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개의 연애' 김재욱 인터뷰

뜻밖이었다. 그런 김재욱(33)을 만날 줄이야. 영화 '두 개의 연애'(감독 조성규)는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콧날에 눈망울을 지닌 차가운 도시남자 패션리더인 줄로만 알았던 김재욱의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가 처음으로 사람답게 보인다.
김재욱이 맡은 주인공 인성은 허세와 바람기, 어처구니없는 거짓말 실력과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을 지닌 영화감독. 일본인 뺨치는 일어 실력으로 재일교포 미나(박규리 분)와 사귀었지만, 지금은 공동작업을 앞둔 시나리오 작가 윤주(채정안 분)와 비밀 연애 중이다. 전 여친의 연락에 현 여친에겐 '일하러 간다'고 둘러대곤 들뜬 마음으로 강릉으로 향한 인성은 철벽같은 전 여친과 쿨하기 그지없는 현 여친 사이에서 몹시 난감한 처지에 놓인다.

멀쩡한 허우대로 도저히 가려지지 않는 허술한 본색을 들키고 만 남자를 보며 영화 후반부 내내 킬킬거렸다. 김재욱은 즐겁게 연기했다면서도 "(두 여자 사이를 오간 경험은) 없습니다", "연애는 모 아니면 도", "제 캐릭터가 녹아있는 건 아니다"며 자신과 오락가락 캐릭터의 유사성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정없이 망가진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기색만은 역력했다.
"'김재욱이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 겁나게 겁나게 많이 들었어요.(웃음) 감사하죠. 이런 리얼한 영화를 너무 좋아하고 하고 싶었어요. 제게 선뜻 주시기 힘들었을 거라는 걸 저도 알아요. 일본어를 제외한다면 김재욱이란 배우에게 가장 먼저 줄 시나리오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연기하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쌓인 게 풀렸어요."

10년 가까이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범접불가 꽃미남을 대표 캐릭터로 유지해 온 김재욱이다. 각 잡힌 차도남이란 확실한 캐릭터가 특화된다면 그것도 장점이겠지만, 김재욱 스스로는 한가지 색으로만 소모되는 데 답답함을 느껴온 게 사실이다.
"나사 풀리고 허당기 있는 인간 김재욱이 가지고 있는 게 분명히 있는데, 그것보다는 대중들이 가진 이미지로만 자꾸 저를 캐스팅하는 분들이 있어서 아쉬웠어요. 이게 다가 아닌데. '이런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현장에서도 더 까불었어요. 물론 전작에서 '각 잡힌' 캐릭터를 할 때도 컷 하면 까불고 그랬어요. 의도적으로 한 것도 있죠. 그런 모습을 안 보여드리면 '김재욱은 저런 사람인가봐'하는 게 있어서."
술을 먹어야 하는 모든 장면에서는 진짜 술을 마셨다. 전 여친 미나와의 회상 술자리에서도, 강릉 여행에서 들른 매운탕집에서도, 현 여친 윤주와 간 물회집에서도 기꺼이 술잔을 들이켰다. 대사를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만 얼큰히 마셨다. "감독님 스타일이긴 하지만 실제로도 먹으면서 연기해 보고픈 생각이 있었다"는 게 김재욱의 설명. "톤 자체가 리얼한 영화라 술을 먹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덕분에 뻔뻔하고도 찌질한, 멀쩡한 남자의 술자리에는 생생한 기운이 가득하다. 두 여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남자나 실제 술을 마셔가며 찍는 현장이 일면 홍상수 감독 영화를 연상시킨다. 김재욱은 "카테고리로 나누자면 연출방식이나 지향점이 비슷"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가 인물의 감정에 치중한다면 이 영화는 먹거리라든지 조성규 감독님 인생 가치관이 담겨 있어요. 먹는 게 시작이자 끝이죠. 촬영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힘들다 싶으면 먹고.(웃음) 2주에 영화 한 편을 찍는 게 여유로운 스케줄은 아니었어요. 육체적으로 힘들 수 있었음에도 스태프나 배우 누구 하나 모난 사람이 없고, 작품 자체가 내추럴해서 다들 어깨에 힘 풀고 편안히 찍었어요. 몸은 힘들어도 즐거운 현장이었어요."

"인간미 없던 캐릭터는 다 힘들었다"는 김재욱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컸다고 고백했다. 전과 다른 연기를 해보고 나니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더 생긴다. '생긴 자'의 여유로 치부할, 말로만 되뇌는 바람이 아니다. 패션모델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해 쏟아지는 화보 사진 제안 등을 죄다 거절하고 그저 연기에만 집중해온 게 벌써 몇 년이 되어간다.
"제가 30대 중반이 되어서 그런 걸까요. 매 작품 좀 다른 연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외모가 가진 느낌은 모든 배우에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장점을 살리자, 하지만 그것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만은 피하자'라고요. 많은 모델 출신 배우들이 있죠. 하지만 모델 이미지가 강하다는 게 저에게는 좋은 게 아닌 것 같아요."
'두 개의 연애'에 이어 조창호 감독의 '다른 길이 있다',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까지, 지난해와 지지난해 조용히 열심히 찍은 김재욱의 다른 영화들이 올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관객과 만난다. 그 작품에도 조각 같은 외모에 머물고 싶지 않은 배우의 진심이 분명 담겨있을 터다.
"개인적으로는 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해요. 직접 해 오지 못한 게 누굴 탓할 문제는 아니고, 지금까지의 저를 생각하면 누가 제게 코미디를 주고 싶겠나 싶어요. '김재욱이 뭔가 내려놓은 연기를 하는구나' 하는 게 이 작품을 통해 좀 알려진다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조금 넓어질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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