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조용한 개그맨이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개그맨 정명훈(38)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지난 2001년 KBS 공채 16기 개그맨으로 데뷔, '개그콘서트' 톱3 서열 안에 드는 개그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했다.
정명훈은 최근 '개그콘서트'의 '명훈아 명훈아 명훈아' 코너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4일 첫선을 보인 '명훈아 명훈아 명훈아'는 정명훈을 중심으로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 오나미, 김민경, 이현정이 꾸미는 코너. '개콘' 코너별 시청률 톱5(9월 3일 7.3%, 닐슨 전국 기준)에 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정명훈은 "'명훈아 명훈아 명훈아'가 어느 정도 사랑을 받으니 오랜만에 복귀해서 재미있는 코너 만들어냈다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며 "하지만 전 지난 7~8년간 '개그콘서트'에 꾸준히 출연해왔다"고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명훈아' 코너가 3개월 정도 지났다. 궤도에 오른 것 같은데.
▶글쎄요. 뭐가 궤도인지 잘 모르겠어요. 재밌다고 말씀은 해주시는 데 감사할 따름이죠.
-평상시 말투도 '개콘'과 다름없는 것 같다.
▶코너에서 보이는 모습과 비슷해요. 크게 연기를 추구하지 않는 스타일이죠.
-'명훈아' 코너 중 툭툭 던지는 대사가 재밌다는 반응이다. 대본대로 하는 건지, 아니면 애드리브인지.
▶후배들(김민경, 오나미, 이현정)이 저를 돌 때 제가 하는 얘기들은 다 애드리브에요. 대충 생각하고 있다가 하는 말들이죠. 연습할 때 얘기를 쭉 해요. 후배들이 웃으면 그걸 기억해뒀다 써먹는 거죠. 반응이 영 시원찮으면 바꾸고요. 제가 생각할 때 정말 재밌는 거면 연습할 때 말 안 하고 있다 녹화 때 해요. 그러면 빵 터질 때가 많아요. 녹화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와서 후배들이 웃음 참느라고 혼났다고 할 때가 종종 있어요.
-같이 하는 개그우먼 중 누가 웃음을 가장 못 참나.
▶오나미가 제일 못 참아요. 원래 잘 웃어서 그런지 못 참더라고요.
-'명훈아' 코너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 포스터를 보고 영감이 떠올라 후배들하고 모여서 짰어요. 제가 워낙 어릴 때부터 놀리고 그런 걸 좋아하거든요. 최근에 '개콘'이 시청률이 부진해서 제작진이 선배 개그맨들을 불러서 '개콘'을 살리려면 선배들이 코너를 짜 와야 하지 않느냐면서 한 20명 정도에게 코너를 짜오라고 얘기를 했어요. 멤버를 구성하는 데 저는 같이 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김)민경이에게 '너 나랑 같이 코너할래' 그랬는데 옆에서 (이)현정이가 듣고서 저도 끼워 달래요. 그 얘기를 (오)나미가 듣고 나도 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 다 같이 하자고 시작을 했죠.

-코너 구성이 술술 풀리던가요.
▶일단은 뭐라도 나오겠지, 일단 검사를 맡고 보자고 했어요. 처음 검사를 맡았을 때 후배 개그맨들이 쭉 있었는데 보고서는 아무도 안 웃더라고요.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 접었는데 오나미가 '그래도 코멘트는 듣고 가야지' 해요. 자신 없어서 '난 일단 갈게' 했는데 나미가 기다리래요 계속. 코멘트가 진짜 있었어요. 조금 다듬어서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첫 녹화를 했는데 방청객 반응은 좋았어요. 아 이거 6개월짜리구나 느낌이 왔죠(웃음).
-소재는 어떻게 찾나.
▶그냥 후배들이 질문을 하면 제가 '까는' 식의 대답을 해요. 회의도 대화하듯이 해요. 후배들을 보면 막 영감이 떠올라요.
-몰랐는데 '개콘'에서 서열이 상당하더라.
▶'개콘'에서는 (김)대희 형, (김)준호 형 그 다음이 저예요. 원래 제가 제일 선배였어요. 집에 컴퓨터 의자 좋은 게 있어서 '개콘' 연습실에서 쓰려고 갖다놨어요. 제가 제일 선배니까 좋은 의자에 앉으려고요. 그런데 대희 형이 들어오면서 대희 형에게 뺏겼어요. 지금은 전 플라스틱 의자 써요. 대희 형이 제 큰 의자에 본인 이름도 크게 써놨더라고요. 그 후에 (김)지민이나 (장)동민이나 다 들어왔는데, 다 의자를 사더라고요. 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요. 전 여전히 플라스틱이고요.
-햇수로 17년이나 '개콘' 한 길만 걷고 있다. 동기나 후배들처럼 '외도' 같은 걸 생각해본 적은 없나.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연예인을 하는 게 맞는 건가. 그릇이 안되는 것 같은데, 첫발을 잘못 내디뎠나. 방송에 안 맞는 성격인데 괜히 방송 시작해서 고생하나 이랬어요.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그런 삶을 살아야 했나 하고요.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동기들이나 후배들이 다른 방송 나가서 잘하는 것 보면 물론 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전 그냥 일주일에 4, 5일 방송하고 주말은 쉬는, 그런 삶이 행복한 것 같아요.
-자신만의 행복 기준이란 게 있는지.
▶저는 수입으로 따져요(웃음). 한 달에 이 정도 벌었으면 딱 좋겠다는 기준이 있죠. 웬만한 직장인보다 많아요. 딱 좋아요. 많이 벌면 세금만 많이 내잖아요. 그래도 연말정산 할 때 놀라기는 해요. 엥? 내가 이렇게 많이 벌었나, 그런데 어디 갔지? 이러죠.
-그렇게 스케줄 조정해서 일 안 할 때는 무엇을 하나.
▶골프도 좀 치고. 게임도 집에서 하고요.
-결혼 계획은? 집에서도 얘기가 많을 나이인데.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뭐 하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공부하라는 얘기도 안 하셨고요. 제가 뭘 해도 명령이나 응원도 안 해주셨죠. 아버지는 간혹 결혼 하라고 하시는 데 어머니는 안 하세요. 제가 여자를 만나는 데 질투가 있으신 것 같아요(웃음).

