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상반기 방송가, 그 시작은 화려했으나 강력한 외풍을 버텨내지는 못했다.
2014년, KBS, MBC, SBS 지상파 방송 3사는 '왕가네 전성시대', '기황후', '별에서 온 그대' 등 각기 주말, 월화, 수목을 대표하는 히트 드라마와 함께 한 해를 맞았다. 시청률도, 화제성도 최상이었다. 각 방송사의 히트 드라마들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향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했고, 방송가는 그렇게 행복한 2014년을 보낼 뻔 했다.
그러나 연이어 터져 나온 대형 이슈들 속에서 방송가 역시 휘청거려야 했다. 세 히트 드라마의 뒤를 잇는 성공작이 좀처럼 나오지 않으면서 전반적인 TV 시청률도 하락을 거듭했다. 2014의 상반기 방송가는 그렇게 반환점을 향해 가고 있다.
가장 큰 사건은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고교생 등 300여 희생자,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총체적 난국, 핵심 선원들의 나홀로 탈출…. 국민을 슬픔과 참담함, 그리고 분노로 몰아넣은 최악의 해상참사였다.
충격적이고도 비극적인 대형 사고는 즉각 방송가에 여파가 미쳤다. 주요 방송사들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특보 체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탑승객 전원 구조'라는 초대형 오보, 부적절한 인터뷰와 뉴스 꼭지 등은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드라마와 예능은 애도 속에 결방 사태를 맞았다. 결방 기간은 방송사마다, 프로그램이며 장르마다 달랐다. 방송이 비극을 애도해야 하느냐, 슬픔에 빠진 이들을 시청자를 치유해야 하느냐를 두고 시청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사고 초기에는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처럼 1달 넘게 주요 예능 이 결방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러나 침몰사고 2주도 되지 않아 슬금슬금 주요 예능과 드라마가 방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월호 이외 모든 이슈가 증발하다시피 하며 웃음마저 앗아간 터, 방송을 재개한 프로그램들도 이전의 인기와 화제성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시기 새로 방송을 시작한 프라임 타임 드라마들은 약속이나 한 듯 10% 언저리 시청률에 머물렀다. 예능 프로그램 또한 편집 수위 등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고, 방송가 전반의 분위기는 끝없이 가라앉았다.
이 와중에 KBS로 가장 큰 불똥이 튀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이 된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이 사의를 표명하며 KBS 길환영 사장의 보도 개입을 폭로한 탓이다. 당장 양대 노조는 외압 당사자인 길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KBS의 2개 노조가 동시 파업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최초였다. 이는 즉각 방송에 영향을 미쳤다. 음악 프로그램 '뮤직뱅크'는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무려 8주간 결방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진통 끝에 길환영 사장은 지난 10일 결국 해임됐다.
세월호 또 세월호로 이어지던 애도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은 4년마다 돌아오는 세계인의 축구 축제 월드컵이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방송사는 저마다 톱 해설진 영입 경쟁을 벌이며 칼을 갈아온 터. KBS의 이영표 김남일, MBC의 안정환 송종국, SBS의 차두리 등 2002년 한일월드컵의 주역들이 마침 각 방송사 해설에 참여하며 중계 경쟁에 불을 붙였다.
방송사들은 예능과 스포츠의 콜라보레이션까지 적극적으로 동원해 가며 자사 해설진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MBC '무한도전'과 '아빠 어디가', SBS '힐링캠프', KBS '우리동네 예체능' 등 예능 프로그램은 게스트까지 동원해 러시아로 원정 응원을 떠나며 월드컵 이슈 몰이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내심 월드컵 대박을 기대하던 방송사들은 또 한 번 휘청이고 말았다. 월드컵 개막 직전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대표팀이 0대4로 패하며 월드컵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시기가 시기인 지라, 실망스런 대표팀의 평가전 성적은 방송사의 월드컵 광고 판매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월드컵 H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러시아와 1대1로 비기며 16강 진출의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2번째 경기 알제리와의 대결에서는 2대4로 패해 자력 16강이 어렵게 됐다. 마침 가장 만만한 상대로 여겨졌던 알제리와의 대결에 맞춰 브라질 원정 응원까지 펼친 주요 예능 프로그램들은 상황이 머쓱하게 됐다.
더욱이 광고 판매 부진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은 손실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여 걱정이 더 크다. 브라질 월드컵 중계권; 7500만 달러(약 765억 원)에 사들인 SBS는 이를 KBS, MBC에 되팔았다. 각기 4 3:3(KBS:MBC:SBS) 비율이다. 그러나 SBS가 단독 중계했던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비해서도 광고 판매가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국 드라마국 고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는 유난히 방송 외적 대형 이슈가 많았다"며 "특히 세월호 참사는 방송가는 물론 연예계 전반의 분위기를 완전히 집어삼켜 화제작들이 나오지 않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했다. 한 예능 PD는 "세월호 월드컵만 방송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며 "지방선거 당시 논란으로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김정태씨가 하차하고, GOP 탈영병 총기 난사로 '진짜 사나이'의 촬영이 취소됐다. 사회 이슈, 인터넷 여론이 시시각각 방송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김현록 기자ro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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