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도 그랬지' 왜 아시아 월드컵에선 이변 속출할까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2.12.07 16:26 / 조회 :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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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선수들(빨간 상의)이 7일(한국시간)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을 꺾은 뒤 환호하고 있다. 스페인 선수들과 표정이 대조적이다. /AFPBBNews=뉴스1
월드컵 본선 참가국 수가 32개국으로 늘어난 1998년 이후 역사상 가장 많은 이변을 만들어낸 대회는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다. 공교롭게 두 대회 모두 아시아 대륙에서 열린 대회다.

2002년에는 유럽과 남미 대륙 국가가 아닌 5개 팀이 16강에 올랐다. 이 가운데 한국은 4강, 세네갈과 미국은 각각 8강에 진출했다.

당시 공동 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은 장마철을 피하기 위해 대회를 1998년 프랑스 월드컵보다 열흘 정도 빠른 5월 31일에 시작했다. 이 같은 일정 변경은 몇몇 팀들에 독이 됐다. 같은 해 유럽 프로축구 일정이 대체로 5월 초에 마무리됐고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5월 15일에 끝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빠듯한 일정이었다. 이 때문에 주축 선수들이 '번 아웃'에 시달렸던 포르투갈,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상으로 조별리그에서 이변이 많이 속출했다. 16강에는 아시아, 아프리카와 북중미 지역의 6개 국가가 진출했다. 이는 2002년 대회는 물론 1998년 월드컵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가, 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와 세네갈이 진출했다. 북중미 지역에서는 16강 단골손님이었던 멕시코가 탈락했지만 미국이 16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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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김영권(가운데)이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같은 이변의 원인으로 2022년 카타르 대회가 역사상 최초의 겨울 월드컵이라는 점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카타르의 여름철 기온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유럽 프로축구 시즌 중에 펼쳐진 첫 번째 월드컵이 된 카타르 대회는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정규시즌의 피로감에서 회복할 수 있는 절대시간을 빼앗아 갔다.

특히 독일이 그랬다. 독일은 분데스리가 경기가 끝난지 10일 만에 일본과 첫 경기를 치러야 했다. 독일 선수들은 정상 컨디션으로 이 경기를 치르기 힘들었다. 독일이 일본에 1-2로 역전패했던 원인 중 하나였다. 독일은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독일보다 스쿼드의 평균연령이 높아 조별리그에서 더 어려움을 겪었던 벨기에도 컨디션 난조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물론 이번 대회에 이변이 많이 일어났던 이유에는 일정 변경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년 전 펼쳐진 한일 월드컵 때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대표팀 선수들 중 유럽 프로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비중은 몰라보게 높아졌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유럽파가 안정환(46·당시 이탈리아 페루자)과 설기현(43·당시 벨기에 안더레흐트)뿐이었다. 하지만 2022년 한국 대표팀의 유럽파는 전체 26명 가운데 8명으로 늘어났다. 일본은 한국보다 유럽파가 더 많았다. 26명 가운데 무려 20명이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아프리카 국가로 7일(한국시간) 스페인을 승부차기 끝에 이겨 8강에 진출한 모로코도 비슷하다. 유럽파는 일본과 같은 20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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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꺾고 기뻐하는 일본 대표팀 선수들. /AFPBBNews=뉴스1
이처럼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2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유럽파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이제 적지 않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팀에 세계적 스타들의 경연장이자 다양한 전술적 실험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유럽 프로 리그의 노하우를 체험한 선수들이 많아진 셈이다. 이는 대륙별 축구 경기력의 격차를 줄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유럽에서 뛰고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의 선수들도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적지 않은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 축구 강국의 주요 선수들에 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유럽파는 소속 클럽에서 완벽하게 주전으로 뛰고 있는 비율이 적다. 출장시간이 제한적인 선수가 꽤 있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체력적인 측면에서 유럽 국가 선수들의 비해서는 다소 유리했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월드컵은 유럽과 남미의 잔치다. 축구 강국과의 전력 격차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중 월드컵 우승에 근접한 국가는 없다. 하지만 1930년 시작된 월드컵이 대륙별 전력 균형차원에서 진짜 '월드'컵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아시아 국가가 개최한 2002년과 2022년 대회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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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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