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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정 "'신세계' 프리퀄, 다른 감독이 연출했으면"(인터뷰)

박훈정 "'신세계' 프리퀄, 다른 감독이 연출했으면"(인터뷰)

발행 :

전형화 기자
사진=구혜정 기자
사진=구혜정 기자


박훈정 감독. 이제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감독이라는 직함이 더 어울린다. 박훈정 감독은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그는 직접 쓴 '혈투'로 감독으로 데뷔했다가 흥행에 쓴 맛을 본 이후 현재 300만명을 넘어서며 승승장구 중인 '신세계'를 연출했다.


박훈정 감독의 인생역전은 그 자체가 영화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교에 들어갔다가 자퇴하고 군대에 가서 말뚝을 박았었다.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동경은 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갔던 영화판에선 환멸만 느꼈다.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대접은커녕 돈을 떼먹을 궁리만 하는 그의 표현대로 "양아치만 만났다". 박훈정 감독은 영화에 대한 꿈을 접고 만화 스토리와 게임 스토리를 써 왔다. 그쪽은 작은 돈이라도 약속은 지켰다.


그래도 영화에 대한 동경은 점점 커져만 갔고 박훈정 감독은 돈 대신 꿈을 택했다. 사실 '신세계'는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지 못할 뻔 했다. 투자사에서 한재덕PD와 정정훈 촬영감독, 최민식과 이정재,황정민이 다 돼 있으니 박훈정 감독만 바꾸라는 제안을 해왔었다. 한 곳도 아닌 여러 곳에서. 박훈정 감독 전작 '혈투' 성적이 워낙 참담했기 때문이다.


박훈정 감독의 말마따나 "'신세계'는 싸나이들이 모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신세계'를 비롯해 '혈투'도 그랬고, 박훈정 감독의 작품들은 레퍼런스(참조)와 표절의 경계에서 줄을 탄다. '신세계'도 범죄조직에 잠입하는 경찰 이야기라 '무간도' 이야기가 처음부터 많았는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독창적이고 신선한 이야기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신선하고 독특한 내용이라고 해도 레퍼런스에서 벗어날 순 없다. 그런 이야기로 지루하게 만들기 보단 장르 안에서 재미를 추구하고 싶다. 언더커버(조직에 잠입하는 이야기) 설정을 했을 때부터 '무간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부'나 '도니 브래스코'도 마찬가지고. 신경 안 쓰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작 '혈투'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느렸다. 당시 더 느리게 하고 싶었다고 했었고. '신세계'도 보통 이런 장르 영화들보다 호흡이 상당히 느린데.


▶작품 성격마다 호흡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영화가 연이어서 느린 것도 사실이다. '혈투'는 내가 너에게 상처주는 말을 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처 주는 말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다 날라 가다 보니 이도저도 아니게 됐다. '신세계'도 비슷하다. 묵직하게 클래식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영화들이 속도감이 빠른데 '신세계'는 이야기가 느리게 쌓여가다가 한계점에서 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3분의 2 가량이 클로즈업이다. 보통 영화에서 안 쓰는 방식이다. 특히 클로즈업 중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뒷모습을 꼭 담는 리액션 장면이 많았는데. 그게 다른 언더커버 영화와 다른 부분이기도 하고.


▶촬영감독님도 그것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영화의 최고 볼거리는 배우들의 미세한 연기라고 생각했다. 속내를 감추지만 서로 상대를 아는 남자들의 모습. 눈빛이 변하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런 표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최민식이야 연기9단이고, 황정민은 속칭 따먹는 역할이다. 반면 이정재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역이고. 어떤 순간에 이정재에 대한 확신을 가졌나.


▶우선 이정재는 외형적으로 최적이었다. 사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이정재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이 역할에 대해 계속 불안해하면서 찾아와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가 생각하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면서 지금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서로가 같은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정재는 담배를 안 피우는데 이 영화를 하면서 담배를 피면서 점점 말라지더라. 마치 영화에서처럼.


-'신세계' 속 절과 기원, 낚시터는 이 영화가 한국영화 같지 않고 홍콩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만큼 인공적이기도 하고.


