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원래 아무 대가 없이, 대가에 대한 기대없이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러나 영화에서 종종 극적인 긴장감을 더하며 등장하는 납치범과 인질 간의 관계 발전은 대가를 전제로 하다가 보통 그 대가와 관계없이 전개되기에 일면 더욱 순수해 보일 수도 있다.
일본영화 ‘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감독 와다 벤)은 납치범과 인질, 여기에다가 중년 남성과 여고생 사이라는 비틀린 관계를 하나 부가한다.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하다가 영업사원 이와조노(다케나카 나오토 분)에게 납치, 감금된 여고생 구니코(고지마 히지리 분). 구니코는 수갑에 묶인 채 두 달 남짓 갇혀 지내면서 이와조노(다케나카 나오토 분)로부터 원치 않는 보살핌을 받게 된다.
단 둘이 나선 여행은 모처럼 맞은 탈출의 호기. 하지만 구니코는 어느덧 이와조노의 손길에 길들여져 도망치는 것을 스스로 거부한다. 더욱이 이제는 이와조노를 자신의 사랑의 포로로 삼은 것.
구니코를 가둔 것은 이와조노지만 구니코는 어느새 이와조노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관계의 시작은 일방적, 강제적이었지만 어느덧 서로의 포로가 된 두 사람은 밤낮으로 섹스의 향연을 벌이며 소통의 극치를 맛보게 된다. 특히 이와조노를 통해 난생 처음 성에 발을 들여놓은 구니코는 한껏 달뜬 감정으로 정신없이 섹스에 빠져들며 기쁨을 맛본다.

외적인 격차를 뛰어넘은 두 사람 애정의 진정성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머리 벗겨진 중년남성과 교복 입은 여학생으로 상징되는 원조교제의 마땅함을 은연 중 드러내는 것 같아 영화에 마냥 동화되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면도 있다. 즉 원조교제의 정당성이 소녀의 적극적인 욕구 표시로 대변되는 듯해 괜스레 불편해지는 것이다.
영화는 한편 납치사건이라는 소재가 지니는 하숙집, 호텔방 등 공간적 배경의 폐쇄성을 주변의 다양한 인물형으로 뚫고 나간다.
세입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포착하는 호기심 천국의 집주인 사키코를 비롯해 나이트클럽 아르바이트생 츠다, 밤거리의 여인 미도리, 사기꾼 모리야마 등 개성 만점의 주변이웃들을 통해 단조로운 극전개를 돌파해 나가는 한편 웃음을 이따금 선사한다.
특히 영화 ‘쉘 위 댄스’(감독 수오 마사유키), ‘스윙 걸즈’(감독 야구치 시노부)에 출연한 감독 겸 배우 다케나카 나오토의 생생한 열연이 돋보인다. 이 영화는 40대 남자가 결혼을 위해 여고생을 납치, 감금한 뒤 사육 일기까지 작성한 실화를 그린 베스트셀러 ‘여고생 유괴 사육사건’(마츠다 미치코 지음, 1994)을 극화했다. 10월 14일 개봉. 18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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