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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증인' 현실에 있는 다른 사실을 변호하는 착한 영화 ①

[리뷰] '증인' 현실에 있는 다른 사실을 변호하는 착한 영화 ①

발행 :

전형화 기자
사진


살인을 목격한 증인이 있다. 자폐아다. 16살 소녀다. 그녀의 증언으로 살인범으로 몰린 가정부. 그녀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영화 '증인'은 현실이 주는 착각을 변호한다. 그 변호의 방향이 가슴을 적신다.


한때 민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쳤던 변호사 순호. 그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긴 빚으로, 민변을 떠나 대형 로펌에서 일한다. 원래라면 5년은 복역해야 했을 사람을 집행유예로 나오게 하는 현실이 지겹다. 그래도 돈을 벌려 한다. 돈을 벌어야 하니깐.


로펌의 대표는 순호를 좋게 본다. 능력도 좋고, 이미지도 좋으니. 마침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것으로 보이는 살인 용의자의 국책 변호 건이 생겼다. 대표는 순호에게 이 일을 잘 맡으면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제안한다.


비닐 봉투를 뒤집어쓰고 죽은 부자 노인. 그를 죽였다고 지목된 사람은 10년 동안 그 노인을 수발한 가정부. 그 광경을 목격한 증인은 자폐가 있는 16살 소녀 지우. 순호는 알사탕을 의뢰비로 주는 가정부의 말을 믿기로 한다.


검사는 지우의 증언을 잘 이끌어냈다. 그 역시 자폐가 있는 동생이 있기에 자폐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순호는 지우의 증언이 무리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자칫 억울할 수 있는 용의자의 결백을 변호하기 위해, 지우에게 다가간다.


쉽지 않다. 지우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도, 지우를 둘러싼 현실의 벽을 넘기도. 더욱이 지우를 둘러싼 현실을 이용해 변호해야 하는 터. 순호는 현실에 더 들어가기 위해 때를 뭍이기로 결심한다. 대학 동기이자 친한 여전히 민변에서 불의에 맞서고 있는 수인에게도, 현실과 타협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순호는 현실을 변호하기로 한다.


하지만 순호는 지우의 세계로 점점 들어가면서 현실이 주는 착각을 알게 된다. 현실이란 명분 아래 가려져 있는 소중한 것들. 표정으로 읽을 수 없는 감정들. 듣지 못해도 분명히 있었던 말들. 순호는 고민한다. 현실을 변호해야 할까, 현실이 주는 착각을 깨야 할까. 영화는 따뜻하게 흘러간다.


이한 감독의 영화는 착하다. '연애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오빠생각' 등등은 착하다. 갈등으로 감정을 일부러 높이지 않는다. 사건으로 사람을 내몰지 않는다. 그저 상황을 놓고 선택하게 만든다. 그는 사람의 선의를 믿는 것 같다. 그의 영화 속에선 악인은 전형적인데 선인은 복잡하다. 악인의 묘사보다 선인의 묘사에 능하다. 그건 이한 감독이 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증인'은 착하다. 주인공은 변호사다. 현실과 싸우다가 현실에 져서 현실을 변호하게 됐다. 그랬던 주인공에게 자신의 세계 속에 사는 소녀를 만나게 한다. 그 소녀는 자신의 세계 속에 살지만,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세계 밖으로 나와 싸우려 한다. 그녀 밖의 세상은 편견으로 가득 찼다. 현실이 주는 착각을, 사실로 믿는다.

이제 주인공은 선택해야 한다. 현실을 변호할지, 현실과 싸워야 하는 소녀를 변호할지. '증인'은 그 선택을 착하게 안내한다.


힘든 세상에 지친 남자가 순수한 소녀를 만나 변화하는 이야기는 흔하다. '증인'도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증인'이 남다른 착함을 갖고 있는 건, 장애 소녀를 그리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한 감독은 장애 소녀를 묘사하는 대신, 지우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관객을 지우의 세계로 같이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이 선한 방식은, 남성 주인공의 각성을 위한 도구로 소녀를 존재하도록 하는 여느 영화들과 다르다. 관객이 같이 지우의 세계로 들어가 공감하고 선택하게 만든다.


순호를 맡은 정우성은 편하다. 그의 얼굴 주름이, 여느 영화들보다 편하게 관객에게 전달된다. 편한 전달은, 감정의 진폭은 크지 않지만 이 영화와 닮았다. 지우를 맡은 김향기는 매우 좋다. 때 묻지 않은 착함이란 게 존재한다면, 아마 '증인'의 김향기와 가장 닮았을 것 같다. 순호의 민변 동료 수인으로 특별출연한 송윤아는 반갑다. 이 좋은 배우를 스크린에서 다시 만난 게 무척 반갑다.


현실은 사실만 놓고 이야기한다는 착각을 준다. 그 착각이 선입견을 낳는다. 그 선입견이 현실을 더욱 차갑게 만든다. '증인'은 현실 속에 있는 다른 사실들을 이야기한다. 그 다른 사실들을 변호한다. 무섭게 짖는 줄 알았던 개는, 알고 보면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것이다. '증인'은 그렇게 변호한다. 착하다. 이 착함은 촉촉한 위로를 준다.


12세 관람가. 2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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