▶절은 맞다. 홍콩, 대만 영화에서 많이 보는 장면이다. 실제로 대만 삼합회 보스 장례식을 뉴스로 봤는데 저거다 싶더라. '신세계'에서 그리는 범죄조직이 그간 한국영화에서 보여진 조직이 아니니깐. 그리고 기원과 낚시터는 사실 로케이션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적당한 장소가 없더라. 그러다가 미술감독님이 우리영화에서 미술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별로 없는데 기원을 지금처럼 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내더라. 너무 좋았다. 낚시터는 사실 용산 철거된 장소에 설치할까 싶었다. 폐허가 된 공간 뒤로 마천루가 있는 장소에 외롭게 있는 낚시터. 죽은 도시 위에 있는 장소. 그런데 섭외가 쉽지 않더라.


-그런 장소들에서 보여준 이질감이 '신세계'를 한국식 조폭영화와 차별화를 이루기도 하는데.


▶왜 모든 영화를 한국식으로 만들어야 할까라고 생각한다.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이랄까. 이런 이야기는 굳이 한국식으로 끼어 맞춰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엘리베이터 장면이나 마지막 교차편집 장면 등은 씬의 낭비랄지, 감독의 의도랄지, 불필요한 장면들이 느껴진다. 더 멋지게 편집할 수 있지만 좀 더 개싸움 같은 느낌을 담았다고 할까.


▶편집실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내 성향이 그래서인지 다 보여주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장면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멋있는 액션은 싫다고 했다. 바퀴벌레들이 싸우듯이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다른 장면들에선 나도 왜 이렇게 했을까란 고민이 든다. 아직 연출이든 편집이든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사진=구혜정 기자
사진=구혜정 기자

-'신세계'는 '무간도'처럼 긴 이야기의 한 부분인 것 같다. 그래서 속편이랄지, 프리퀄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깡패들이 넥타이 매고 정치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실 1990년부터 2013년까지 이야기를 3부작으로 담고 싶었다. 항만노조 파업 현장에 경찰 공안이 지역 깡패 대신 다른 지역 깡패를 동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너무 길다보니 이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를 처음 선보여야 할까 고민하다가 현재 이야기가 나왔다. 프리퀄 이야기를 사실 하고는 있다. 이 영화가 잘 되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만 했다. 현재 생각은 만일 프리퀄을 해도 내가 연출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영화 세팅이 다 됐는데도 투자가 쉽지 않았다. 박훈정 감독만 바꾸면 투자하겠다는 이야기도 많았고.


▶나도 나중에 들었다. 한재덕 대표가 이야기를 안 하더라. 그래서 나 때문에 못한다면 빼고 가셔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재덕 대표가 "우리끼리 같이 하기로 했는데 그러면 쪽팔리잖아"라고 일축하더라. 또 나중에 들었는데 배우들이 투자가 안 되도 이 멤버대로 가자고 뜻을 모았다더라.


-'신세계'는 한재덕PD가 설립한 사나이픽쳐스 창립작이다. "싸나이들"이 힘을 합쳐서 가능했고. 또 감독도 '싸나이' 이야기에 매료된 것 같은데.


▶조망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남자 이야기다. 힘든데도 내색하면 안되고 그러면서도 시스템 안에 톱니바퀴로 사는 남자 이야기.


-영화판에 환멸을 느끼고 떠났는데 왜 돌아왔나. 힘들었던 지난날이 영화를 만드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했나.


▶난 콤플렉스로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가장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고민했더니 역시 영화인 것 같았다.


-'신세계' 현재 버전 에필로그말고 조직에 다시 경찰이 잠입하는 에필로그가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아예 에필로그를 빼자. 지금 버전으로 하자. 둘 다 넣자까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것 같은 이야기를 넣었다.


-'신세계' 프리퀄을 다른 감독이 연출해도 상관없다고 했는데. 보통 감독들은 자기 이야기를 자기가 연출하려 하는데. 시나리오작가와 감독을 병행할 생각인가.


▶내가 연출하지 않는다고 내 이야기가 아닌 건 아니니깐.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으면 그게 맞는 것 같다.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만 전달하면 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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