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를 아는 줄 알았을 때 새로운 모습으로 배신하고 싶어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극본 노희경/연출 김규태 김양희 이정묵/기획 스튜디오드래곤/제작 지티스트) 박지환과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제주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각양각색 인생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드라마다. 박지환은 극 중 오일장에서 순대 국밥 장사를 하는 정인권 역을 맡았다.
인권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집을 뛰쳐나가 깡패가 됐지만 어머니의 사고 이후 마음을 고쳐잡고 가업을 이어간다. 순박하고 착실하게 순댓국을 팔던 인권은 아들 현(배현성 분)이 자신을 원수 취급하는 호식(최영준)의 딸 영주(노윤서)를 임신시키면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서로를 원수 취급하던 인권과 호식은 자식들의 진심을 들은 이후 서로 화해를 하게 된다.
박지환은 호식과의 갈등은 물론 아들 현과의 절절한 부성애를 압도적인 연기력과 존재감으로 그려내며 드라마의 흥행에 한 축을 담당했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범죄도시2'에 이어 '우리들의 블루스'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른 박지환은 "너무 감사하다. 거대한 분들 사이에 일개미처럼 껴서 얻어낸 것 같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박지환은 '범죄도시2'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비슷한 듯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며 각각의 캐릭터를 살려냈다. '두 작품 모두 본 사람의 반응은 어땠냐'는 질문에 박지환은 "딱히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그냥 '잘 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그게 최고의 칭찬인 것 같다. 자세한 설명보다는 선후배·동료들이 '좋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게 제일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지난 2월 모든 촬영을 마쳤다는 박지환은 "드라마를 촬영할 때의 감각과 시청자로서 볼 때의 감각이 다른 것 같다. 마치 불러서 좋은 노래가 있고 들어서 좋은 노래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촬영할 때 생각했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 나왔다. 좀 더 거칠 줄 알았는데 정말 따뜻했다. 따뜻한 온도가 극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많은 배우들이 욕심을 내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으로 제작 단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캐스팅 과정을 묻는 질문에 박지환은 "이전 회사에서 동석 선배님과 단편 영화를 찍고 있는데 '오디션 볼래?'라고 물어보더라. 노희경 작가님 작품인데 주인공이라고 하더라. '갑자기 무슨일이지? 살인자가 필요하신가?'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오디션장을 가니 최영준 배우가 먼저 오디션을 보고 있더라. 대본에 대한 정보도 없었는데 조감독님이 대본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최영준과는 그 때 처음 만났는데 화장실에서 싸우는 장면을 즉석에서 리딩했다. 감독님, 조감독님, 작가님이 보시고는 같이하자고 말씀해주셨다"라고 덧붙였다.
박지환은 "(캐스팅이 확정되자) 너무 좋았다. 노희경 작가님 작품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꿈에서도 조심스러워서 꿔본 적 없었다. 최영준과 서로 '자기가 있어서 내가 된거야'라고 고마워하며 '지금부터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희경 작가의 대본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박지환은 "(노희경 작가의 대본은) 훌륭한데 훌륭한 척을 안하고 멋진데 멋진척을 안하고 아름다운데 아름다운 티를 안낸다.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박경리, 박완서 작가님 작품을 보면서 활자에서 힘이 느껴졌었는데 노희경 작가님은 다른 힘이 느껴졌다. 시·소설·산문·에세이·연극·영화 등 모든 장르를 드라마를 위해 구성하는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졌다. 정말 신기한 것은 아무나 읽어도 연기가 되더라. 이게 필력인가 싶었다"라고 전했다.
이런 대본을 두고 이병헌은 '애드리브가 파고들 수 없는 대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지환 역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전혀 파고들 수 없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읽기만 해도 연기가 된다. 사실 아는 제주도 방언도 없어 할 수도 없었다"고 동의했다.
'노희경 사단에 합류한 것 아니냐'는 말에 박지환은 "저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불러주시면 너무 감사하다. 작가님의 대본을 한 번더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정말 영광이다. 그래도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또한 김규태 감독에 대해서는 "여기에 김규태 감독님의 마법 같은 연출이 더해졌다. 정말 이상하면서도 대단한 분이다. 헐랭이처럼 있는데 불편하지 않게 해준다. 다들 투덜대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버전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감독님이 특별히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거기에 힘을 주게 되니까 편안함에서 나오는 걸 찾으려 하신 것 같다. 연출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파헤치고 싶다"고 극찬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이병헌, 김혜자, 고두심, 이정은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박지환 역시 연극과 영화, 드라마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지만 선배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박지환은 "제가 연기를 할 때 선배들은 연기를 안한다. 그럴 때 제가 부족한 것을 느낀다. 이정은 선배님은 연극할 때부터 알았는데 그 때부터 어나더레벨이었다. 이번에 같이 작업을 하는데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에도 그 사람으로 지내고 있더라. '몰입했다' '빠져들었다'는 건 유치한 칭송이고 그냥 정은희가 됐다. 엄청 높고 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혜자 선배님도 마찬가지 였다. '몰입했다'는 건 수준낮은 이야기다. 정말 안보이고 티나지 않는데 모니터를 보면 다 하셨다. 옆에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다"라고 전했다.
그 중 인권이 가장 많이 관계를 맺은 인물은 호식(최영준)과 현(배현성)이다.
박지환은 호식 역을 맡은 최영준에 대해 "영혼의 동반자를 만났다"고 전했다. 이어 "여러모로 행복했다. 촬영 도중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는 않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 살자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현 역을 밭은 배현성에 대해서도 "너무 푸르고 맑고 고운 친구다. 첫 만남에서 '니가 내 아들이구나'라고 말하니 '네 아버지'라고 대답하더라. 요즘도 연락한다. 며칠 전에는 '아버지 영화(범죄도시2) 보고 왔어요'라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훌륭한 배우를 믿고 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좋은 커트가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촬영에 임했다는 박지환. 이는 '인권과 호식' 에피소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지환은 "특별하게 힘을 싣지는 않았다. 역시나 대본 때문이다. 그냥하면 잘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인권이답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했다. 연기는 스포츠가 아니라 제가 사활을 건다고 잘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잘 열어놓고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우리들의 블루스' 속 인권을 비롯해 '범죄도시' 시리즈의 장이수 등 강한 캐릭터와 반대로 실제로 만난 박지환은 젠틀하고 사려깊었다. '오해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는 말에 박지환은 "인생은 루머의 연속인데 제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그냥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지나가면서 '안 무섭게 생겼어'라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우리들의 블루스'는 옥동과 동석의 이야기로 결말을 맺었다. 박지환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옥동과 동석' 에피소드를 꼽았다.
인터뷰 당시에는 해당 에피소드가 방영되기 전이었지만 박지환은 "대본으로 읽었을 때 너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슬픈게 아니라 둘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칠 것 같았다. 읽다가 오열하고 '안돼~ 그만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고 대사와 감정들이 저도 궁금하"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박지환은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계속 저를 몰랐으면 좋겠다. 대중들이 아는 줄 알았을 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배신하고 싶다. 계속 낯설고 싶다"고 전했다.
이덕행 기자 dukhaeng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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