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척척박사] 25. 제사, 돌아가면서 지내면 어떨까

전시윤 기자 / 입력 : 2023.01.19 10:29 / 조회 :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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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


곧 민족 최대 명절 설이다. 명절이 되면 제사 이야기로 시끌벅적 하다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다.


제사란 무엇일까. '제祭' 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나 양, 돼지 등 희생으로 쓴 고기를 손으로 바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제물을 하늘과 땅과 조상에게 바쳐 나라와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고 복을 구하는 의식이다. 제사의 근본은 자신의 존재 근원을 찾고, 친족 간의 우애와 혈연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요즈음은 어떠한가. "자식은 다 같은 자식인데, 제사는 왜 장남만 모셔야 하느냐", "명절이 되면 여자들은 뼈 빠지게 일만 한다."라고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심지어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늘어난다고까지 하니 제사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크게 들린다.

세대를 떠나 제사만큼 우리의 정서와 복잡한 내면을 가진 것도 없을 것이다. 먼저 필자의 집 제사에 대해 이야기 할까 한다. 왜나 하면 필자의 집안은 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넘어오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제례 문화의 변화와 문제점을 온전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6남 2녀 중 막내아들로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생전엔 설, 추석 명절 차례 두 번, 3대 봉사로 기제사 여섯 번 모두 1년에 여덟 번 제사를 지냈다. 명절 차례는 대수를 달리할 때 마다 간장이나 나물 등 기본적 제물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전, 적, 조기, 과일 등 나머지는 새로 올린다. 제상만 바꾸지 않을 뿐 거의 모든 제물을 새로 차리다 보니 제수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이런 어려움 때문인지 생전 모친께선 "내가 죽으면 이것저것 차리지 말고 깨끗한 물 한 그릇만 떠 놓고 지내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1987년 양친이 돌아가시면서 지방에서 모시는 제사를 서울로 옮겨 큰형이 지냈다. 필자는 명절 차례 때 "일일이 대代수를 지낼 때마다 제물을 갈지 말고 한 번에 메와 술잔만 대수대로 여섯 그릇만 놓고 지내면 어떻겠느냐"라고 했다. 형수님들께서 모두 좋다고 해 조상대대로 내려온 제사 방식을 바꾸었다. 이를 '모듬제사'라고 불렀다.

제수도 큰형 집 한 곳에서만 다 준비해 차리지 말고, 형제들이 서로 잘하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첫째는 메와 국 등 기본적인 음식, 둘째는 고기와 적, 셋째는 나물과 떡, 넷째는 전, 다섯째는 다과, 막내인 나는 과일 등을, 이렇게 형제끼리 각각 몫을 나누었다. 제삿날이 돌아오면 모두 정성껏 제물을 준비해와 순식간에 한 상이 차려졌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고 2003년 설 차례 때이다. 큰 형수가 오랜 지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내가 "자식은 다 같은 자식인데 큰형이 혼자 제사를 떠맡으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형제가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내놓았다. 갑작스런 제안에 큰형이 "기제사는 내가 맡고, 설, 추석 명절 차례는 동생들이 돌아가면서 지내면 어떻겠느냐"라고 했다. 가타부타 말없이 침묵만 흘러 내가 그럼 모두 동의하신 것으로 여겨 "안을 낸 막내인 제가 돌아오는 추석 차례를 모시겠다."라고 했다. 갑자기 아내가 옆에서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자기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것도 막내가 제사를 지낼 수 있냐며 불평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타성他姓은 빠져요'라고 했다. 타성은 누구인가 며느리들이다. 다른 거와 달리 제사는 여자들의 협조가 없으면 지내기 쉽지 않다.

결국 기제사는 장남 큰형이, 명절 차례는 동생들이 돌아가면서 지내도록 했다. 하지만 둘째 형수가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지낼 수 없다고 해 나머지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지내도록 했다. 그리고 형제들이 다 죽고 나면 장손이 다시 모두 지내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일 년에 여섯 번 지내던 기제사를 아버지 기일에 맞춰 한 번만 지내도록 했다. 필자는 이를 '합동제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제사를 모시던 큰형 내외가 2010, 2015년 돌아가시면서 또 한 번의 변동이 왔다. 당연히 기제사는 장조카가 가져가 지내야 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필자가 맡아 지내고, 형제가 돌려가면서 지내던 명절 차례도 모두 돌아가시면서 내가 기제사와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 제사마저도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내가 죽은 후엔 지내지 말도록 하였다. 왜나 하면 제사도 그 시대의 약속이요 사인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면 풍속도 변하듯, 민족의 신앙처럼 이어온 제사도 시대에 맞게 바뀌고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이다.

