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의 마지막 주말 박스오피스에선 뚜렷한 키워드가 감지됩니다. 바로 여성입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대거 포진하며 강력한 흥행파워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반가운 성적입니다.
결국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정상에 등극한 박훈정 감독의 '마녀'는 기억을 잃은 채 노부모의 손에 자란 여고생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했다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여성 원톱의 액션물이죠. 신예 여배우 김다미가 타이틀롤이기도 한 원톱 여주인공 자윤 역을 맡아 극을 이끌며 강도 높은 액션까지 소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자윤의 과거를 아는 닥터백 역의 조민수, 자윤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고민시, 미스터리한 또 다른 여인 정다은 등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대거 등장합니다. "여성 캐릭터의 향연"이란 박희순의 소개가 과장이 아닙니다.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는 남성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의 이야기임을 천명한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합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 '허스토리'는 세상과 당당히 맞선 위안부 할머니와 원고단장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시작부터 위안부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비극에 매몰되는 대신 여성들의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그려 보입니다. 배우 김희애, 김해숙, 문숙, 예수정, 이용녀, 김선영, 이유영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믿음직한 여배우들이 함께했습니다.
'오션스8'은 화려한 캐스팅으로 대표되는 케이퍼 무비 '오션스' 시리즈의 여성판입니다. 극중 원작 대니 오션의 여동생으로 등장하는 산드라 블록은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리한나, 헬레나 본햄 카터 등 쟁쟁한 멤버들을 불러모으면서 대놓고 "남자는 필요없다"고 일갈합니다. 그 자신감은 관객에게도 통했습니다. '오션스8'은 기세등등하게 시리즈 사상 최고 오프닝을 기록하며 이미 120만 관객을 넘겼죠. 북미 성적만으로도 제작비 7000만 달러를 뛰어넘은 '오션스8'은 시리즈 중 가장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개봉 3주차에도 2위를 유지하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는 '탐정:리턴즈'도 주목할만합니다. 전편은 물론 이번도 주요 캐릭터가 모두 남성이지만 연출자는 여성인 이언희 감독입니다. '탐정:리턴즈'는 25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면서 변영주 감독의 '화차'(243만 명)를 넘어 여성 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 역대 흥해 2위에 올랐습니다.
"여자영화라 안돼"라는 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던 충무로의 속설이었습니다. 그 지긋한 편견 때문에 여성들을 앞세운 영화들은 제작조차 쉽게 이뤄지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보란 듯이 박스오피스를 장악한 모습은 그래서 더 반갑고 의미심장합니다. 동시에 7월 말부터 본격 시작되는 여름 대전을 앞둔 빈틈을 노려 이같은 작품들이 한꺼번에 개봉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짚어봐야 할 대목입니다. 여배우들의 힘, 여성의 힘이 여름 극장가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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