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의드불패'라고 한다. 의학드라마라는 장르는 어느 정도의 흥행을 담보한다는 얘기다. 한국 1세대 의학드라마로 꼽히는 MBC '종합병원'이 1994년 대히트를 친 이후 등장한 여러 의학드라마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드라마틱한 공간,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치열한 현장에서 벌어지는 치유와 갈등, 사랑의 이야기가 기본적인 흡인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MBC 수목드라마 '메디컬탑팀'이 시청률 3%의 굴욕을 맛봤다. '의드불패'는 깨졌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6일 방송된 '메디컬탑팀'은 4.4%의 전국일일시청률을 기록했다. 다음날인 7일엔 3.8%까지 추락했다. 톱스타들이 출연한 지상파 수목드라마로서 재앙이나 다름없는 시청률이다. 동시간대 '비밀'과 '상속자들'이 10% 중후반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 처참하다.
'메디컬탑팀'의 소재는 일견 흥미롭다. 키워드는 '협진'이다. 드라마는 제목처럼 국내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각 분야 전문가가 뭉친 의료협진 드림팀 '탑팀'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담는다. 응급실, 외과, 산부인과 등 병원의 각 과를 돌려가며 다뤘던 과거 의드를 딛고 도약할 수 있었다. 현란한 의료용어로 인체를 훑으며 기적에 가까운 진료와 치료로 짜릿함을 안길 수도 있었다. '골든타임'에도 등장했던 각 분야 의사들의 담당 떠넘기기 등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정반대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법도 했다. 그러나 결과가 이렇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VVIP환자에게 프리미엄 진료를 제공하는 '탑팀'은 출발부터 반감을 살 수 있는 이야기"라며 "우리나라 사람은 이런 거 안 좋아한다"고 일갈했다. 제작진에게도 이에 대한 대안이 있었다. '메디컬탑팀'은 의료 앞에서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상주의자 박태신(권상우 분)과 능력에 따라 차별화된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다른 이들의 대립을 통해 의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묻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9회가 방송된 현재까지 이같은 의도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모습이다.
천재적 실력과 인간미를 동시에 지닌 완벽한 주인공 박태신은 아이러니하게도 '탑팀'의 이상과 현실 모두를 부정하는 캐릭터가 됐다. 협업보다 감을 믿는 독단으로 '탑팀' 시스템을 깨뜨리고, 만인에게 열린 '탑팀'을 주장하면서 리얼리티를 깨뜨린다. 인적 구성만으로도 엄청난 돈이 드는 '탑팀'이 민간 의료기구에서 만들어진다면 과연 어떤 사람을 치료하게 될 것인가. 답은 결코 어렵지 않다. 수많은 의학드라마가 조명한 의료 현실을 간접 경험한 시청자들도 박태신만큼 순진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박태신 외의 의사 캐릭터도 그들이 치료하는 생소한 병명만큼이나 실감이 안 난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폐아 의사를 등장시켰던, 착한 의드 판타지를 시도한 '굿닥터'(2013)보다도 더 그렇다. 뜻밖의 감정선이나 논리, 직책에 비해 젊은 나이는 물론이요, 어느 순간에도 흐트러짐 없는 세팅머리와 투명한 미모까지 극의 리얼리티를 틈틈이 잡아먹는다. 물론 모든 종합병원 의사들이 비주얼을 포기하고 살아가지는 않겠으나, 사흘은 못 잔 듯 한 얼굴로 응급실을 누비던 '골든타임'(2012)의 최인혁 선생과 이민우 선생이 절로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의학드라마의 재미는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다. 긴장 백배의 긴박한 수술실이 매력적일 수도 있고, 출세 지향형 의사들이 벌이는 병원 내 정치를 감상해도 된다. 하다못해 병원에서 연애하는 얘기도 괜찮다. '메디컬탑팀'은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끌어안았으나 어느 하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불행히도 수술의 긴박감은 '골든타임'에 미치지 못하고, 병원 내 암투는 '브레인'(2011), '하얀거탑'(2007)에 미치지 못한다. 병원에서의 연애질도 '대학병원'(1994) 이후 나아진 게 없다. 더욱이 경쟁 드라마 '비밀'과 '상속자들'의 쫄깃한 로맨스와 상대하기가 역부족이다. '메디컬탑팀'은 이제 출생의 비밀, 악녀의 과거 같은 떡밥까지 투척하고 살 길을 찾는 중. 절반이 남은 드라마를 포기하긴 이르다. '메디컬탑팀'은 과연 어디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김현록 기자 ro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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