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3월11일. TV 뉴스마다 일본 동북부 해안을 뒤덮은 쓰나미를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16m가 넘는, 그야말로 집채만한 파도 더미. 9.11테러 영상을 볼 때처럼 미디어가 전하는 충격이 그대로 안방까지 전해졌다.
그날 방송사들은 일본 지진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기사들을 쏟아냈다. 그 중 눈에 거슬리는 건 이제 다시 싹트고 있는 한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뉴스였다. 일면은 맞는 말이었다. 냉각기에 빠졌던 일본 내 한류가 K팝스타들로 다시 달궈지기 시작할 즈음이었으니.
하지만 옆집에 불이 났는데 이웃 걱정보단 우리 집에 불통 튈까만 걱정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싶었다. 전화기를 들었다. 배용준 최지우 장동건 이병헌 권상우 원빈 류시원 등 대표적인 한류스타 매니저 10여명과 통화를 했다.
일본 대지진 피해를 돕는데 한류스타들이 앞장선다는 취지를 전하고 싶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한류스타들은 힘을 모으자는 뜻에 공감했다. 아니 그들은 이미 할 생각이었고, 기자는 그 뜻을 모아서 알리기만 했다. 조용히 돕겠다는 한류스타들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래도 기자는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는 뜻을 알게 되면 작은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배용준을 시작으로 한류스타들이 속속 성금 기탁 소식을 알렸다. 단순히 성금만 전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도 대서특필했다. 한국에 악의적인 글을 올리는 일본 사이트에선 배용준이 일본 대기업에서 내놓는 것보다 더 많은 기부를 했다고 한탄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1년이 흘렀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때마침 한 방송사에선 일본 우익들이 김태희가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캠페인을 했다며 퇴출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다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일본은 대지진으로 망해야 한다며 일본어로 더듬거리는 한국인의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소개됐다.
어디나 바보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때론 꼬리가 몸통을 흔들기도 한다.
한류는 어느날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게 아니다.
장나라의 아버지인 주호성은 일찌감치 딸과 함께 중국대륙을 돌아다녔다. 주호성을 비롯한 한류 1세대는 맨 땅에 헤딩하며 한류를 일궜다. '겨울연가' '대장금' 같은 드라마를 통해 퍼진 한류와는 달리 K팝 1세대는 별의별 고생을 다했다. 비가 중국에서 처음 공연을 했을 땐 공연장에 공안들이 가득했다. 소녀팬들이 일어나 함성을 지르면 앉으라고 소리쳤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끌어내곤 했다.
장나라는 골든디스크 시상식에 상을 받으러 갔다가 고위간부가 비가 온다고 행사를 접자고 해서 상장만 달랑 받고 온 적도 있다. 지금이야 달라졌지만 초창기 K팝 가수가 중국에서 쇼케이스를 할 때는 기자들은 가득한데 현지에서 기사가 전혀 안 나오는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중국에선 취재협조비를 제공하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가짜 기자들이 잔뜩 와서 돈만 받아가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현지 유력 매체들을 사전에 찾아가 인사를 한 뒤에야 진짜 기자들이 오곤 했다.
일본은 또 달랐다. K팝 초창기는 재일동포들이 주로 찾아 망향을 달랬다. 그랬던 것이 점차 주류 매체의 눈길을 끈 건 일본 연예계의 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돌이 돈을 버는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 그러나 일본 연예계는 활력이 넘쳤던 90년대와 달리 2000년대 중반 들어 크게 성공한 아이돌이 점차 줄었다.
일본 연예계는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한국 아이돌을 대거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K팝 가수들이 현지 기획사와 계약을 맺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노력해 한류를 일군 건 돈이 되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 결과 한국문화를 알리는 효과를 냈다. 그 다음은 어떻게 이걸 유지해야 하느냐다.
주호성은 "문화는 소통해야 더 발전하는 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류가 비즈니스를 넘어 문화로 일궈지기 위해선 마음을 나눠야 한다고 했다.
K팝 열기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로 번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나 있는 바보들은 그 틈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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