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야구 별칭 '사무라이 재팬'에 숨은 상업적 전략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3.01.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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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WBC 일본 대표팀의 하라 다쓰노리(가운데) 감독과 스즈키 이치로(오른쪽 3번째) 등이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에 승리한 뒤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2006년 시작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MLB) 올스타전에서 나왔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대회다. 2002년과 2004년 미·일 올스타전이 개최된 후 MLB와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는 메이저리거가 출전하는 진정한 야구 국가대항전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이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MLB가 주도하는 야구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WBC는 실상 일본 야구 중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이 1, 2회 대회(2006, 2009년)에서 2연패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스즈키 이치로(50)와 마쓰이 히데키(49) 등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선수들이 MLB로 떠나 프로야구 흥행에 적신호가 커졌던 상황에서 일본 야구는 WBC에서의 선전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한국 프로야구도 WBC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한국은 1, 2회 대회에서 숙적 일본을 맞아 4승 4패(2006년 2승 1패, 2009년 2승 3패)의 대등한 성적을 거뒀다. 비록 상대적으로 중요한 한일전이었던 1회 대회 준결승전과 2회 대회 결승전에서 모두 패하긴 했지만 한국 야구로서는 의미 있는 결과였다. 2006년부터 불어닥친 한국 야구 열풍에 한국 프로야구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명품리그라는 평가가 뒤따랐고 팬층이 넓어지면서 '국민 스포츠'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는 모두 야구 국가 대항전인 WBC의 혜택을 크게 받았다. 특히 양국에서 야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급상승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을 가리켜 미디어에서는 이때부터 '푸른 악마'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붉은 악마'에 착안해 생겨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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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WBC에서 일본의 우승이 확정되자 도쿄 시내에서 팬들이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공식명칭은 제2회 WBC를 앞두고 '사무라이 재팬'으로 확정됐다. 일본이 야구 대표팀의 별칭을 공식적으로 정한 이유는 WBC 지역 스폰서십 판매 대행사인 덴츠의 상업적 전략 때문이었다.


월드컵과 올림픽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본 굴지의 광고 대행사 덴츠는 사실 1회 WBC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덴츠가 일본에서 스폰서 업체를 찾아다닐 때도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적지 않은 기업들은 WBC를 야구가 아닌 국제 복싱 기구인 WBC(World Boxing Council·세계권투평의회)로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1회 대회에서 일본이 한국과 쿠바를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본에서 WBC 대회의 위상은 높아졌다. 당시 쿠바와 결승전은 일본시간으로 평일 낮 경기였음에도 TV 시청률이 43.4%였다. 일본이 우승을 확정하는 시점의 순간시청률은 무려 56%까지 치솟았다.

1회 대회 효과에 고무된 덴츠는 2회 대회를 앞두고 수익 극대화에 집중했다. 덴츠의 핵심전략은 WBC 로고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일본에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WBC 로고를 사용하면 MLB 측에 사용신청과 승인을 받는 과정이 복잡했고 수익 분배에도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 방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대표팀의 공식 명칭을 사용해 스폰서십 업체들이 광고와 마케팅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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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1회 WBC에서 일본 대표팀이 쿠바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환호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당시 일본 스포츠계에서는 특정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팀의 별칭에 감독의 이름을 넣는 게 일반화돼 있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야구 대표팀의 별칭은 나가시마 시게오(87) 감독의 이름을 딴 '나가시마 재팬'이었다. 그래서 제2회 WBC를 앞두고 일본 대표팀의 공식명칭이 하라 다쓰노리(65)감독의 이름을 넣은 '하라 재팬'이 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덴츠는 야구 대표팀 감독이 바뀔 때마다 변경해야 하는 가변적인 명칭 대신에 '사무라이 재팬'을 택했다. 덴츠가 야구와 사무라이(일본 무사)를 연결시킨 것은 일본에 야구가 전파될 때부터 일본 사회가 무사들이 칼을 들고 겨루는 행위와 야구에서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치는 것을 유사한 맥락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야구에는 '무사도(武士道)'도 깃들여 있다는 표현까지 나왔었다.

그런데 덴츠가 일본 야구 대표팀의 명칭을 '사무라이 재팬'으로 공식화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미 일본 남자 하키 대표팀이 이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하키협회의 양보로 일본 야구 대표팀이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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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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