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이준익 감독 "오래된 밀린 숙제 해낸 기분"(인터뷰②)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2.0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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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 / 사진=이기범 기자


<(인터뷰①)에서 계속>

-늘 윤동주의 얼굴에 빛이 쏟아지는 느낌인데.


▶의도가 있고 우연이 있다. 대표적인 우연이 전차신이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사랑스런 추억' 중)하는 중에 동주의 얼굴에 빛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위가 뚫린 전철차가 이동하는데 빛이 다행히 얼굴에 맞춰져 우연히 포착됐다. 자연이 도와준 행운이다. 다른 장면에서는 휴대전화 플래시로 얼굴 조명을 대신하기도 했다. 흑백이라 차이가 없어 그것만으로도 효과가 났다. 진짜다. 저예산의 장점이기도 하다. (웃음) 일부러 윤동주의 얼굴에 빛을 비춰 콘트라스트를 준 것도 맞다. 특히 취조실 신에서는 윤동주는 빛을 얼굴로 받고 일본 고등형사는 역광을 받아 위압적으로 보이게 의도했다.

-넓은 화면비를 선택해 트인 느낌을 준다. 구식 TV를 보는 느낌에서도 벗어났고.

▶2.35대1을 선택했다. 흑백이라 가뜩이나 컬러에 비해 화면이 단촐하고 왜소해 보이지 않나. 그래서 넓은 화면으로 영화다운 포만감을 주려 했다. 답답하지 않도록. 화면비를 살릴 수 있는 풀샷은 별로, 아니 한 군데도 없는데 그건 '왜'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 시대 도쿄 용정 경성을 어디서 풀로 담겠나. 그러려면 제작비가 수백억 드니까.(웃음)


-이런 시대극을 5억 원으로 찍었다는 게 놀랍다.

▶저렴한 감독의 독보적 행보라 할 수 있다. 내가 가성비로 따지면 하이브리드 저리 가라다. 자부심이 있다. (웃음) '사도'가 '동주'에 비해서는 대작이지만 순제작비가 65억이었다. 스타들이 나오는 사극 치고는 제작비가 낮다. 제작자 출신 감독이란 이력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제작할 시절에도 제작비를 넘긴 적은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원가 개념이 없으면 실패를 했을 때 복구하기가 힘들다. 항상 실패를 염두에 둬야 한다.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것으로 인하여 다음 작품을 못 찍지는 일이 없도록 최소한의 원가개념이 있어야 한다. 내 기준에선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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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 / 사진=이기범 기자


-왜 지금 윤동주인가.

▶윤동주를 떠올린 건 4년 전 일본 도시샤 대학에 있는 윤동주 시비를 봤을 때다. 정지용 시인의 시에 나오는 교토의 압천도 걸어봤다. 어찌 보면 그가 죽은 원수의 나라에 그의 흔적이 남아 그걸 기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묘했다. 그걸 영화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작 시나리오는 신연식 작가가 썼지만. (웃음)

1995년 '아나키스트'를 기획하며 (시나리오를 맡은) 박찬욱 감독, 조철현(타이거픽쳐스 전 대표)과 셋이 상하이에 가서 시나리오 헌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일제식민지와 관련된 책들을 100권 이상 검토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가 상업적으로 실패하면서 상처가 깊었다. 그 시대를 한동안 외면하고 있었다. 2002년 기획했던 가미카제 특공대 속 조선인 이야기가 또 좌절됐다. 그래도 그 시대라는 장애물을 언제 넘나 하고 있었다. 마침 고맙게도 최동훈 감독이 '암살'을 성공시켰다. 최동훈 감독에게 감사한다. 그래서 예전 30대의 바람을 50이 넘어 다시 이룰 수 있었다. 윤동주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 마치 오래된 밀린 숙제를 한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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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주' 스틸컷


-'밀정', '아가씨' 등 일제시대가 배경인 작품이 쭉 나온다. '동주'와는 규모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차이점은 '동주'는 일본 본토에서 벌어진 일이다. 거기서 군국주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가 고등형사(김인우 분)다. 거기에 대한 윤동주의 반론, 마지막 송몽규의 사자후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알 수 없는 주사를 맞는 생체실험의 현장도 그 핵심에 포함된다. 문명국과 비문명국에 대한 일본의 불손한 논리와 이에 대한 몽규의 반박, 그것이 폭력으로 무마되는 순간 등이 이 영화를 찍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윤동주의 삶을 전기영화로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다. 감성팔이를 하려고 찍은 것도 아니다. '쉽게 쓰여진 시'를 쓰고 취조받으며 부끄러워 서명을 못하겠다는 동주와 '뜻한 대로 하지 못해 한스럽고 억울하다'고 서명하는 몽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려고 그 앞을 깔았다. 우리는 일제의 피해에 대해서만 억울해한다. 하지만 나는 일본 군국주의의 모순과 부도덕성을 동주, 몽규의 입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윤동주가 그 부조리함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입구라고 생각했다.

-'대세' 유아인이 동주 역을 놓쳤다고 아쉬워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왜 캐스팅이 안 된 건가.

▶'유아인의 윤동주냐, 윤동주의 강하늘이냐'의 차이다. 유아인이 또 하면 또 새로운 느낌으로 얼마나 잘 하겠나. 내가 '사도'를 한 사람이다. 그걸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세 유아인이 하면 유아인의 윤동주가 될 수 있다. 그건 이 영화의 성분에 안 맞는다. 흑백 저예산 영화에 대세 배우를 넣는다니 이상한 장삿속이다. 강하늘은 2014년 부산영화제 때 캐스팅됐다. 당시 '순수의 시대'를 찍고 있었는데, 황정민이 내게 강하늘을 추천했다. '평양성'으로 강하늘을 데뷔시킨 사람이 나다. 얼마나 맑은 사람인지 내가 잘 안다. 그래서 캐스팅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스물'이니 뭐니 잘 되면서 갑자기 얘도 떠 버렸다. 잘 되니 어쩔 수 없다. 이제 알려진 것일 뿐 연기는 그때도 잘 했다.(웃음) 같은 의미로 제작사에 제작비 이상 P&A(배급마케팅) 비용을 안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과보다 성분이고, 결과보다 과정이다. 영화의 성분과 관객에게 다가가는 과정도 합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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