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악역이 탄생했다. 오로지 권력을 위해 무엇이든 해내는 자와 목표를 위해 적과 동침하는 자. 두 사람은 악역이란 큰 범위 내에선 같은 길을 걷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행동을 한다. 이젠 그들을 지우고서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극본 박재범, 연출 김희원)를 볼 수 없다.
'빈센조'는 조직의 배신으로 한국으로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 분)가 베테랑 독종 변호사홍차영(전여빈 분)과 함께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리는 이야기다. 시청률 7%로 시작한 드라마는 어느새 10%대를 유지할 만큼 큰 화제성을 몰고있다.(닐슨코리아 기준)
일명 '대박'을 터트린 드라마인만큼 송중기, 전여빈, 옥택연 등 다수 배우가 주목받았다. 이중 가장 돋보인 인물은 예상 외로 조연인 김여진과 곽동연이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랜 연기 경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역할을 보였다. 그러나 '빈센조'를 통해 새로운 타이틀을 얻었다. 김여진은 '빌런'을, 곽동연은 '재발견'이다. 그들은 모두 극 중 옥택연과 얽히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미미한 존재감을 보일지 모르나 모든 스토리가 쌓였을 땐 가장 큰 위치임을 나타낸다.

김여진은 극 중 최명희로 분한다. 최명희는 냉철하면서도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다. 한때 남동부지검 특수부 에이스 검사였으나 우상의 한승혁 대표로부터 스카우트돼 변호사를 시작했다. 장준우(=장한석, 옥택연 분)를 보좌하면서 빈센조를 없애고 바벨 그룹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종의 일을 꾸민다.
곽동연은 극 중 장한서를 맡는다. 장한서는 바벨 그룹의 회장이지만 다혈질에 폭력도 서슴치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일자무식인데다가 겁이 많은 사람으로, 장준우의 꼭두각시로 활약한다.
캐릭터 설명만 살펴봤을 때, 두 사람은 장준우를 위해 마련한 장치와 같다. 이에 여느 드라마처럼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질 것 같다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이 재발견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형적인 드라마의 성격을 타파했기 때문이다. 종이 한 장차이로 명작과 망작이 갈린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최명희와 장한서는 딱 한끗 차이로 새로운 캐릭터가 됐다.
최명희 같은 캐릭터는 사실 한국 드라마에 있을 법한 인물이다. 특히 시도때도 없이 욕하고 살인 교사를 저지르고 높은 위치에서 지시를 내리는 내용은 당장 아무 드라마에 아무 장면을 틀면 나온다. 이런 진부한 내용이 새롭게 이유는 최명희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보자면, 천서진(김소연 분)은 드레스를 즐겨입는 아름다운 인물이다. 표독스럽고 악독하지만 남들 앞에서는 최대한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런 반전 매력에 사람들은 천서진을 '악녀'의 대표명사라 부른다. 이와 비슷하게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 분)은 천서진과 다른 결이긴 하지만 외형과 성격은 다르지 않다. 반면 최명희는 두 사람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권력을 위해서 무엇이든 해내며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개 변호사는 단정한 정장을 입고 다니지만, 최명희는 편안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즐겨신는다. 그의 나이는 40대로, 일상에선 아줌마 회사에선 걸걸한 커리어우먼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작은 요소 하나하나들이 모여 천편일률적인 악녀의 모습을 지운다. 이게 최명희가 '악녀' 보단 '빌런'으로 불린 이유다.
그렇다면 곽동연은 어떨까. 곽동연은 김여진과 다른 부분에서 주목받는다. 바로 그의 연기다. 곽동연이 연기하는 장한서는 단순해보이지만 사실상 어렵다. 그는 장준우를 향한 맹목적인 모습을 그리다가도 뒷통수 칠 기회를 노린다. 또한 살기 위해 멍청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지만 약간의 욕망을 드러내야 한다. 곽동연은 이 미묘한 차이를 완벽하게 그려냈다.

장준우의 부름에 서있는 장한서는 본래 자신의 이름이 있던 명패에 '장한석'이란 이름이 있는 걸 본다. 그는 형을 바라보지만 손은 명패 속 '장한석'의 이름을 지우고자 한다. 또 장준우가 화가 나 장한서에게 트로피를 던진다. 장한서는 바보 처럼 피가 흐르며 가만히 서있지만 주먹을 움켜쥐어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참는다. 이렇게 여러 장면에서 그려지는 그의 표정, 손끝의 떨림 등이 감정선을 만들어냈고 완벽한 장한서를 표현했다.
이렇듯 두 사람은 '악역'과 '조연'이란 이름으로 함께 하지만 서로 다른 연기와 캐릭터를 선보였다. 이로인해 각자의 위치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완벽한 연기 변신에 성공한 김여진과 곽동연이 '빈센조' 이후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빈센조'는 오는 5월 2일 종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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