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과 '돼지'가 말하는 韓애니 진짜 문제는?

부산=전형화 기자 / 입력 : 2011.10.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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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4시30분 부산 영화의 전당 두레라움 광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전망'이란 주제로 아주담담이 열렸다. 조영각 프로듀서와 김선구 프로듀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과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왼쪽부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기범 기자.


올 여름 '마당을 나온 암탉'의 흥행성공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일대 사건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200만명이란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랐다.

정병국 당시 문화부 장관이 관람하고 애니메이션 지원을 약속하고, 국회에서 애니메이션 진흥법을 논의한다는 등 암탉의 날개 짓에 당장 애니메이션 바람이 이는 듯 했다. 저 마다 애니메이션의 미래와 전망을 현업에서 뛰는 양 어설프고 자신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일까?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에 대한 진짜 답들이 오갔다. 11일 오후4시30분 부산 영화의 전당 두레라움 광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전망'이란 주제로 아주담담이 열렸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과 김선구 프로듀서,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과 조영각 프로듀서가 참여했다. 11월3일 개봉하는 '돼지의 왕'은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중학교 친구를 찾아가면서 15년 전 사건을 파헤치는 스릴러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관객들의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오돌또기와 영화제작사 명필름, 그리고 롯데엔터테인먼트과 결합해 30억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반면 '돼지의 왕'은 연상호 감독이 1억5000만원의 돈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구도와 닮았다.


이들이 말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진짜 문제와 미래를 옮긴다.

#애니메이션? 성공 모델이 없잖아!..투자가 안된다

200만 관객을 불러 모았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은 초기부터 투자가 쉽지 않았다. 콘텐츠진흥원과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이 지원했지만 돈을 모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명필름이 이쪽저쪽을 뛰어다녔지만 투자받기가 어려웠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국내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당을 나온 암탉'은 '우생순' 등을 제작한 명필름과 손을 잡았다.

오성윤 감독은 "국내 애니메이터들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방법은 아는데 그걸 영화로 만들고 배급하고 마케팅하는 방법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김선구 프로듀서는 "'아치와 씨팍' '원더풀 데이즈' 등이 그런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마당을 나온 암탉'은 기획부터 유명 제작사인 명필름과 함께 해 시나리오와 제작, 배급,마케팅까지 노하우를 교류했다"고 설명했다.

장편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상영되면 상업영화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노하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성공했다.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은 생각이 좀 달랐다. 연 감독은 "'암탉'도 투자가 쉽지 않을 걸 보고 다 안되는구나, 그럼 나 혼자 해보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영화를 찍는 방식으로 '돼지의 왕'을 완성했다. 애니메이션도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처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작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협업이 필수인 만큼 '돼지의 왕'은 애니메이션 대학과 산학협동을 체결하는 게 필수였다. 조영각 프로듀서는 "마침 독립영화 '반두비'를 지원한 KT&G 상상마당에서 1억원 정도 지원할 수 있다고 해서 1억 5000만원에 만들었다"며 "사실 이런 돈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김선구 프로듀서도 "사실 장편 애니메이션을 30억원에 만들 수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뿐"이라고 개탄했다.

#애니메이션? 애들이 보는 거잖아..배급이 안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대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200개가 넘는 스크린에 걸렸다. 그동안 한국 애니메이션은 극장 상황은 다르지만 '원더풀 데이즈'가 98개 스크린에서, '아치와 씨팍'이 104개 스크린에서 처음 선보였다. '암탉'이 처음으로 2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된 건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힘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암탉' 역시 저녁 시간대에는 상영되지 못했다. 오성윤 감독은 "오후 시간대는 아예 걸리지 않아서 '암탉'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었다"고 말했다.

김선구 프로듀서는 "'암탉'에 앞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같은 경우는 관객 타켓이 10대에서 20대였다. 그런데 아침에만 걸다보니 정작 보고싶은 사람은 학교에 안가거나 극장에 안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거기에 대형 블록버스터들에 밀리는 힘없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상황도 한 몫했다. '소중한 날의 꿈'은 당초 100개 스크린에서 시작했다가 '트랜스포머3'가 개봉하면서 한 주만에 16개로 스크린이 줄었다. 설 수 있는 자리조차 안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과 흥행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뽀로로'처럼 유아용이란 편견이 강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도 가족용이었다. 때문에 '돼지의 왕'처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작정하고 만든 작품은 더욱 외면받기 쉬운 현실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워낭소리' 이후 1억원 남짓한 제작비로 만들어진 '똥파리' '혜화,동' '무산일기' 등 독립영화들이 소규모로 개봉해 10만명 안팎의 관객을 모으는 등 독립영화 시장이 점차 생기고 있다.

'돼지의 왕' 역시 독립영화 방식으로 개봉한다. 연상호 감독은 "20개 남짓한 스크린에서 개봉할 것 같다"며 "'암탉'과는 다른 방식이다.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만큼 다른 방식으로 관객에게 선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돼지의 왕'이 '똥파리' 같은 독립영화처럼 좋은 성과를 낸다면 독립 애니메이션에게도 좋은 바람이 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원은 있다! 제대로 못할 뿐

한국 애니메이션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사실 지원책은 다양하게 실시되고 있다. 금액도 적지 않다.

다만 애니메이션을 영화의 일환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산업의 일환으로 보고 접근하는 게 문제다. 당초 애니메이션 지원은 영화진흥위원회에 실시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육성하겠다며 현재는 콘텐츠진흥원에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애니메이션의 기초를 탄탄하게 하기보다 글로벌 프로젝트 등 산업에 초점을 맞춰서 지원한다.

조영각 프로듀서는 "독립영화 지원처럼 1,2억원 정도만 지원해도 여러 애니메이션이 탄생할 수 있다. 그런데 접근을 산업적으로 하다보니 심형래 감독의 '추억의 붕어빵'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10억원이 넘게 쏟아 붇는다. 결국 결과물도 없지 않나"고 말했다.

오성윤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이 작다보니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캐릭터를 팔기 위한 작품 등을 지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국내시장에서 잘 돼야 해외로 가지 않겠냐. 당연히 국내시장에서 잘 되려면 한국적인 소재와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글로벌 프로젝트는 심사를 미국 프로듀서가 한다. 그들에게 맞냐,안맞냐며. 그러다보니 돈만 쏟아 붇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볼 수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성윤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선 영화진흥원처럼 애니메이션 진흥원을 만들어 세심하게 접근하거나 아니면 과거처럼 영화진흥원에서 담당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 애니메이션을 부흥시키기 위해선 독립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으로 기초를 탄탄하게 하고, 원활한 배급을 돕고, 글로벌 프로젝트 같은 산업적인 접근보다 영화처럼 좋은 이야기에 대한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을 위해 여러 국가기관에서 다양한 정책과 돈을 들이고 있다.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이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연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은 단지 투자나 배급, 이런 부분만 없는 게 아니다. 하다못해 평론도 없다. 보다 세심하게 지원을 해야 한다. 지원하자고 갑자기 뚝딱 만들어낸 정책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비교되는 '마당을 나온 암탉'과 '돼지의 왕' 팀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문제와 미래에 대해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어려운 현실과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그래도 희망은 결코 잃지 않았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에서 오성윤 감독이 술에 취해서 '우리 한 번 잘 해보자'고 하더라"며 "정말 공감하지만 갈 길은 서로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연 감독은 "애니메이션 역시 다른 대중문화처럼 하나의 성공 모델은 없다. 각자 영역에서 노력을 해서 붐업을 일으키면 된다. 제대로 된 정책과 지원이 뒷받침되면 더욱 좋고"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성공했다고 모두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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