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1970' 깃털처럼 가볍게 다룬 죽음들..通할까

[리뷰] 강남1970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1.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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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의 '강남 1970'은 원래 2014년에 개봉하려 했다. 해를 넘겨 1월에 선을 보인 이 영화는 그래서 그런지, 2014년 많은 한국영화들의 어떤 경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바로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다. 똑딱이 단추마냥 힘을 주되 단순하고, 후드득 뜯어지듯 가볍다. 깃털처럼 가볍게 다뤄지는 죽음은 '강남 1970'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강남 1970'은 유하 감독이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에 이어 내놓은 거리 3부작 마지막편이라고 홍보된 영화. 한류스타 이민호와 김래원이 주인공을 맡았기에 해외팬들의 관심까지 뜨거웠다. 13일 기자시사회에는 기자를 사칭하고 들어오는 팬들을 가리기 위해 프레스 스티커까지 나눠줘야 했다.

'강남 1970'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부모도 모른 채 고아원에서 자란 두 남자가 서울 강남 개발 한복판에 뛰어들면서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는 넝마주이다. 쓰레기를 주워 팔아 입에 풀칠할 꺼리를 찾는다. 무허가촌에서 살다 재개발로 쫓겨난 둘은 야당 정당대회를 방해하려는 정치깡패들에 동원돼 서울로 올라간다.

한바탕 싸우다 버스를 잘못 타서 헤어진 두 남자는 3년 동안 각자의 길을 걷는다. 종대는 시골 카바레 뒤를 봐주는 깡패로, 용기는 서울 명동을 주무르는 깡패 밑에서 살아남는다. 종대는 깡패에서 은퇴해 세탁소를 운영하는 길수와 살며 처음 가족이라는 걸 느낀다. 용기는 두목의 여자와 몰래 사랑을 나누면서 거칠게 산다.


종대는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며 강남 개발을 노리는 정치인 뒤를 봐주는 깡패로, 용기도 강남 개발로 선거자금을 모으려는 또 다른 정치인 밑에서 야심을 키운다. 마침내 만난 두 남자는 서울 강남을 자기들 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욕망을 꿈꾼다. 그렇게 둘은 욕망이라는 열차에 올라탄다.

유하 감독은 1970년대를 폭력의 시대라고 본 듯하다. 목숨 걸고 탱크 타고 한강다리를 건넌 군인들부터 그 꽁무니를 쫓으며 먹잇감을 탐하는 깡패들, 그리고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남편까지, 폭력이 일상까지 파고든 시대라고 본 듯하다. 그럼에도 '강남 1970'에서 죽음은 지나칠 정도로 가볍게 다뤄진다.

죽음은 하나의 세계가 소멸하는 것이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에서 죽음은 그래서 극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짧은 시간 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깃털처럼 죽음을 가볍게 다룬다면 깃털처럼 가벼운 영화여야 한다.

'강남 1970'은 무거운 영화다. 폭력과 욕망이 춤춘다. 이 영화에서 시작부터 등장하는 죽음은 또 다른 죽음을 낳고, 또 다른 죽음은 또 다른 죽음을 낳는다. 죽고 죽이고 죽고 죽인다. '강남 1970'은 죽음의 나선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관을 땅에 묻는 장면에서 떼죽음이 벌어지는 건 차라리 상징적이다. 그 뒤에 벌어지는 죽음과 죽음들도 마찬가지다.

깃털처럼 쉽게 사라질 생명이 영화 속에서 뿌리를 내릴 수는 없다. 수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인물들은 가볍거나 악다구니를 쓰거나 칼을 휘두르거나 죽는다. 주인공 둘만 태산처럼 무겁다. 두 사람 역시 죽음의 나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쯤은 영화 속에서나 영화 밖에서나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강남 1970'은 잔뜩 멋을 부린다. 종대가 순수함을 버리고 비열한 세상으로 뛰어드는 걸 교차 편집한 장면은 '대부'와 닮았다. 이발하다가 암살당하는 장면은 오마주라 치자. 좁은 거리를 질주하는 두 청춘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연상시킨다. 도끼 들고 떼로 싸우는 모습은 '갱스 오브 뉴욕'이 떠오른다. 개발과 폭력의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니 닮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눈은 끌지언정 마음이 따라가진 않는다.

종대와 용기 역할을 맡은 이민호와 김래원은 멋스럽다. 이민호는 '말죽거리 잔혹사' 권상우, '비열한 거리' 조인성을 잇는 유하의 남자다. 살을 쭉 빼고 돌아온 김래원은 찰진 악역을 잘 맡았다. 두 남자는 확실하게 눈을 끈다. 마음까지는 잘 따라가진 않는다. 죽고 죽이는 나선 위에서 욕망의 열차를 탔지만 깃털처럼 가볍게 다뤄진 탓이다.

2014년 많은 한국영화들은 죽음을 가볍게 다뤘다. 깃털처럼 죽음을 가볍게 다룬 무거운 영화들이었다. 대다수가 관객에게 외면 받았다. 깊은 바다로 허망하게 사라진 많은 죽음이 갖고 있는 무게를, 영화가 따라가지 못한 탓이 크다.

2015년 '강남 1970'은 과연 어떤 선택을 받게 될지, 1월21일 개봉한다.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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