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영화 감독이란 타이틀보다 배우로 더 익숙해진 양익준(42)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시인의 사랑'으로 관객들과 만남을 앞두고 있다.
양익준은 '시인의 사랑'에서 시인이지만 시 쓰는 재주도 없는, 먹고 살 능력도 없어 아내의 벌이에 의지해 사는 현택기 역을 맡았다. 그는 어느 날 만난 소년으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면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는 아내와 갈등을 빚게 된다.
'시인의 사랑'을 통해 시인으로 변신한 양익준은 그는 드라마, 영화 등에서 센 이미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서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단순했어요. 일본에 있을 때 보내주신 시나리오를 봤는데, 좋다고 느꼈죠. 가끔씩 연출, 연기로 시나리오도 받아보고, 드라마 하면서 대본도 보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에 비해 일상적인 소재였어요. 우리도 겪을 수 있는, 저한테도 되게 일상적인 느낌이어서 출연하게 됐죠. 그리고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쉽게, 만만하게 봤었는데 나중에는 어렵다고 느꼈었죠."
영화는 양익준의 말처럼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시인의 사랑은 예사롭지 않았다. 택기가 어느 날 만나게 된 소년 세윤(정가람 분)에게 느끼는 감정은 격정적이었다. 시 창작을 위해 받는 영감 그 이상으로, 동성애적이 느낌이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익준은 "꼭 그렇게 봐야 할까"라고 했다.
"동성애 정서가 들어가긴 했지만, 그런 감정은 이성이나 다른 어떤 관계 안에서도 충분히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꼭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특별하다고 하시거나 어떤 코드를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냥 '어떤 이야기'였어요."

그의 말이 일리는 있다. 택기라는 인물의 감정 자체가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내 강순(전혜진 분)에게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세윤에게 느끼고, 그녀의 계속되는 압박에 쌓아둔 감정이 폭발하지만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꽃잎을 틔운 꽃망울처럼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 양익준은 끌렸던 것이다.
'시인의 사랑'에서는 시인 택기라는 인물에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가장으로 보여주는 지독한 무능력은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이런 캐릭터에 대해 양익준은 충분히 이해 한다는 입장이다.
"택기가 일상에서 발견하고 싶은 것은 고독과 슬픔이었다고 생각해요. 경제력은 강순이가 노력하고 있고, 정자가 부족해 아이를 낳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죠. 그런 것에 대해 개념이 없죠. 없는 상태로 있었으니, 그런 것들에 대한 불안감이 없던 거예요. 그러다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움직이는 사람이 찾아왔던 거죠."
영화는 시인의 감정을 이해하면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일상,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작품 속 '사랑'의 감정을 사실 쉽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단순한 이성의 감정 교류가 아닌, 영감을 얻는 감정의 교류와 공감, 이해 등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이 다뤄지기 때문이다. 이에 양익준은 "쉽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마 뱃속에서 있다가 태어났다고 해서, 저희가 엄마를 쉽게 이해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봐줬으면 해요. 영화는 단순해요. 쉽고, 어렵고의 개념이 없죠. 그리고 이런 영화가 쉽게 뭔가 설명해 주면 아깝잖아요. 관객들이 뭔지는 모르지만, 쉬운 감정은 아니니까 천천히 느꼈으면 좋겠어요."
양익준은 택기의 감정선에 있어 아쉬움도 있다고 털어놨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소년에게 느끼는 시적 감성이 아름다움, 사랑할 수 있는 시적 영감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덜 채워진 게 있었어요. 시인한테는 자기 연민에 대한 시도 있지만 어떤 대상이나 여러가지 것들 안에서 사랑을 발견해야 하는 슬픔, 고통도 말할 수 있어야 했죠. 그런 감정들을 찾아가는 지점들에 대해 도화선 같은 것들이 필요했어요. 그런 게 시나리오 상에서는 약했죠."
영화에서는 택기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조금은 어렵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 때마다 툭툭 튀어나와 이를 해소 시켜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택기의 아내 강선. 어떤 일에 대한 결정을 할 때, 과감하게 진행하는 모습은 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는 전혜진이 캐릭터를 맛깔나게 표현해 냈기에 가능했다. 이 여배우와 호흡에 양익준은 "푹 빠졌다"고 표현했다.
"제가 역할로 봤을 때, 분명 정가람에게 빠져야 하는데 오히려 전혜진 씨에게 빠져버렸죠. 그녀가 가진 정서에 말이죠. 뭐랄까요. 저는 대범하고 이끌어 주는 여성들에게 끌리는 게 있거든요. 택기 같은 게 제 안에도 있어요. 여성에게 좀 끌려가고 싶은 거죠."

이번 작품을 통해, 기존의 강렬한 모습을 벗은 양익준. 영화 '똥파리' 외에 여러 작품으로 감독으로 역량을 보여줬던 그는 이제 배우로 탄탄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젠 배우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지론도 펼쳤다.
"배우는 영감을 스스로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해요. 영감이라는 게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연기를 하면 못해요. 좋은 연기자는 연기가 아니라 표현을 하는 것이죠. 연기를 하면 연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러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는 거죠. 사람들이 봤을 때, 그대로 빠져들게 하는 게 바로 연기죠."
한동안 감독으로 이름을 내밀지 못하고 있는 양익준은 언제 다시 연출가로 돌아올까 싶다. 이젠 감독의 면모도 다시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지 묻자 머쓱하게 웃었다.
"5년 전부터 '내년에 할게요'라고 했었죠. 한 8년 정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뭔가를 할 때 그것만 생각하고 해야 생각하는 가지들이 건강하게 넓혀지는데, 그렇지를 못했어요. 연출을 하려면 연기를 한 시즌 관둬야 해요. 어떤 분들은 연기, 연출을 같이 하는 게 부럽다고 하는데, 사실 같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는 쉽지 않겠지만 내후년에는 뭔가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어떤 시나리오를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를 위한 시나리오, 저를 놓고 쓰려고 하지는 않고 있어요. 일단 내후년에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시인의 사랑'도 있고, 일본 영화 프로모션도 있어요. JTBC '전체관람가'에서 단편 영화도 만들어야 해요. 이런 일정들을 다음 달에 해야 해요. 단편은 11월에 찍어야 하고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데, 여력이 되면 반년 정도는 쉬고 싶어요. 쉬다 보면 일하고 싶을 것 같겠죠. 그게 병행되면 내후년에는 작품을 하나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