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이병기의 시조 ‘난초’ 중 한 문장이다.
난초는 풀끝이 부드럽게 휘어진 청초한 모습이 선비와 같은 예(禮)를 나타내며 은은한 향기를 피어내 고고한 선비와 같다 하여 비유된 사군자에 비유된다.
이 난초를 우리 춤으로 표현한 것이 사군자의 ‘태평무’다. 나라의 태평성대와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왕이나 왕비가 직접 춤을 춘다는 내용의 태평무는 20세기 초 무용가이자 명 고수였던 한성준이 굿하는 곳에서 그 음악을 듣고 반해서 경기 무속 춤을 재구성하여 탄생시켰다.
가무악이 세밀히 분리되지 않았던 이 시기의 한성준은 무용가이기도 했지만 북을 치며 장단을 치던 명 고수이기도 했다. 때문에 독특한 춤사위와 복잡한 무속장단을 이해하여 태평무로 새로이 재구성 시킬 수 있었다. 더불어 그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뛰어났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이춤은 창안당시에는 독무형식의 남성 춤이었으나 제자들에게 가르치면서 왕과 왕비 2인무형식으로 추다가 왕이 의자에 앉으면 왕비가 왕 앞에서 모든 과정을 추었다. 이때 2인무로 추었던 한성준의 손녀딸 한영숙이 왕 춤을 그리고 현재 예능보유자인 강선영이 왕비 역을 맡아 공연하였다.
한성준의 의해 창작되어진 이후 손녀인 한영숙과 제자 강선영에게 전승되었고, 이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춤의 형식이나 복식 등에서 서로 상이한 형태를 갖추면서 각각의 자신의 춤으로 유파를 이루며 2개의 류로 서로 다르게 전승되고 있다.
한영숙류와 강선영류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궁중에서 공주와 옹주의 대례복으로 착용하였던 복식 활옷과 한삼을 걸쳤는지의 여부에 따라 구분 지을 수 있다. 태평무 자체는 강선영을 예능보유자로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92호로 지정했다.

강선영류 태평무의 복식은 화려한 활옷과 한삼을 걸치고 큰머리와 머리에 꽂는 장식으로 떨잠 그리고 금박과 오색 명주로 수놓은 뒤 댕기를 착용하여 화려함을 볼 수 있으며, 춤에는 엄숙하고 장중함이 배어있으며 율동이 크고 팔사위도 화려하다. 춤을 추는 중간에는 활옷을 벗어 상궁에게 전달한 후 당의차림으로 춤사위가 계속이어 지는데 의상에 따른 춤의 변화도 강선영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퇴장하면서 끝을 맺는다.
한영숙류 태평무는 복식부터 단순화 시켜 활옷과 한삼 없이 궁중에서 평상복으로 입었던 당의차림으로 처음부터 입고 추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도 단정하게 쪽머리에 옥비녀, 그리고 검은색 솜 족두리를 착용하고 마지막 포즈도 강선영류와 다르게 무대 위에서 끝을 맺는다. 강선영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담백하고 절제됨 그리고 절도 있고 무게감에서 은은한 향기를 피어내는 난초와 같은 춤사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한영숙류태평무는 초장, 중장, 종장의 내용으로 나뉘는데 신과 대화를 통해 타협하고 위로하고 달래어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3단계 과정이다.
초장은 춤의 도입부로 다섯 방향 즉 오방을 두루 사용하며 팔사위로는 신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태평성대를 기원한다는 뜻이 내포되어있고 마지막 춤사위에서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우주의 자전을 의미한다. 중장에는 접신과장으로 신을 어르고 달래며, 한 해 동안의 복을 빌고 잡귀를 쫓아내는 지신밟기와 같은 의미로 발디딤 동작들이 주를 이룬다.
중장의 마지막 춤사위에서도 시계방향으로 회전하여 중앙으로 돌아온다. 마지막 종장은 풀이의 장으로 신과 대화과정에서 대립과 적대감의 힘을 모두 풀어서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과장으로 빠른 잦은 몰이와 맵임 장단으로 끝을 맺는데 종말 부분도 오른쪽으로 회전하여 끝을 맺는다.
각각의 종마다 맺는 부분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맺게 되는 한영숙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우주공간에서 자전축 중심으로 지구가 돌듯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리듬 우주 속 시간과 자전과 공전의 의미를 나타내는 예술성을 볼 수 있다.
난초를 예찬하며 인간이 살아가야하는 자세를 말하고자 했던 이병기 시조의 내용과 난초에 비유한 태평무에서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의미를 표현한 태평무나 모든 예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로 통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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