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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문남규 지사, 문창극 조부란 근거없다"

민족문제연구소, "문남규 지사, 문창극 조부란 근거없다"

발행 :

조소현 인턴기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민족문제연구소가 문창극 총리 후보의 주장을 반박했다.


24일 오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독립유공자 문남규 선생의 손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 측에서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저의 가족은 문남규(文南奎), 남녘 남(南)자, 별 규(奎) 자)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만세를 부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가족사를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자랐다. 할아버님이 1921년 평북 삭주에서 항일투쟁 중에 순국하신 것이 밝혀져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분” 이라고 밝힌바 있다. 이어 그는 "문남규 삭주를 검색해 보라"며 적극적으로 본인이 애국지사의 후손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과 문창극 후보의 조부가 동일인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문남규 선생은 1920년 삭주에서 전사한 것으로 판단되며 그 외 출생지 등 인적 사항은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유은호 책임연구원은 “현재 발굴된 사료로는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를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독립단 주00 휘하 소대 대원으로 1920년(민국2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했고 이 같은 내용이 1921년 4월9일자 독립신문에 실려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국가보훈처 발표와 달리 독립신문 기사의 문맥을 볼 때 선생은 1921년이 아니라 1920년에 전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21년 독립신문의 기사는 대한독립단 약력으로 그간의 전공을 정리 소개한 것이며, 당시 여건상 만주나 국내의 항일운동은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실리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가보훈처의 공훈록이나 공적조서에도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나 본적이 미상으로 되어 있는데 갑자기 원적지가 삭주라고 주장하는 보훈처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삭주 전투를 근거로 삼았다면 ‘만주 독립군의 국내진공’이라는 당시 독립전쟁의 일반적인 양상을 무시한 비상식적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설령 문창극 후보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그의 잘못된 가치관과 역사관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의 발언은 독립운동을 부정한 것으로, 선대가 독립운동을 했다면 더욱 언행을 조심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문남규 유공자에 대한 참고자료 /사진제공=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문남규 유공자에 대한 참고자료 /사진제공=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문남규 삭주, 사실이 뭐야?", "문남규 삭주, 나도 검색해 봐야겠다.", "문남규 선생이 삭주에서 전사했구나.", "문남규 삭주, 실제 애국지사인 것은 맞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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