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더 테이블'

고즈넉한 거리, 자그마한 카페의 작은 테이블 하나. 하루 종일 손님을 맞이하는 그 자리에선 머물다 간 삶의 단편들이 가만히 펼쳐진다.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이 약 1년 만에 내놓은 '더 테이블'은 몹시 사적인 단편소설 모음집 같다. 같은 카페 같은 자리에서 하루 동안 펼쳐지는 네 개의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펼쳐진다. 단조로운 구성이 지루하지 않은 건 각 이야기의 재미, 절묘한 밸런스, 리드미컬한 흐름과 변화들 덕분이다.
스타배우 유진(정유미 분)과 전 남자친구 창석(정준원 분)은 오전 11시 그 곳에서 만났다. 유진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설렘을 느끼지만 창석에게 그녀는 '내가 옛날에 사귀었던 톱스타'일 뿐. 눈치 없는 호기심에 유진은 그만 씁쓸해진다.
하룻밤 사랑 후 몇 달 만에 다시 만난 경진(정은채 분)과 민호(전성우 분)은 오후 2시 반 커피를 마셨다. 빤히 쳐다보지만 다른 소리만 하는 남자, 눈도 제대로 안 마주치며 틱틱거리는 여자의 마음은 쉽게 서로에게 가 닿지 않는다.
오후 5시, 가짜 모녀 은희(한예리 분)와 숙자(김혜옥 분)는 결혼 사기를 모의한다. 은희의 섭외로 카페에 나온 숙자. 은밀히 시간과 장소, 방법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뜻밖의 진심을 확인한다.
비오는 오후 9시엔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 분)과 그의 옛 연인 운철(연우진 분)이 그 자리에 앉았다. 운철만 받아준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는 혜경은 꽤 대범하고 당돌한 제안을 던진다.
그 테이블에서 만난 8명의 사람들은 어느 하나 솔직하지 않다. 하지만 섬세하게 배치된 권종관 감독의 카메라와 자연스럽고도 솔직한 대사들은 그들의 말과 표정 으로 거짓말 속의 진심을 결국 드러내고야 만다. 그들의 숨겨진 속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은 때로 씁쓸하게 때로 달콤하게 또 애틋하게 다가온다.
대화만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배우들의 앙상블은 '더 테이블'의 원동력이다. 역시 주목하게 되는 건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등 노개런티로 출연을 결정한 4명의 스타 여배우들. 어딘가 그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 법한 네 여성 캐릭터들은 반가울 만큼 입체적이고 매력있다. 네 배우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본인에게 딱 맞는 옷을 찾아입고 매력과 기품을 드러낸다. 여기에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 명의 여배우가 더 있으니 바로 은희의 가짜 엄마로 등장하는 김혜옥이다. 아직은 낯선 얼굴인 정준원과 전성우, 섬세한 표정으로 스크린 앞에 선 연우진도 좋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 벌어지는 '더 테이블'의 하루는 걷고 또 걸으며 마음을 시험하고 또 시험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감독의 전작 '최악의 하루'를 보고 관람하면 더 흥미로울 듯하다. 여전히 소소한 일상의 미학을 전하는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은 휴식처럼 함께할 수 있는 소품이다. 비슷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기획영화들의 틈새에서 소품의 가치는 되려 돋보인다.
24일 개봉. 러닝타임 70분. 12세 이상 관람가.
p.s. 공교롭게도 하루 간격으로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범죄영화 '브이아이피'와는 거의 모든 면에서 정 반대의 매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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