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Starnews Logo

[조하나, 속삭이는 무용]무용을 사랑한 왕과 왕자

[조하나, 속삭이는 무용]무용을 사랑한 왕과 왕자

발행 :

채준 기자
사진


대중은 시각에 민감하다! 미디어의 위력은 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미디어를 활용한 이미지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기업의 경영자는 직원들의 마음은 물론 소비자들의 마음도 얻기 위함이고, 정치인들은 국민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현대 미디어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시대에는 미디어를 대신해 예술로써 그 힘을 발휘했던 시기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왕의 권력과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발레를 이용했던 루이14세라할 수 있다.


우리 한국사에서도 루이 14세와 비교되는 인물을 찾아볼 수 있는데 2016년 월화드라마로 인기리에 방송하였던 ‘구르미 그린 달빛’의 배경이 되었던 효명세자 라 할 수 있다. 그는 대리청정을 통해 왕권을 회복하려 했던 비운의 세자이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예술가이다.


효명세자는 조선 제23대 국왕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맏아들로 탄생하여 3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순조로운 세자이자 적통이었다. 효명세자는 18세 부왕 순조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대리청정하게 되는데 이는 세도정치를 견제하고 왕권 강화를 위한 부왕의 개혁의 의지였다. 물론 효명세자 역시 정치개혁을 시도하였다.


효성 지극한 효명세자는 대리청정한 3년 동안 해마다 부왕과 모후를 위해 대규모의 연회를 열었는데 이는 부왕과 모후를 위한 행사이기도 했지만 정치세력을 견제하고 왕실의 권위를 놓이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보아진다.

태양왕 루이14세 동상/사진제공=pixabay
태양왕 루이14세 동상/사진제공=pixabay

효명세자는 이런 큰 궁중 행사를 직접 관장하면서 상당수의 악장과 가사를 직접 만들었다. 특히 중요하게 평가되는 부분은 궁중 무용인 정재무(呈才舞)를 다수 창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기존의 정재무를 내용과 형식을 풍부하게 하였으며 규모와 복식도 더욱 크고 화려하게 창작했다. 그리고 그는 일무를 바로잡고 정재를 정비하는 것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했으며 손수 악장(樂章)을 작곡하고 궁중 음악에서 악인이 풍류에 맞추어 올리는 찬양의 말 치사(’致詞)와 전문을 쓰는 등 정재의 공간 쓰임의 구성과 방식을 새롭게 설계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53종의 정재 중 30종이 넘는 정재가 효명 세자가 직접 만든 것으로, 해당 연회의 각종 사항을 자세하게 기록한 의궤(儀軌)에 남아 있다. 효명 세자의 업적은 무용 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였고 궁중무용의 황금기로 평가되고 있다.


루이 14세는 권력 강화를 위해 직접 발레에 출연까지 하면서 발레의 진흥에 앞장섰고, 효명세자는 병자호란 이래 궁중연회에서 사라졌던 정재 궁중무용을 되살리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이렇게 무용에 열정을 쏟은 동기 또한 두 사람이 비슷했다.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잡을 수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루이14세는 발레를 이용한 태양왕으로 최고의 권력자의 상징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성공하였으며, 효명세자는 유교의 근본인 예악(禮樂)을 중시하는 덕망 있는 군주의 존재를 널리 알려 권세가를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던 정치형태를 억제하고 왕실의 위엄을 회복했다.


하지만 효명세자는 그런 포부를 펼치지 못하고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효명세자를 빼놓고는 한국무용을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효명세자의 업적은 현재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루이14세와 효명세자는 왕권강화를 위해 무용이란 도구를 이용했지만 그들은 타고난 예술가이자 무용을 아끼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최고의 권력자였다.



사진

주요 기사

비즈/라이프-트렌드/컬처의 인기 급상승 뉴스

비즈/라이프-트렌드/컬처의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