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척척박사] 23. 총독부-중앙청-중앙박물관과 그 후!

전시윤 기자 / 입력 : 2023.01.05 15:30 / 조회 :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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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pixabay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그 기억조차도 희미해지고 있지만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을 정면에서 가로막아 조선인들에게서는 조선의 얼을 빼앗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제국주의의 영구적인 조선침탈을 공고히 하려고 세워진 것이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일본이 패망하여 쫓겨 난 후 대한민국 정부청사로 사용되면서 중앙청으로 불리던 이 건물에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서게 된다. 지금은 국립민속박물관이 된 경복궁 권역 내 콘크리트 건물에서 숨죽이고 있던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조금은 어깨를 펴고 앞으로 나서는 모양새 같기도 했지만 어쩐지 박수치며 마음껏 환호하기는 마땅치 않다는 국민들도 많았다.

역사적인 개관을 앞두고 주시공사인 S토건의 현장소장이 작은 문제를 제기한다. "중앙청 지하공간이 상상 이상으로 큰데 누구도 그 전체 규모나 배치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공간에 엄청난 분량의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으며 거의 쓰레기 수준의 이것들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나라의 국보와 보물들을 전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는 나름 대단히 합리적인 문제 제기였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던 필자가 물었다. "이 쓰레기 더미를 다 치우는데 얼마의 비용이 발생하겠는가?" 구체적인 금액을 계산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최소 수천만 원은 필요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너무나 빠듯한 예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현장소장에게 최소의 비용으로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오후,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건물 내부의 입구를 조사하다 1층 좌측 전면 사무실 바닥에서 지름 1m 정도의 원형철판덮개를 발견했다. 각종 도구를 동원하고 힘깨나 쓴다는 젊은 직원 서넛이 한참을 씨름해서 덮개를 열었다. 그 순간 훅하고 전해져 오던 그 음습한 기운과 쾌쾌한 냄새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건축, 설비, 건물관리 담당직원들과 함께 랜턴 불빛에 의지하며 어두운 지하로 계단을 내려갔다.


의외로 좁은 공간이 나타났다. 전면은 그냥 벽체로 보였다. 눈썰미 좋은 직원 하나가 그 벽체가 실은 제법 큰 3개의 문짝임을 알아챘지만 그 문을 여는데 까지는 또 상당한 시간과 공력을 들여야만 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뜻밖의 광경에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잊었다.

우리가 문을 열고 서있는 곳에서 전면벽체까지 거리는 대략 1.5m 남짓, 2m 정도 간격으로 폭 30cm 전후의 두꺼운 목제발판 3개가 그 벽체와 연결되어 있다. 발판 아래는 말로는 표현하기조차도 어려운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액체가 가득 차 있는 시커먼 공간이다. 그리고 그 발판의 끝 벽체에 각각 1조씩 바로 그것들이 붙어 있었다.

사람의 목과 양팔과 양다리에 채울 수 있는 철제 족쇄가 시커멓게 녹이 슨 흉측한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1945년 광복 이 후 40여년이 흘렀지만 일제 만행의 생생한 증거가 중앙청 청사 지하에 고스란히 숨어있었다. 후일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곳에서 중요한 독립투사들에 대한 심문과 고문이 이뤄졌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건물 후면에 있었던 작은 병원에서 이런 악행들을 가리기 위한 가식적인 치료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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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사진제공=pixabay


국립중앙박물관에서 6년 3개월을 근무하다 해외유학을 위해 그 곳을 떠났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날의 기억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부끄러운 상처로 남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이 급선무였다. 더군다나 개관을 앞두고 있던 독립기념관의 화재로 갑자기 1년이나 앞당겨진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 준비는 모든 일에 우선했다.

독립투사들의 뜨거운 피가 스며들어 검붉게 응어리졌던 그 족쇄들의 그 후의 행방은 이제 그 어떤 기록이나 자료로도 확인이 되지 않는다. 조선총독부, 중앙청, 국립박물관으로 쓰였던 그 건물도 사라졌다.

아르헨티나 인권단체 '5월 광장 할머니회' 주도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설치될 예정이던 '평화의 소녀상'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까지 나서서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한다.

역사지우기에 나서기에 앞서 일본이, 특히 극우세력들이 스스로의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역사는 결코 시간이 흐른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가까워서 희미하던 것들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오히려 굵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역사다.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분명하게 인정하고 확실하게 반성함으로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극복의 성과는 대부분 극복의 주체에게, 즉 일본에게 돌아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유산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피와 땀과 연계되어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엮어나가는데 소중한 역할을 한 대상이라면 잘 보존하고 가꾸어 후대에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떤 이유로도 이러한 의무와 책임을 져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총독부 지하에서, 대한민국정부 중앙청사 지하에서, 40여년을 기다리며 후손들의 눈길을, 관심을 기다리던 그 역사적 유물, 철제 족쇄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하여 사라지게 한 이 중대한 과오는 그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 문화유산의 보호와 선양, 그리고 가치 있는 활용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는 현장의 동료와 후배들에게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라는 당부를 드리며 오래된 상처를 헤집고 아프게 드러낸 이 어리석은 사례가 지혜로운 행동을 이끌어낼 타산지석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만약에 국민들께서 어떤 형태의 유산이나 자료를 발견하였으나 조치할 방법을 모르거나 시간이 없어서 또는 다른 일로 너무 바빠서 아니면 관청과 연계되는 것이 싫어서 망설인다면 저희 행정사법인 CST를 활용해 주시면 좋겠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해 최우선으로 조치할 것을 약속드린다.

- 박영대 행정사법인 CST 공동대표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 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 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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