-'개콘'의 대선배로서 '개콘'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에는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미있어졌다는 평가를 받기는 하는데 시청률이 받쳐주지 못해서 아쉬워요. (개콘이 방송하는) 일요일에는 날씨가 안 좋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사람들이 일요일에 밖에 있잖아요. 시청률이 떨어지면 '개콘'은 검사 기준이 많이 엄격해져요. 지금이 그렇죠. 영원한 프로는 없으니까 '개콘'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어요. 만약 '개콘'이 없어지면 공중파에 개그프로가 하나도 없게 되는 건데, 그러면 안되잖아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개그맨들은 '개콘'이 없어진다고 해도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인지도가 없거나 막내급 후배들은 '개콘'이 없어지면 힘들죠. '개콘'이 부진하면서 후배들도 올해는 안 뽑았어요. 후배들 입장에서는 막내로서 심부름 계속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계속 기회가 주어지니 오히려 나을 수도 있죠. 막내급 후배들에게는 늘 기회가 주어지거든요. 그 바로 위 기수들은 그런 기회가 없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죠.
예전에는 후배들이 들어오면 두려움이 있었어요. 제 자리가 없어지니까요. 근데 저랑 비슷한 캐릭터는 안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 무슨 캐릭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조용한 개그맨인 것 같아요. 춤 못 추고, 노래 못하는 개그맨이죠. 못 까부는 개그맨.
-그런 게 힘들지는 않았나.
▶처음엔 그런 것 때문에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그맨은 시끄럽고 까불고 익살스럽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니거든요. 예전에 '도전1000곡' 같은 게 섭외가 들어오면 안 나간다고 했어요. 못 하겠으니까요. 그런데 웃기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나름 대로의 개그를 하니까 그게 또 캐릭터로 인정받는 것 같아요. (김) 준호 형이 처음에는 '야, 왜 거기서 못 까불어'라고 막 뭐라고 했는데 이제는 저를 인정해주고 제 개그를 저 만의 스타일로 인정해줘요.

-17년차 연예인인데 사고도 없고 구설도 없었는데.
▶원래 음주운전은 절대 안해요. 도박도 안하고요. 전 그런 돈이 너무 아까워요. 돈을 딸 수도 있겠지만 그 돈 자체가 아까워요. 지금까지 오면서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혼자 힘으로는 못 했겠죠.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도 많았어요. 제가 막 되게 웃기다, 되게 잘한다기보다는 개그맨인데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이제 내년이면 마흔 살이다.
▶제 좌우명이 행복하게 살자에요. 간단하죠? 이제 뭘 해야지 행복한지 아는 것 같아요. 제 꿈은 집을 사자, 차를 하자 이런 게 아니에요. 우스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제 꿈은 '건강한 노인이 되자'에요. 어릴 적에 저희 집은 잘 사는 집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부모님은 적은 돈에도 행복하셨죠. 돈은 없는 데 행복한 가정이었어요. 어릴 때 제 용돈이 하루에 100원이었어요. 그러다 500원이 됐고 정말 기뻤죠. 남는 돈은 저금도 하고요. 그런 것 같아요. 작은 것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 그러면서 건강하게 늙는 게, 제 소망이자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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