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은 2014 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 일이었습니다. 수험생 여러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날은 TV도, 인터넷도 온통 '수능' 관련 얘기들로 넘쳐났습니다. 대입시험을 '국가대사'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무심하게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던 기자는 눈에 띄는 게시물 하나를 보게 됐습니다. 게시물의 제목은 '김창렬 수능 레전드'였죠. 늦은 나이에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한 그를 통해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글일까, 라고 생각했지만 클릭하고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수능시험장에 들어가는 가수 김창렬의 사진과 함께 한 숙취해소음료 광고 사진이 올라있더군요. 이를 올린 게시자는 사진 밑에 '음주수능 ㅋㅋ'라고 적었습니다.
게시물에 달린 댓들 대다수는 "ㅋㅋㅋ"였습니다. 추측컨대, 수능과 상관없이 전날 '한잔'한 김창렬이 쓰린 속을 부여답고 숙취해소음료를 들고 시험장에 들어가는구나, 뭐 이런 네티즌들의 생각이 엿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그 숙취해소음료(사진)의 비밀입니다. 사실 그 음료는 제가 준 겁니다. 물론 그 전날 술을 마신 것도 저였습니다.
김창렬은 2010년에 고졸검정시험을 비롯해 대입수능시험까지 공부로 한해를 보냈습니다. DJ DOC 활동으로 국내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그가 서른일곱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왜 공부의 길을 택했을까요? 대학졸업장이 필요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들 주환이 때문이었죠. "아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는 게 그가 늦은 나이에 공부의 길을 택한 이유입니다. 아들에게 대학졸업장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아빠 열심히 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검정고시를 보고 대입수능을 봤습니다. 기자는 그 길 곁에서 쭉 취재를 하고 있었지요. 수능시험 당일 시험장에 나타난 그는 정말 '멋진 아빠'였지요. 시험장에 들어서는 그를 응원하기 위해 건넨 것이 그 숙취해소음료였습니다. '파이팅'하라는 의미에서 뭔가를 건네고 싶었는데 시험장이 있던 잠실의 중학교 주변은 온통 아파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나올 때 전날의 숙취를 위해 사서주머니에 넣어뒀던 음료를 꺼내 건넨 거죠.
사실 당시에도 이 사진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쿨'한 성격의 김창렬은 굳이 해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지만 기자의 마음은 지금 이 기사를 쓰는 순간까지 미안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이렇게 그날 숙취해소음료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창렬이형 미안합니다.
김창렬은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성적도 훌륭합니다. '멋진 아빠'가 된 것은 물론이죠. 아들 주환이도 쑥쑥 잘 자라고 있습니다.
p.s.수험생 여러분, 수능 다음 날의 마음은 다들 착잡할 겁니다. 어디선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요. 저는 1997년에 수능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치렀지요. 만족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지요. 성적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재수, 삼수 쉽지 않습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원하는 대학'만 있었을 뿐 10년, 20년 후 원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꿈'이 없었던 것이지요.
'등급컷' 때문에 다들 걱정인 것 같더군요. 1~2문제로 등급이 바뀔 수 있으니, 아마 마음이 타들어갈 겁니다. 수험생 여러분 그러나 '인생등급의 컷'은 없습니다. 김창렬을 보십쇼. '꿈'이 생기면 37세가 아니라 47세, 57, 67세에도 도전하면 됩니다. 점수 1~2점이 지금은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지겠지만 지나놓고 보면 인생 전체에서 그리 큰 부분도 아닙니다. '원하는 대학'만 꿈꾸지 마시고 '이루고자 하는 꿈'을 정하고, 도전하십시오.
문완식 기자 munwansi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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