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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4일 지병으로 별세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4일 지병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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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 기자
4일 오전 별세한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사진=뉴스1
4일 오전 별세한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사진=뉴스1


5선 국회의원이자 민주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향년 77세의 나이로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뉴스1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박성천 상임고문은 그 동안 지병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이날 오전 11시 숨을 거뒀다.


전남 고흥 출신인 박상천 고문은 서울법대 재학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20년간 판·검사 생활을 지냈다. 그러다 지난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에 입문했다.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 때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아 활약했다.


정계에 입문한 뒤 야당 대변인을 거쳐 여야 원내총무 3차례, 국민의 정부 초대 법무장관, 새천년민주당 및 민주당 대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치며 야권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인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라이벌이자 절친이었던 박희태 당시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담판을 벌여 이회창-김대중 후보간 TV토론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박상천 고문은 13대~16대까지 내리 4선에 당선되며 정치적 절정기를 달렸다. 의원 재임 시절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 등 굵직굵직한 입법을 주도해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 분당 사태 때 '정통모임'을 만들어 사수파 수장으로서 역할을 했고, 분당 후엔 대표직을 승계해 어지러운 당 상황을 수습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선 개혁공천을 선언한 '추미애 선대위'로부터 인적 쇄신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 공천이 취소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출마했지만, 열린우리당 후보였던 신중식 전 의원과 옥중출마했던 박주선 의원간 치열한 3파전 끝에 결국 낙선했다.


그러다 2007년 4월 군소 정당이었던 민주당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하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고, 2007년 대선 패배 후 이뤄진 야권 통합의 한 축을 이루며 18대 총선에서 원내 복귀에 성공해 5선 고지에 올랐다. 19대 총선을 앞두고선 정계은퇴를 선언, 후배 정치인에게 길을 열어줘 귀감이 됐다.


박상천 전 대표는 직선적인 어투에 논리력이 탁월하며, 불 같은 성격이지만 호불호가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루 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이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김금자(65)씨와 1남 2녀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이며, 발인은 6일이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 가족추모공원(02-2258-594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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