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빵과 은촛대 따위는 잊어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12.12 14:37
  • 글자크기조절
image
'레미제라블' 스틸


조카를 위한 훔친 빵 때문에 19년을 복역하고, 가석방된 후 성당의 은접시를 훔쳤다 잡히고, 그런데도 신부는 "내가 선물한 것인데, 은촛대는 왜 안 가져갔냐?"며 인정을 베풀고.. 맞다. 태어나서 수백 번은 들어봤을 장발장 이야기다. 그러나 진정 장발장 이야기는 동화 같은 내용, 이게 다인가?

오는 19일 개봉하는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단호히 이렇게 답했다. "빵과 은촛대 따위는 잊어라. 진절머리 나는 19세기 초 혼돈의 프랑스에서, 가난과 굶주림밖엔 가진 것 없던 프랑스 민중의 궁핍한 삶과 그러면서도 순수하고 도도했던 정신을 탐미하라. 그리고 찬양하라, 장발장의 찬란한 도덕률과 결국은 세상을 바꾼 민중의 위대한 힘을!"


'레미제라블'은 진작 소문난 뮤지컬 영화답게 이 복잡다단한 '장발장' 스토리를 유명 뮤지컬 넘버로 꽉 채웠다. 클로즈업으로 잡은 장발장(휴 잭맨), 판틴(앤 해서웨이),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 자베르(러셀 크로) 등이 쏟아내는, 때로는 한없이 가녀리고 때로는 비할 데 없이 힘찬 뮤지컬 넘버들의 158분짜리 성찬. 여관주인 테나르디에 부부(사챠 바론 코헨, 헬레나 본햄 카터)는 입맛 헹구는 코믹 디저트, 1832년 파리 소요사태에 합류한 꼬마 가브로슈(다니엘 허틀스톤)는 이 성찬을 빛낸 환한 촛불이라 할 만 했다.

영화는 1815년 비 마구 쏟아지는 대낮, 커다한 목선을 죄수들이 인양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난 무대 위 여느 뮤지컬과는 달라"를 아예 처음부터 과시하려는 듯 예상을 뛰어넘는 스펙터클의 습격! 죄수 장발장, 감독관 자베르 등이 부르는 첫 넘버가 바로 그 유명한 프롤로그 합창 'Work Song'이다. '마주보지 말라, 이곳은 우리의 무덤' 같은 대사는 '레미제라블'이 태생적 비극이자 거대 서사시임을 시작부터 웅변했다.

강철 같은 '엑스맨' 휴 잭맨이 손발 오그라들게 뮤지컬 노래를? 조금이라도 의심이 든다면 이어지는 그의 솔로곡 'Valjean Arrested, Valjean Forgiven'으로 푸시라. 사전 녹음이 아니라 현장 촬영 때 라이브로 불렀다는 영화 예고편 그대로, 휴 잭맨은 은접시를 훔쳤다 잡히고 다시 풀려나는 격동과 좌절과 회한의 장발장을 제대로 '노래했다'. 후속 'What Have I Done?' 역시 휴 잭맨의 테너 음색이 돋보이는 명곡.


배우들의 놀라운 가창은 공장에서 일하다 결국은 어린 딸 코제트를 위해 몸을 팔게 된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에서 완성됐다. 공장에서 쫓겨난 판틴이 그래도 괜찮았던 지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부른 'I Dreamed a Dream'은 앤 해서웨이를 그저 얼굴 예쁜 배우로 알았던 관객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일 터. 그녀의 딸 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 코제트를 사랑하게 된 열혈 혁명청년 마리우스 역의 에디 레드메인, 이런 마리우스를 짝사랑한 처녀 에포닌 역의 사만다 바크스까지 '레미제라블' 출연배우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황홀한 가창의 세계를 관객에 선사한다.

하지만 역시 이 뮤지컬영화의 압권은 희망 없는 프랑스 민중의 구질구질한 삶과 그래도 새 희망을 갈급하는 그들의 속내를 그린 노래들이었다. 특히 꼬마 가브로슈가 비교할 데 없는 음색으로 열창한 'The Beggars'는 거지와 도둑, 창녀 등이 들끓었던 당시 파리의 참상을 '그림처럼' 그려냈다. 멜로디는 영화 처음 나왔던 'Work Song'에서 따왔다. 이 꼬마와 파리 소요 사태를 이끌었던 젊은 청년들이 함께 부른 혁명가 'Do You Hear They Sing'은 이 영화 최고의 넘버. 친숙한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멜로디를 빌린 이 노래는 영화 마지막 'Finale'에서 또 반복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이 힘찬 합창곡 'Finale'를 통해 개인 장발장을 한참 뛰어넘은 거룩한 장발장 영화가 됐다.

맞다. 뮤지컬 영화는 '레미제라블'처럼 만드는 게 정답이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