 작품 모두 극중 남편을 김희정에게 빼앗겼다. 둘의 인연이 참으로 기묘하다.
"'조강지처 클럽' 때는 (김)희정이를 잘 몰랐어요. 작품 하면서 친구가 됐는데, 정말 괜찮은 친구에요. 판단도 빠르고 순발력도 있어요. 그 친구랑 많은 얘기를 할 만큼 친해졌어요."
◆"수박이 때문에 차기작 결정은 신중하게!"
오현경은 차기작 결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왕수박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작품 선택이 쉽지는 않다고 고백했다 .
"제안이 들어오는 작품들을 보고 있어요. 지금은 왕수박 이미지 때문인지 차기작을 뭘로 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쉬고 있으면 불안해져서 오래 쉬고 싶지는 않아요."
이경호 기자s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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