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 시간 : 오후2시20분~3시45분
시사회 장소 : 서울극장
기사작성 시작시간 : 오후 4시15분
관객 입장에서 한 해에 한 감독의 신작 영화를 두 편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기획, 시나리오, 촬영, 편집, 포스트프로덕션 등 총 제작기간을 감안할 때 그렇다. 더구나 그 영화 두 편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연이어 두번이나 감독상을 받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방금 보고 온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빈집'은 하늘에서 별을 딴 영화다. 지난 3월 '사마리아'가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선정돼 김 감독과 국제전화로 인터뷰를 한 게 엊그제같은데, 지금은 또 다른 신작 '빈집'이라는 영화를 봤다. 그것도 아주 재미난.
'빈집'은 우리 일상에서 참된 휴식의 의미를 찾는 영화다. 서로를 의심하고, 늙은 부모님의 존재를 잊고, 상대방의 모든 것을 가지려는 그 탐욕으로 가득 찬 일상. 여주인공 선화(이승연)는 그런 흉악한 일상의 대표적인 피해자다. 뭔 이유인지 아내인 선화를 의심하고 때리고, 그리고는 금세 위로하는 정신병자같은 남편(권혁호)은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
태석(재희)은 이런 선화에게 구세주같은 존재다. 빈집만을 골라 마치 집주인처럼 편안하게 뒹굴고 빨래까지 하는 태석을 결코 용서할 수는 없지만, 선화에게는 그게 가능하다. 바로 자신이 숨 죽이고 기다리던 일상으로부터의 '휴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휴식은 바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우연히 태석을 만난 후 선화 역시 남의 집에 버젓이 들어가 소파 위에서 아주 편안한 낮잠을 잘 수 있었을까.
그러나 '빈집'이 더 놀라운 것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재미없다'는 지독한 편견을 일순간에 깨뜨렸기 때문이다. '사마리아'가 도발적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구약성경의 엄한 하나님 같은 아버지의 존재를 일깨우기는 했지만, 영화보는 소박한 재미는 없었던 게 사실. 하지만 '빈집'은 김 감독의 위트와 삶의 유쾌한 관찰력에 슬금슬금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다.

태석이 고장 난 기계나 시계만 보면 드라이버를 꺼내 고치거나, 선화가 어느새 태석의 '빈집 살이'에 슬며시 빠져드는 에피소드 등은 신선하다. 감옥에 간 태석이 각고의 노력끝에 사람 뒤에 눈치채지 않고 숨을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과정과, 그 능력을 영화 막판에 화끈하게 발휘하는 장면은 작정하고 만든 걸쭉한 코미디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김 감독은 물론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특유의 가학성 취미를 숨기지 않았다. 골프공을 날려 멀쩡히 지나가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경찰관을 괴롭히는 그 아찔한 가학 성향. '사마리아'의 아버지(이얼)가 보여준 폭력적 가학에 비하면 좀 약하지만, 태석이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3번 아이언을 휘둘러대는 장면은 섬뜩하기만 하다.
김 감독은 영화 시작 전 "이 영화는 머리를 쓸 필요가 없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은 틀렸다. '빈집'은 선화의 편안한 낮잠처럼, 그리고 선화와 태석의 흥겨운 재회처럼, 취한 일상으로부터 머리가 맑아지는 영화다. 10월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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