한번은 아내가 장모에게 필자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자 제사는 돌아가면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제사는 장남이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럼 형제가 제사를 돌려가면서 지내는 것이 예에 어긋나는 것일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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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pixabay


고려시대 말과 조선 중, 후기까지도 오늘날처럼 큰 아들이 제사를 전담하지 않았다. 아들딸 구별 없이 재산도 똑같이 나누고 순서에 따라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맡아 지내는 '윤회봉사'를 했다. 심지어는 '외손봉사'도 널리 행해졌다.

16세기를 무대로 『묵제일기』를 쓴 이문건(1495?1567년)은 형제자매가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고 심지어 외손봉사까지 행했다. 학봉 김성일도 장인 제사를 지냈고, 이황의 자손들과 종인들도 기제와 묘제를 자손들이 돌아가면서 지냈다. 율곡도 칠남매가 재산을 똑같이 나누고 제사도 돌아가면서 지내는 윤회봉사를 행했다.

전북 부안군 우반동에 거주하였던 선비 김명렬은 1669년 사위가 제물을 대충 차리고 제사를 빼먹는다고 딸에게 제사를 반납토록 하고, 재산은 아들이 받는 유산의 3분의 1만 지급했다. 해남윤씨는 1676년부터 1679년까지 4년마다 가족회의를 해 제사를 각각 분담토록 하였으며, 공제 윤두서는 열둘 자녀들에게 재산을 똑같이 분배하고 제사도 나누어 지내도록 했다.

심노숭은 1801년에서 1806년까지 부산 기장에서 머무르는 5년 5개월 동안 매일 쓴 유배일기『남천일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동래 정씨 제례는 장자의 집이 아닌 여러 형제 집에서 부유한 사람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낸다. 이는 진실로 올바른 예절이 아니지만 또한 그릇된 것도 아니니 형세에 따라 적당한 제도를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 곳 풍속은 제례에 가묘와 신주가 없고 단지 위패만 세운다. 비록 사당이 없어도 적장자나 지자支子[차자 이하의 아들]할 것 없이 모든 자손이 돌아가서 제사를 지낸다. 가령 세 명의 아들이 있으면 장자가 조부의 제사를 지내고, 차자는 아버지 제사를 지내며 ,셋째 아들이 어머니 제사를 지낸다. 이를 주관하다가 서로 바꾼다. 연해의 풍속은 모두 그러하다.

반면 처가의 제사 몫으로 받은 재산을 다시 돌려주기도 했다. 1609년 이극발의 재산 분재기에 의하면, 처가의 제사를 먼 곳에서 준비하여 지내기 어려우므로 처가로부터 몫으로 받은 노비와 전답을 처부모의 기제 비용으로 처가에 영구히 허급한다고 했다. 또 1637년 김이성은 아내도 죽고 거주하는 곳도 멀어서 처가의 제사를 지내기가 형평상 어려우니 몫으로 받은 노비와 전답을 제사조로 처가에 돌려주었다.

이런 윤회봉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성리학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자 오늘날처럼 장자가 제사를 주관하게 되었다. 이는 부계 중심의 종법 질서가 확고해지고, 재산도 아들 딸 구별 없이 똑같이 나누는 균등상속에서 차등상속으로 바뀌면서 제사도 윤회봉사에서 장남 단독봉사로 변화되었다.

이제 우리의 상속법도 아들딸 구별하는 차등상속에서 균등상속으로 바뀌었으니, 제사도 장남한테만 지우지 말고 차례만이라도 형제끼리 돌아가면서 지내면 어떨까. 요즈음도 제주도에서는 형제끼리 제사를 각자 맡아 지내는 윤회봉사를 한다.

실제 차례를 형제가 돌아가면서 지내고 보니,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생각과 제물에 대한 정성이 각별해질 뿐만 아니라, 장남에 대한 고충도 알게 되었다. 또 비록 차례 때이긴 하지만 형님들은 동생 집에 갈 수 있어 좋고, 조카들도 큰집, 작은집을 오가게 되어 가족 간의 유대도 한결 두터워지는 것을 느꼈다.

-행정사법인 CST 부설 문화행정연구소(ICST) 정종수 선임연구위원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 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 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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