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타유발자들'은 말하자면 저주받은 걸작이었다. 한석규를 위시로 내노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사회 부적합자들이 위선을 떠는 기득층 인물들을 잔인할 정도로 구타하는 장면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하지만 원신연이라는 이름 석자는 충무로와 배우들에게 각인됐다. '목요일의 아이'로 출발했던 '세븐 데이즈'가 힘든 시기를 겪을 때 배우와 투자자들은 원신연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는 소식에 두말 없이 참여했다. 할리우드에 있던 김윤진도, 김미숙도, 박희순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편영화와 무술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내딛은 원신연 감독에게 충무로는 과연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세븐 데이즈'로 새롭게 관객 앞에 선 원신연 감독은 거침이 없었다.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감 넘치는 편집에 결말을 위해 촘촘히 쌓아놓은 소소한 반전까지, 원신연 감독은 예의 스타일을 드러냈으되 훨씬 친절해졌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작품에 말하자면 중간 투입된 셈인데.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않을 정도로 시나리오가 좋았다. 물론 아무리 좋아도 내 정서와 맞지 않으면 못했겠지만. 이 작품이 그냥 사라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걸 살려야 했기에 내 작품이라고 못을 박았다. 외부의 시선은 그들만의 시선일 뿐이다. '세븐 데이즈'는 내 사링고 내 피다.
-'구타유발자들'이 흥행에 참패해서 그런지 '세븐 데이즈'는 한층 친절한 느낌인데.
▶모든 감독들은 흥행에 부담이 있을 것이다. 한국형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중이 불신을 가지고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그런 틀을 깨보고 싶었다. 대중성과 결부돼 엔딩을 좀 친절하게 했다.
-빠른 편집이 '미드'를 연상시킨다거나 '세븐'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도 있다.
▶처음에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마쥬나 차용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하고 싶은 것을 가급적이면 피해가고 싶은 감독이다. 하지만 '세븐'이나 '쏘우' 같은 큰 작품들과 비교를 계속 하니 어느순간 기분이 좋아지더라. 우리나라 제작환경에서 만든 작품을 그렇게 큰 작품들에 비교를 한다니깐.
-'세븐 데이즈'의 모티브를 '유괴'가 아니라 '납치'라고 늘 강조하던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아이가 있는 아버지로서 아이를 유괴의 대상으로 만드는 작품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는 모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윤진과 김미숙이 가지고 있는 모성이 거울을 보듯 닮아있다.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다.
-원래 시나리오보다 원신연 감독의 색깔이 많이 담겨있다.
▶원 시나리오가 원체 탄탄했다. 나는 여기에 좀 더 장르적인 색과 작가적 비판의식을 담으려 했다.
-전작도 그렇고 기득권에 대한 비판의식이나 분노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내가 자라온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지나치게 소외된 삶을 살았다. 나의 분노를 억눌려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도 한다. 관객들이 내 분노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세븐 데이즈'는 그래서 애둘러 표현한 것 같다.
-김윤진과 작업을 함께 한 이유가 있다면.
▶대안이 없었다. 한국에서 여배우가 변호사 역이라고 하면 할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애 딸린 변호사라고 하면 나설 사람이 별로 없다. CF가 다 떨어지니깐. '구타유발자들'에서 한석규 선배가 그러더라. CF 못하게 됐다고. 그러면서도 출연한 것을 너무 기뻐했다.
김윤진은 그 점에서 전혀 개의치 않았다.
-김윤진은 아이를 잃어버리는 엄마 역을 자신이 잘 했을지 걱정이 많다고 했는데.
▶부모를 잃은 슬픔을 꼭 그런 경험이 있어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상상하는 슬픔이 더 절절할 수 있다. 김윤진은 그런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현장에서 프로였다. 손발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현장에서 늘 고민했다.
-무술감독 출신인데 액션에 대한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다.
▶무협영화를 했다면 듣도보도 못한 것을 하려 했을 것이다. 물론 다양한 폭발 장면이나 여러가지 액션을 구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 액션이 과다하면 이야기의 맥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위해서겠지만 법정 장면은 실제 우리나라 법정과 많이 다르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사실 자신이 없었다. 리얼리티에서 벗어나 뻔뻔스런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변호사들을 만났는데 앞으로 우리 법정도 그런 식으로 변할 때니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는 영화가 될 거라고 하더라.(웃음)
-소소한 반전이 레고처럼 맞물려 전체를 이룬 것 같다.
▶이 영화는 반전이 중요하지 않다. 각색을 총 네 번 했는데 세 번째 버전에는 처음부터 범인을 알려주고 풀어가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범인이 공개되는 것에는 반대다. 그것은 영화를 즐기려는 관객들에게 횡포다. 하지만 벌써부터 인터넷에 범인이 누구라고 올리는 사람도 있더라.
-감독으로서 꿈이 있다면.
▶하고 싶은 영화를 아무런 제약없이 하고 싶다. 좀 더 사회적인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풀고 싶고. 이안 감독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되 내 성향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닿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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