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Starnews Logo

[행정척척박사] 2-6. 소형 복합문화공간과 브리콜레르

[행정척척박사] 2-6. 소형 복합문화공간과 브리콜레르

발행 :

채준 기자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대안공간은 주로 미술 분야에서 새로운 예술이 펼쳐지는 실험적인 창작공간을 일컫는다. 대부분 권위주의와 상업주의를 거부하고 순수한 비영리를 추구한다. 한 마디로 '돈이 안되는' 문화공간이다. 다양한 대안공간들이 생겨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건 어쩌면 숙명일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공연분야에서도 대안공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개 대학로의 웬만한 소극장들보다 작은 규모이다 보니 일반 공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액자형(프로시니엄) 무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편안한 착석감을 뽐내는 공연장 전용 의자는 공연 때마다 관객 수에 맞춰 펼쳐놓았다가 접어두기를 반복하는 값싼 접이식 간이의자가 대신한다. 조명이나 음향을 고려한 공간설계는 그저 먼 나라 얘기다. 관람객이나 연주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일반 정규 공연장에 비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민간 복합문화공간들이 건재하는 건 다양한 개성을 가진 관객들이 있고, 그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참신한 기획력 때문이다. 공연예술의 다양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담지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게토얼라이브(Ghetto Alive)도 그런 공간 중 하나다. 오픈한 지 올해로 7년째. 요즘 핫한 서울 성수동 대로변의 화려한 첨단 고층건물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앉은 저층 상가 건물의 지하에 똬리를 틀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공간에 들어서면 '게토'라 이름붙인 이유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 강제거주지역이나 흑인이 사는 미국의 빈민가의 남루한 이미지가 진하게 풍겨나온다.


하지만 이곳은 창작재즈를 중심으로 창작국악,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하며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플'로 떠오른 지 오래다. 좁지만 무용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기술 혹은 다양한 장르가 융합된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장르야 어찌 되었든 적어도 이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는 정신적 엑소더스를 꿈꿀 수 있는 해방구다. 그래서 '게토 얼라이브'다.


그러나 이러구러 입소문을 타고 공간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과 달리 정작 공연장을 꾸려나가는 정지선 대표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사실 공공의 지원 없이는 공간을 꾸려나가기가 정말 버겁다. 일반인에게 낯선 창작음악과 융합예술을 지향하다 보니 수요는 한정되기 마련이어서 늘 재정난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름의 참신한 기획과 수준 높은 연주력을 인정받으며 다양한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고 있음에도 그렇다.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인력 수급도 쉽지 않다. 혼자서 기획과 예술감독은 물론이고 홍보, 연출, 무대기술, 하우스 매니징까지 모두 도맡아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술과 공연기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직원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 탓이다. 설령 초보를 데려다가 가르친다 해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번듯한 정규 공연장으로 떠나버리기 일쑤다. 대표의 씁쓸한 고백처럼 음악전공자로서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남다른 열정이 없었다면 진작에 폐업을 하고도 남았을 일이다.


일찍이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는 브리콜라주(bricolage) 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회를 발견할 때 '있는 것을 활용해 손으로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전에는 '도구를 닥치는 대로 써서 만들기'라고 나와 있다. 현재는 다양한 영역에서 한정된 자원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일종의 전략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쉽게 말해 브리콜라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making do), 또는 제약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흥적으로 해보는 것(improvisation)이나 다른 주요 행위자를 설득하는 것(persuasion)도 포함된다.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한편으로 사람들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전통적 노동의 가치가 사라지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브리콜라주를 주목하기도 한다. 기업가적 브리콜라주라는 말도 있다. 다른 기업이 활용하지 않는 요소를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양상을 가리킨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러한 브리콜라주 전략에 능한 사람을 브리콜레르(bricoleurs)로 불렀다. 열악한 공연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어쩌면 이미 게토얼라이브의 대표는 탁월한 블리콜레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게토얼라이브 같은 소규모 복합문화공간의 운영자에게 언제까지 브리콜레르가 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개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소규모 대안공간이 내 주변에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소확행, 워라밸, 진지한 여가... 요즘 시대를 풍미하는 가치가 구현되는 공간이기도 할 터이다. 이제 지쳐버린 브리콜레르를 대신해서 우리 관객들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이렇게 소담스런 장소를 주변에 가지려면 말이다. 살아있는 영혼의 해방구, '게토 얼라이브' 같은 공간을 주변에서 오래도록 보고 싶다.


-김선영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고 교수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사진

주요 기사

비즈/라이프-트렌드/컬처의 인기 급상승 뉴스

비즈/라이프-트렌드/컬처의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